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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or review Oct 18. 2024

한강에게 바치는 헌사

[호외] 문학이라는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한강 신드롬


"나중에 우리 학생들 중에 노벨상이 나오면.."

"네? 뭐요?"

"노벨상."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침착맨이 장모님으로부터 받은 '개.미친. 딱딱한 돌빵'처럼. 회의록 하나 없이 의대정원을 2천 명 늘려야 한다며 기자회견마다 '반드시'를 퍼붓는 정부의 설명처럼. 너무나 단단해서 '그가 잘못 말한' 게 아니라 '내가 잘못 들었'다고 이해될 수밖에 없는 그런 말투였다.


"농담하시는 거죠?"

"내가 왜 XX(내 이름) 학생이랑 농담을 하지?"


웁스. 왜냐면 나에게 노벨상은 농담 소재였으니까. 이를테면 귤껍질을 한 데 모아 전자레인지에 돌려 '간이 손난로'를 만들어줬던 엄마에게, 고작 고무줄 몇 개와 돌멩이 하나로 새총을 만들어 낸 어릴 적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내 맘대로 수여했던 상이니까. 고작 그것에 불과했으니까. '노벨 엄마최고상'이라든지 '노벨 계란 잘 삶기상'처럼 그저 생활개그 소재로 쓰였던 가볍디 가벼운 형이상학적인 단어였으니까. 교수님과의 인터뷰는 곧 마무리됐다.


그런 노벨상을 한강이 수상했다. 외래어 기에 따라 'Han River'가 되는 그 물줄기가 아니라 진짜 사람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묻는 답지에 자랑스레 '욘 포세'라 쓰면서도 '내가 이딴 걸 알아야 하나' 물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욘 포세는 지구 반대편 어느 조그마한 나라(서로 무인기를 보기 좋게 날리며 비난의 언어를 서슴지 않아 '적대적 국가 중 하나'로 불리는 나라)의 입사 시험 문제에 자기 이름이 나온 걸 알까. 그래서 욘 포세가 아닌 '연 포세', '욘 포새', '욘 퍼세'라는 오답에 머리를 부여잡고 '탈락'을 예감하는 언론고시생이 있을지도 모를 터.


하지만 내가 발 디딘 '진짜 현실'에선 방송국이 한강의 27살 때 영상까지 찾아내 '김대중 이후 최초의 노벨상'이라며 치켜세우기 바쁘다. 심지어는 연세대학교 총장이 축전에서 <소년이 간다>라고 썼다가 번복하는 일까지 새삼스럽지 않게 벌어지고 있고, '축하의 민족'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할 지경이다. 어지럽다. 좋은 의미로 어지럽다.


(이미 밝혔던 것처럼) 노벨상 수상 직후 공개된 <매일경제> 단독 인터뷰를 정독하다가 '부럽다 김유태!'를 외쳤더랬다. [단독]이라는 단어에 유혹되지 않으려 선입견을 배제하고 한 문장씩 꼼꼼히 살폈다. 성실한 질문과 매력적인 답변에 녹아들었다. 한동안 그 문장들을 안성재 셰프처럼 우걱우걱 씹었다. '문장의 현학(學) 정도가 이븐(even)한지' 생각했다. 백종원이 눈을 가리고도 "빠쓰?"을 외칠 수 있을 만큼 김유태 문장의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애썼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부끄럽게도.


부끄러움을 잊어갈 때쯤, 진짜 김유태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20241014 <매일경제> 김유태 기자 개인 페이스북 

8시 0분 15초쯤 됐을까. 한림원 트위터를 수십 번 스크롤하다가 게재된 포스팅을 보고 두 손으로 감싸쥐고 '악' 비명을 질렀다. Han Kang...

그 전율을 잊지 못한다. 엉뚱하게도, 그날 아침 그분의 메일이 도착한 뒤였다. 문학기자 처음 시작한 이후, 아니 내가 앞으로 기자를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으로부터 한두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최소한 '기자생활 중 가장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바로 그때'임을 직감했다.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도 생각하는 사이 수초가 흘러버렸다...

전열을 가다듬고 데스크 선배에게 급히 두 가지를 급히 요청했다. 선배, 5단 광고부터 날려주세요, 인터뷰 전문(全文) 다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인터뷰 질문과 답변, 보내온 글의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쓰겠습니다. 목소리 그대로 들어가야 하고, 리라이팅할 여유 없습니다...

다음날 5시. 밤새 뒤척였으나 잠은 잘 오지 않았다. 눈을 뜨자마자 스크랩마스터 앱으로 조간신문을 전수 검색했다. 밤 사이에 혹여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은 언론사가 있을까 싶었는데, 없었다. 수상 이후의 인터뷰는 아닐지언정 수상 당일 이뤄진 세계 미디어 유일의 인터뷰.

나는 안다. 아니 모두가 알 것이다. 보르헤스의 말처럼, 이 모든 건 전부 사라질 것이다. 경사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소동의 핵심은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이 선물처럼 주는 상의 무게감이 아니다.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문학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창고에 메달이 없더라도 책의 가치가 낮은 것도 아니며, 오직 독자와 작가의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 아무도 본 적도 없고, 목격하지도 못했던, 바로 무엇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10대 때부터 낡은 도서관 책장 옆 구석에 앉아 누래진 책을 펼치면서 굳게 믿고자 했고 기대고자 했으며 애써 껴안고 나 스스로도 부축 받으려 했던 바로 그것, 그 작은 믿음(들)이 거대한 경이로 뒤바뀌어 지금 이 순간에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

이 감정은 나 개인의 감정만이 아닐 것이다. 문학에 감염됐거나 감염돼본 자들은 이 기분을 알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 모두가 믿어왔던 '문학'이라는 가치가 지금 '실현'되고 있다는 것... 그 생각을 할수록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멀리서나마 나의 작은 글로, 그 모두의 마음에 한 발짝 담그며 동참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 행복해지고 충만해진다....


