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둘째 주
죽은 나무를 구해다 마당에 심었어요
죽은 목숨이었지만 발전이 있어 보였거든요
죽은 나무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하늘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어요
덕분에 나는 죽은 나무를 보며
매일 안심할 수 있었죠
대화를 위해 죽은 나무 위에
공을 매달았더니 생명이 됐어요
그걸 허수아비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내게도 친구가 생겨서
촛불을 켜고 축하하다가
그만
허수아비의 몸에 불이 붙어버렸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허수아비는 그때 한마디했어요
이제야 말이 더듬더듬 나온다고
이원하 작가의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에 나오는 시 '말보단 시간이 많았던 허수아비'입니다.
고선경 시인이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폐허나 죽음의 시간을 지나서야만 더듬더듬 말하기(시 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습니다.
“죽음” 다음에 오는 “발전”이라니, 조금 가혹하기는 합니다만 생각해보면 세상 만물이 그렇지 않습니까?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처럼요. 계절의 순환처럼요.
완연한 가을 날씨입니다. 말마따나 심란했던 여름은 죽었고, 발전된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듬더듬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대전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한글은 아름답다.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글은 대체불가능합니다. 고유한 맛이 있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예시가 조지훈 시인의 시 <승무>입니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지훈 시인의 아들은 조태열 현 외교부장관입니다. 조 장관은 영문으로 번역된 아버지 시집에서 <승무>가 빠진 이유를 바로 이 '나빌레라' 때문이라고 말했는데요.(20190923 조선일보發 <70년 2代에 걸친 번역… 영어로 울려퍼진 조지훈의 詩>)
"버터플라이(butterfly)라고 번역할 수도 없어 참 난감"했고, "그만큼 한국 정서를 영어로 옮기기 어려웠다"고 털어놨습니다. 직계혈통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셈입니다.
조의연, 이상빈의 책 <K 문학의 탄생>에는 이런 예시도 나옵니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김소월 <진달래꽃>)' 번역이 가능하냐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시'라는 장르가 갖는 고유한 힘과 리듬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떠올리면 그리 쉽지 않음은 분명하다.
'사뿐히 즈려밟다'라는 문장에 담긴 힘을 그대로 전달하면서 번역해 내기란 쉽지 않나 봅니다.
학창 시절에라야 배웠던 온갖 아름다운 단어들을 소환한 이유가 있습니다.
매년 한글날이 되면 '학생 문해력 저하' 기사들이 쏟아집니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멍청한 애들이 이렇게나 많아요!'라는 주장이었죠.
20241007 연합뉴스發 <'시발점'이라고 하니 "왜 욕해요?"…학생들 문해력 부족 심각>
20241007 조선일보發 <“족보는 족발보쌈세트” “두발은 두 다리”... 교사 90% “학생들 문해력 심각”>
20241007 국민일보發 <“세로 서 있는데 왜 가로등?” 교사들 놀래킨 아이들 문해력>
굉장히 게으른 기사입니다. 매년 학생들이 내놓는 황당한 대답들만 달라질 뿐, 나머지 내용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문해력 관련 최근 3년 치 기사들을 보시죠.
20231006 아시아경제發 <"글피·심심한 사과, 무슨 뜻이죠" Z세대의 솔직고백>
20221010 KBS發 <‘지구력’ 방어하는 힘?…“읽어도 뜻 몰라”>
20211008 매일경제發 <"사흘이 4일 아닌가요"유튜브에 익숙한 2030세대 한글 능력 떨어져>
이쯤 되니, 내년 한글날에는 '또 어떤 신박한 단어와 해석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까'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세대 갈라치기, 무비판적인 보도자료 인용 관행 등 '할말하않'입니다.
정리하자면, 핵심은 '무엇'이 아니라 '왜'입니다. '아이들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게 왜 중요한지', '그래서 해결책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이 내용을 독자(혹은 시청자)들이 왜 알아야 하는지, 그 파급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치열하게 생각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박재영,이재경,김세은,심석태,남시욱(관훈클럽 저)이 쓴 <한국 언론의 품격>은 정확하게 그 지점을 꿰뚫어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은 일본, 미국,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저널리즘을 배웠다. 대개 이 배움은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에 주목하는 바람에 "왜 그렇게 하는가"를 놓쳤다. 한국 사회는 지난 120여년 간, 언론을 중요한 사회제도로 운영해왔다. 하지만 언론은 무엇인지, 언론의 핵심 기능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정리하지 않았거나, 체계화하지 못했다.
