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외] 문학이라는 유령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나중에 우리 학생들 중에 노벨상이 나오면.."
"네? 뭐요?"
"노벨상."
"농담하시는 거죠?"
"내가 왜 XX(내 이름) 학생이랑 농담을 하지?"
8시 0분 15초쯤 됐을까. 한림원 트위터를 수십 번 스크롤하다가 게재된 포스팅을 보고 두 손으로 감싸쥐고 '악' 비명을 질렀다. Han Kang...
그 전율을 잊지 못한다. 엉뚱하게도, 그날 아침 그분의 메일이 도착한 뒤였다. 문학기자 처음 시작한 이후, 아니 내가 앞으로 기자를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으로부터 한두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최소한 '기자생활 중 가장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바로 그때'임을 직감했다.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도 생각하는 사이 수초가 흘러버렸다...
전열을 가다듬고 데스크 선배에게 급히 두 가지를 급히 요청했다. 선배, 5단 광고부터 날려주세요, 인터뷰 전문(全文) 다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인터뷰 질문과 답변, 보내온 글의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쓰겠습니다. 목소리 그대로 들어가야 하고, 리라이팅할 여유 없습니다...
다음날 5시. 밤새 뒤척였으나 잠은 잘 오지 않았다. 눈을 뜨자마자 스크랩마스터 앱으로 조간신문을 전수 검색했다. 밤 사이에 혹여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은 언론사가 있을까 싶었는데, 없었다. 수상 이후의 인터뷰는 아닐지언정 수상 당일 이뤄진 세계 미디어 유일의 인터뷰.
나는 안다. 아니 모두가 알 것이다. 보르헤스의 말처럼, 이 모든 건 전부 사라질 것이다. 경사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소동의 핵심은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이 선물처럼 주는 상의 무게감이 아니다. 그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문학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창고에 메달이 없더라도 책의 가치가 낮은 것도 아니며, 오직 독자와 작가의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 아무도 본 적도 없고, 목격하지도 못했던, 바로 무엇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10대 때부터 낡은 도서관 책장 옆 구석에 앉아 누래진 책을 펼치면서 굳게 믿고자 했고 기대고자 했으며 애써 껴안고 나 스스로도 부축 받으려 했던 바로 그것, 그 작은 믿음(들)이 거대한 경이로 뒤바뀌어 지금 이 순간에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
이 감정은 나 개인의 감정만이 아닐 것이다. 문학에 감염됐거나 감염돼본 자들은 이 기분을 알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 모두가 믿어왔던 '문학'이라는 가치가 지금 '실현'되고 있다는 것... 그 생각을 할수록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난다. 멀리서나마 나의 작은 글로, 그 모두의 마음에 한 발짝 담그며 동참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 행복해지고 충만해진다....
외국관객들은 제대로 못 느낄 뉘앙스까지 만끽하는 한국관객의 복
그래도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박완서 선생님이 계시는 듯했다. 세상을 뜨고 나서도 그렇게 생생한, 계속 읽히는 작가가 있다는 게 좋은 가늠이 되었다.
사실 아라가 생전에 작가를 뵌 건 아주 잠깐, 아주 멀리서였고 그것도 뒷모습이었다. 그때 아라는 대작가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카락을 가지고 싶다고 기이한 생각을 했다. 한 올만 뽑으면 안 될까 하고 록 스타에게 손을 뻗는 팬처럼 침을 꿀꺽했지만 물론 그런 망나니짓은 하지 않았다.
용기 내 앞에서 인사라도 할걸, 뒤늦은 후회를 하다가 따라 걷는 자에겐 뒷모습이 상징적일 수도 있겠다고 여기게 된 건 요즘의 일이었다.
하늘은 파랗고 동백은 빨갛다. 파란 당, 빨간 당이 있기 전부터 세상엔 형형색색의 자연과 생물이 어우러져 살아왔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동수군을 잃은 정성욱씨가 들려준 이야기는 초현실적이다. 지난해 7월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내부 탐방이 전면 금지되었을 때, 유가족들이 항의를 했단다. “그때 해수부 주무관이 그랬어요. 하늘 색깔이 바뀌었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촛불 앞의 어둠은 아직 아득한 검은색, 10년째 그 자리다.
앵무새가 원래 이렇게 우느냐고 내가 묻자 인선은 대답했다.
글쎄, 처음부터 이렇게 울었어.
동박새 같은 소린데, 내가 말하자 인선은 웃음을 터뜨렸다.
모르지, 밖에서 우는 새한테서 배웠는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까마귀를 따라 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