2024년 8월 다섯째 주
당신의 일상은 어떤가요?
제 주위 사람들에게 가끔 던지는 질문입니다. 제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대답하기는 영 시원찮습니다.
김창완 씨의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라는 책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저는 거의 매일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읽고 나면 원고 뒷면에 그리지요. 제법 그럴듯한 원이 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찌그러진 동그라미입니다. 그럼 종이도 아깝고 하니 몇 번 더 그리고 다른 이면지에 또 그려요. 정말 수도 없이 그리는데 단 한 번도 흡족한 동그라미가 그려진 적이 없습니다. 가끔 스태프나 기술 팀 막내한테 보여줘요. 그럼 다들 “와~ 진짜 똥그래요.” 하면서 환호해 줍니다. 그게 격려라는 걸 잘 알지요. 그래서 더 완벽한 동그라미에 도전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제가 그렇게 수없이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그리며 배우는 게 많습니다.
우선은 완벽에 관한 환상과 실제가 이렇게 차이가 크구나 하는 거예요. 오늘 또 재수 떼기 하듯 동그라미를 그려볼 거예요. 또 찌그러져 있겠지요. 저의 하루를 닮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망할 것도 없지요.
회사 생활이란 것도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입니다.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입니다.
자,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당신의 일상은 동그란가요?
이제 그나마 대답하기 수월해졌습니다. 제 답변을 먼저 말하자면, '네!'입니다. 아, 그런데 이 말이 빠졌군요.
'동그랗긴 해요. 근데 어설프게 동그래요.'
일 때문입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의 괴리감. 그마저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해야만 하는 일'. 스스로를 절벽으로 한 발짝씩 밀어내는 중이죠. 이육사 시인의 말마따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서릿발 칼날 위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요.
왓챠엔 <사막의 왕>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1화는 대기업 '(가칭) 문팰리스'에 들어간 주인공, 정이서의 이야기입니다.
"맨홀 뚜껑은 왜 동그랗죠?"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라는 답변으로 대기업에 합격한 이서. 어렵게 입사한 대기업에서 하는 일이라곤 하루종일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뿐입니다. '얼라이언트' 맞춰서 '핏'하게 그려내야 하죠.
'왜 동그라미를 왜 그려내야 하냐'는 이서의 질문에 상사 에이미는 이렇게 답합니다.
"이용자 경험에 대한 백데이터를 만드는 거야. 메타버스 게임 내에서 콘텍스트가 생략된 반복적 퀘스트가 MZ세대 유저에게 끼치는 영향을..."
심지어 어느 날 이서는 '동그라미를 잘못 그렸다'고 혼나는 날도 생기는데요. 또 다른 상사 제이크가 이서를 위로해 줍니다.
'왜'라고 생각하지 마. 아니, 생각 자체를 하지 마. 우리 그냥 돈 받고 몸 파는 처지잖아. 오늘 하루치 일당 받은 만큼, 오늘 하루 '니 인생 여기 있습니다~'하고 상납하면 되는 거야.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면 회사 생활 못해!
이 대목에서 피식피식 웃었습니다. 연기를 잘하거나 웃긴 대사여서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주는 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말이죠. 삼성이 10년 간 신입사원들에게 추천했다는 단 한 권의 책.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왜 일하는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고민하지 않은 채 마지못해 일을 하며 상처받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자신을 비하하고 그 때문에 좌절하기도 할 것이다.
나는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일하는 것'은 우리 삶에 닥쳐오는 시련을 이겨내고,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러니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더 자신이 맡은 일에 사력을 다해 전념하라고 말이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가능하다면 무아지경에 빠질 때까지 몰입해 보라.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쳐와도 당당히 맞서 부딪쳐보라. 그러면 분명 자신을 옭아매던 고난과 좌절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지어낸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아니다. 90년 인생 동안 직접 경험했고, 영세한 기업을 세계 최고의 그룹으로 키워낸 비결이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생각한 일의 의미는 '미래'입니다. 마치 해장술 같은 건데요. '숙취를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처럼 '미래에 일하기 위해 현재 일하'는 겁니다.
이런 발상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정답이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정답은 고사하고, 어설픈 답조차 내놓지 못했죠. 이를테면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나오는 말처럼요.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니?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그리는 동그라미는 무슨 의미가 있나. 인류 발전에 이바지? 사회적 약자 보호와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 미래세대를 위한 책임의식 제고? 또.. 또 뭐가 있더라? 내가 '기대한' 내 일의 의미는 뭐지? '왜' 열심히 일하지? 왜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려내려는 거지? 나는 <사막의 왕> 정이서와 뭐가 다른 거지?
끝없는 꼬리 질문을 끊어낼 도마뱀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약간의 힌트는 찾은 것 같습니다. 이번주에 읽은 마이클 투히그의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에서요.