참 답답한 한글날이었습니다. 컬럼비아대학 저널리즘스쿨 입구에 쓰여있는 소개문에 더 공감한 한글날이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우리 언론은 함께 일어서고, 함께 무너질 것이다.
'역량있고 이해관계를 뛰어넘으며 공공정신이 투철한' 언론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지성이 훈련돼 있다. 또한 그것을 실천할 용기가 있으며, 공중의 미덕을 보존할 수 있다.
그러한 미덕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사기이고 거짓일 뿐이다. 냉소적이고 돈만 아는, 정략적인 언론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과 똑같이 저급한 시민을 만들어 내게 된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건설할 힘은 미래 세대 기자들의 손에 놓여있다.(퓰리처, 1989)
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닙니다. 김진해 경희대 교수님의 한탄이 제 한탄과 매우 비슷했거든요(20241010 한겨레發 <문해력도 모르는 닭대가리 [말글살이]>).
문해력의 핵심은 비판 의식이고, 비판 의식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아는 능력이다. 사회의 지적 역량의 산물이다. 한글날 하루 떠든다고 길러지지 않는다. 수십년을 혀가 닳도록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외쳐왔으면, 뭘 어떻게 하자는 얘기가 있어야 하지 않나? 문해력 향상을 위해 학교 교육을 어떻게 바꾸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나? 작은 도서관을 늘리고 작은 책방을 살리고, 학교를 경쟁의 전쟁터가 아닌 배움의 광장으로, 아니 사회를 공생의 공동체로 만들겠다는 말 정도는 가볍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닭대가리가 아니라면 그 뻔한 걸 왜 말하지 않는가?
아 물론 저는 '닭대가리'라는 표현까지는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반대로 생각해보기' 를 제안합니다.
'알은 다음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움 알은 다음'으로 프레임을 바꿔보자는 겁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먼저 알려주는 건 어떨까요.
예를 들어, 김영하 작가가 유퀴즈에 나와서 "짜증난다"는 말을 금지시킨 이유를 함께 보시죠(20220518 tvN 유퀴즈 <김영하가 '짜증'을 금지한 이유(X) 감정을 섬세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O)>).
김영하 : 작가가 될 사람들은 심리묘사를 잘해야 하고, 감정을 세분화해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던 건데! '김영하가 짜증을 금지했다' 이렇게 (반응이) 돌아다니니까.. 하하..
유재석 : 하나의 단어로 (얘기)하다보면, 사실은 '그냥 짜증난다'해서 끝이 나면, 내 스스로의 감정을 잘 모를 것 같아요. 근데 거기서 이제 짜증으로 표현이 안 되니까 개짜증이 나오는 거 아닙니까. 왕짜증, 개짜증!
김영하 : 근데 보통 사람들이 이렇게 뭉뚱그려서 말하는 이유가 있어요. 사실 진짜 감정을 들여다보면 너무 괴롭거든요. 그래서 그런 몇 개의 '어떤 마법 같은 단어'로 그냥 누르고 있는 건데. 그 감정들이 눌려 있으면 위험하잖아요. 우울해져요. 몸에서 곪기 때문에.
올리버 존슨은 <수학의 힘>에서 "수학의 본질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에겐 지금 정반대 역량이 필요한 건 아닐지. '짜증' 같은 몇 개의 마법 같은 단어들을 집어던져 버릴 때가 아닐지. 우울감을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나빌레라'를 다시 소환해야 하는 건 아닌지.
최소한 기자들이라도 '마법 같은 형식'을 벗어던졌어야 하지 않을지 한-탄해봅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고, 제 스스로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한 '금주의 사족'.
언제나 어둠보다는 빛을 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해
한강 <작별> 中
BTS, 봉준호, 손흥민, 한강 레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