공감했다. 맞말, 맞말 또 맞말. 'correctness'가 아니라 'empathy'에 가까웠지만 아무렴 어때. 이동진 평론가는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영화 <다른 나라에서> 한줄평을 이렇게 남겼다.

외국관객들은 제대로 못 느낄 뉘앙스까지 만끽하는 한국관객의 복


이제 이 말은 마치 이동진의 그것(예컨대 '명징하게 직조해낸 밈')처럼 써먹을 때다. 한강 작가 작품을 번역서로 보지 않는다는 건 "외국 독자들은 제대로 못 느낄 뉘앙스까지 만끽할 수 있는 한국 독자들의 복"이다. 단언한다.


따라서 우리는 김유태의 말처럼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순간'을 마주했다. 모두가 문학 이야기를 하고, 서로 감상을 나누는 신드롬 말이다.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야 말하던 주제를 이제 지나가는 '행인1'과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거칠게 말하면, 이것이야 말로 진짜 '한강의 기적'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가장 유사한 경험은 2017년이었다. 정당하게 선출된 권력이 정당하게 해체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토론했다. 정치란 무엇이고, 대통령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나눴다. '서로 생각이 달라도 합의한 결과는 (개인적 유불리에 휘둘리지 않고) 인정해야 한다'는 기초 원칙을 다시금 되새겼다. 한층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발전한 계기였다(고 믿는다). 형식적인 민주화 이후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룩한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믿는다).



문학이라는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선 '모 출판사 직원에게 수개월치 월급이 보너스로 나왔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밤을 새워 일하느라 집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취재하는 기자들과 '그 정도면 나 같아도 밤새도록 일하겠다'는 댓글이 휘몰아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정세랑 작가의 <아라의 소설>을 읽었다.


그래도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박완서 선생님이 계시는 듯했다. 세상을 뜨고 나서도 그렇게 생생한, 계속 읽히는 작가가 있다는 게 좋은 가늠이 되었다.

사실 아라가 생전에 작가를 뵌 건 아주 잠깐, 아주 멀리서였고 그것도 뒷모습이었다. 그때 아라는 대작가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카락을 가지고 싶다고 기이한 생각을 했다. 한 올만 뽑으면 안 될까 하고 록 스타에게 손을 뻗는 팬처럼 침을 꿀꺽했지만 물론 그런 망나니짓은 하지 않았다.

용기 내 앞에서 인사라도 할걸, 뒤늦은 후회를 하다가 따라 걷는 자에겐 뒷모습이 상징적일 수도 있겠다고 여기게 된 건 요즘의 일이었다.


한강을 따라 걷는다. 물론 망나니 짓은 하지 않는다. 그저 뒷모습을 따라 걷을 뿐이었다. 이렇게 뒷모습을 따라 걷는 게 소설 속 아라처럼 삶의 좋은 가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웨덴 대사관 앞에 몰려가 '역사를 왜곡한 한강을 비난하며 노벨상 수상 자체를 반대한 단체'들이 못마땅했다. 물론 그들에게 '노벨 문학상은 작품에 시상하지 않고, 작가에게 시상하는 것'이라는 기꺼운 설명도 하고 싶었다. 내 기준에선 그건 가늠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변상욱 기자의 칼럼(20241014 미디어오늘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에서 가장 황당했던 존재는 언론이었다>)처럼 "왜 5·18이 ‘세계화’는 이루어내도 ‘전국화’는 까마득히 멀어지고 있는지"(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헌법전문에 넣겠다는 건 민주당 대선후보들의 오랜 공약이다), "세월호, 이태원 등 ‘우리’라는 공동체를 할퀴어버린 참사들을 소설, 연극, 시로 그려내면 외국 문학상은 수상해도, 국내에선 논란이 되고 블랙리스트에 오르는"지도 묻고 싶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유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섰"기 때문이라고 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이태원 참사가 북한 소행이라든지, 제주 4.3 사건이 폭도 토벌작전이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후세대는 듣지 않았으면 한다. 여전히 입에 담는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도 사라졌으면 한다. 역사의 뒤안길에 그런 여유공간은 없으니까.


하늘은 파랗고 동백은 빨갛다. 파란 당, 빨간 당이 있기 전부터 세상엔 형형색색의 자연과 생물이 어우러져 살아왔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동수군을 잃은 정성욱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초현실적이다. 지난해 7월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내부 탐방이 전면 금지되었을 때, 유가족들이 항의를 했단다. “그때 해수부 주무관이 그랬어요. 하늘 색깔이 바뀌었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촛불 앞의 어둠은 아직 아득한 검은색, 10년째 그 자리다.

(20230304 한겨레發 <아2고! 2게 대체 무슨 일2고?>)


문학이라는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그렇다. 이건 유령이다. 분명히 눈앞에 있지만 실체는 없는. 그래서 어쩌면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아니 '너무나도 많은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유령이다. 한강은 유령을 소환했다. 감사하게도.



앵무새가 원래 이렇게 우느냐고 내가 묻자 인선은 대답했다.

글쎄, 처음부터 이렇게 울었어.

동박새 같은 소린데, 내가 말하자 인선은 웃음을 터뜨렸다.

모르지, 밖에서 우는 새한테서 배웠는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까마귀를 따라 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니....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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