어쩌면 당신은 이미 완벽했을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해내는 것에 익숙했고 칭찬, 인기, 자부심과 같은 보상에도 익숙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완벽에 도달하기 힘들어지는 시점에 이르렀을 것이다. 동기들이 더 똑똑해졌고 과제는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삶은 더 많은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 순간 당신은 스스로 생각했던 것처럼, 혹은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그다지 뛰어난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달았을 것이다. 예전처럼 열심히 노력해도 최고가 되지 못하리란 걸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뭐 하러 애를 쓰겠는가? 어차피 완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노력하다 실패하는 건 노력하지 않고 실패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치스럽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안전한 길을 택하고 애쓰기를 멈추었다.
열심으로는 도저히 완벽해질 수 없는 사회. 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소모적인 삶. 자아실현보다는 생존이 최우선 가치로 변질돼 눈앞의 상황에만 급급해진 현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 일단 삐뚤빼뚤한 동그라미를 마구잡이로 그려내며 의미 없는 절망 속에 출퇴근하는 사람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 찬 직장인의 도시 서울.
윤연선 씨의 노래 <얼굴> 가사처럼 '동그라미를 그리려다가 무심코' 얼굴이 보입니다.
오늘도 여기저기서 일하고 계실 당신의 얼굴도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이번주 우리 사회는 참 뾰족뾰족했습니다. 예리한 바늘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죠.
부천 호텔 화재 뒷수습, 텔레그램을 통한 딥페이크 영상물 배포 문제, 의료공백 장기화, 연희동의 싱크홀 발생 소식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면서 매일매일 사회 이슈가 모든 관심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29일(목)에 윤석열 대통령이 연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그 내용 중 '의료개혁'과 관련한 질의응답 부분입니다.
Q. 지금 의료 현장에서는 의대 증원 문제를 이유로 의사들이 현장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 수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그런 상황이 누적되며 의료가 한계에 다다른 건 아닌지? 또 코로나19까지 재유행하고 있는데, 대통령실은 '현장은 잘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의료 현장에서 체감하는 것과 대통령실의 메시지에 차이가 큰 이유가 궁금하다.
A. 지역의 종합병원 등 의료 현장을 한 번 가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일단 비상 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 (정부도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만) 우리 현장의 의사, 간호사, 또 간호조무사를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서 정말 헌신적으로 뛰고 계시기 때문에 (의대 증원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략) 정부는 헌신적인 의료진과 함께 의료 개혁을 반드시 해내겠다.
기자의 질문은 '지금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거 아니에요? 근데 왜 괜찮다고 생각하세요?'였습니다.
대통령의 답변은 '현장의 의료진들이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직접 한 번 가봐요! 괜찮아요!' 였고요.
한참 동안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물론 고개를 갸웃거린 건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기자회견 다음 날인 오늘 30일(금), 조선일보를 제외한 6대 일간지의 사설은 대체로 비슷한 논조입니다.
조선일보= (기자회견 관련 사설 없음)
중앙일보= 대통령의 상황 인식, 민심과는 거리 멀다
동아일보= 아직 아쉽지만, 대통령 회견은 더 자주 하는 게 좋다
한국일보= 국민과 동떨어진 대통령 인식 재확인한 국정브리핑
경향신문= ‘뉴라이트·채 상병’ 궤변 연발한 윤 대통령, 국민이 바보인가
한겨레=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인식 드러낸 윤 대통령 회견
강영안 교수님의 책 <타인의 얼굴-레비나스의 철학>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레비나스'가 말하는 얼굴은 왕이나 독재자 또는 부자의 얼굴이 아니라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나그네의 얼굴, 즉 고통 받는 사람의 얼굴이다.
고통 중에 있는 이 얼굴과의 만남이 없는 한 타인에 대한 관심 없이, 타인과 교류하면서, 아무 문제 없이 우리는 살 수 있다. 이러한 삶은 기본적으로 세계 안에서 우리가 거주하는 방식이다. 타인의 얼굴과 접할 때, 그에게 귀 기울일 때, 그때 윤리가 삶에 침입하게 된다.
윤리는 보는 것이다. 만일 윤리가 보는 것이라면 뭘 보는 것인가? 하늘에 있는 별과 내 안에 있는 도덕법칙인가? 나는 레비나스가 염두에 둔 건 기득권이 없는 사람들의 고통받는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윤리는 봄이고 동시에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어설픈 동그라미에서 얼굴로, 그 얼굴에서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 이번 주였습니다.
박지현 작가의 <괜찮은 태도>에 나오는 말들로 또다시 한 주를 버텨봅니다.
여전히 내 주위엔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 '기꺼이 다정한 내 주위 사람들'을 바라봅시다!
사람은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배웠는데 이상하게 어른이 되어 갈수록 낯선 타인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늘어 갔다.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덜 믿고 덜 기대하는 것이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타인에게 벽을 세우는 법을 배워 가던 나는 며칠 전까지 이름도 몰랐던 부부에게 깊은 위로를 받았고 조금씩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세상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졌고, 타인을 만나면 혹시 상처받을까 봐 겁내며 세우던 벽도 조금씩 허물게 되었다.
그리고 그냥 사람을 믿어 보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마음을 나눠 준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