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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or review Oct 25. 2024

다시는 하지 않을 이야기

2024년 10월 넷째 주

펜이라는 말은 깃털을 뜻하는 라틴어 펜나 penna에서 왔다고 합니다. 이 펜은 누군가의 몸이었습니다. 펜이란 말이 깃털에서 왔다면, 우리의 펜은 날개에서 온 것입니다. 날개의 일부, 바람과 맞닿은 살이었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글을 쓰는 동안엔 날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하늘을 날 듯 문장을 쓸 수 있을까요.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內 김멜라 작가노트 '펜, 깃털 그리고 환영사' 中


힘껏 날아올라 문장을 써봅니다. 아니, 갈겨봅니다. 혹시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싶어서요.

실패했습니다.


오늘은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힘이 많이 들어, 다시는 이 얘길 하지 않을 겁니다.



도달한 곳


한강 작가의 작품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면 마침내 <희랍어 시간>에 도달합니다.


너, 왜 철학을 하려고 하느냐고 나에게 물은 적 있지. 내 생각을 정말 듣고 싶니?
고대 희랍인들에게 덕이란, 선량함이나 고귀함이 아니라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하잖아. 생각해 봐. 삶에 대한 사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러니까 바로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사유에 관한 한 최상의 아레테를 지니고 있는 거 아니겠니?


저도 철학과를 나왔습니다. 대학생활은 악몽습니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그런 악몽 말입니다.


한 무리의 군인들을 피해 나는 달아났다. 숨이 턱에 받쳐 뜀박질이 느려졌다. 그들 중 하나가 내 등을 밀어 넘어뜨렸다. 몸을 돌려 올려다보는 순간 군인이 총검으로 내 가슴을, 정확히 명치 가운데를 찔렀다. 새벽 두 시였다. 벌떡 일어나 앉아 손으로 명치를 짚었다. 오분 가까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덜덜 턱이 떨렸다. 울고 있었던 줄도 몰랐는데, 얼굴을 문지르자 손바닥이 흠뻑 젖었다. 며칠 뒤에는 누군가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1980년부터 지금까지 삼십삼 년 동안 지하 밀실에 가둬둔 5.18 연행자들 수십 명이 있다고 했다. 이제 비밀리에, 내일 오후 세시에 모두 처형할 거라고 했다. 꿈속의 시간은 저녁 여덟 시였다. 내일 오후 세시까지 고작 열아홉 시간이 남았다. 어떻게 그걸 막을까. 말해준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휴대폰을 쥐고 어쩔 줄 모르며 길 가운데 서 있었다. 어디에 전화를 걸어 알려야 할까. 누구에게 알리면 그걸 막을 수 있을까. 이걸 왜 하필 나에게, 아무런 힘도 없는 나에게 알려줬을까. 빨리 택시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어디로 가자고 해야 할까. 어디로 가서 어떻게... 입속이 타들어가던 한 순간 눈을 떴다. 꿈이었어.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펴면서, 어둠 속에서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꿈이었어, 꿈이었어.


대학과 대판 싸웠기 때문입니다(지금부터의 내용은 모두 교육부, 법원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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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대학교 신문사를 했습니다. 2021년엔 편집국장을 했습니다. 매주 밤을 새우며 일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던 2021년 10월, 대학 총장이 "차근차근 학생들을 설득해 왔고, 다음 달부터 전면 대면수업을 하겠다" 인터뷰합니다. 교육부 규정에 따르면, 대면 수업은 학생들과 합의(협의 x)한 뒤, 결정해야 합니다. 그 기사가 보도된 날 밤, 총학생회장은 "금시초문"이라고 답합니다. 학생들은 '지금이라도 서울에 자취방을 구해야 하냐'며 혼란에 빠졌습니다. 애초에 불가능한 었습니다. '대면수업 선도대학'을 원했겠죠.


하지만 학생사회는 급속도로 혼란해집니다. 곧바로 마법의 단어(취재가 시작되자)를 꺼내듭니다. 혼란이 예상되는데 왜 막지 않았지. 잘못된 거면 왜 정정하지 않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질문들을 던져봤습니다.


우선 총장을 인터뷰 한 기자부터. "대면 수업하겠다고 당신네 총장이 말한 건 언론중재위원회에 가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사실이에요". 홍보팀과 학사부총장은 이 인터뷰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묵인. 이걸 묵인이라고 하죠.


대학 측 공식입장은 이랬습니다.


"사회 지도자 계층에게 화폐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홍보효과가 발생했다."


도대체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 지도자 계층'이 따로 있는 건지, '거짓말로 발생한 홍보효과'도 긍정적으로 확대 해석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선 '반대되는 말을 하지 말라'는 압력이 이어집니다. 카페라떼를 사들고 회유하려 찾아온 홍보팀장을 단호하게 되돌려 보냅니다. 총장 비서실에서 쏟아지는 전화. '무한 질주' 하지 말라는 까지.


학사부총장의 대화 요청. "이건 면담 아니야. 개별적으로 대화하는 거야"로 시작된 고압적인 태도. 기사 하나 못 쓰는 편집국장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물음. 묵묵부답. 비판하지 않고, 팩트만 담은 기사를 쓰겠다는 재요청. 불허. 사과할 의향은 있냐는, 마지막 물음.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뒤돌아선 뒷모습.


그날로 학보사 편집국장에서 쫓겨났습니다. 저와 함께 일하던 다른 학생 기자 모두 함께 쫓겨났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라며 눈물을 흘리는 후배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집어던져진 물건도 돌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술에 취해 "이게 맞아요? 형! 이게 맞아요?"라는 후배의 질문에 막혀버린 입. 그야말로 입이 10개라도 불가능했던 대답.


그저 "대학의 명예와 위신을 해칠 수 있다"는 게 '공식적인 이유'였습니다. '명예훼손했다'는 결과를 놓고 얘기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명예훼손 할 가능성' 때문에 잘린 겁니다. 갑자기 다음 신문을 찍어낼 예산도 없다고 니다. 사비를 쓸 수도, 다른 부서에서 돈을 빌릴 수도, 추경을 받을 수도 없다고도 합니다.


"... 우선 독자들에게 사과해야겠습니다. 사과문 쓰겠습니다. 예정대로 신문 발행 못했으니까."

"그거를 굳이 올릴 필요가 있나? 그거를 외부인한테 뭘 얘기해? 굳이 왜? 낼 필요가 없는 건데. 우리 사정을 일일이.."

"아니요. 사과문 쓰겠습니다."

"... 그러면은 이게 예기치 못한 사유로.. "

"아 멘트도 정해주시네요? '예기치 못한'으로 하라고..."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추운 거리에 나와, '강압적인 행정과 횡포에 가까운 의사결정'을 규탄합니다. 칼바람을 맞으며, 행진합니다. 교내 방송국 국장이 '대학 민주주의가 죽었다'며 캠퍼스에 장례음악을 틉니다. 학생들은 총장실 앞을 점거합니다. 행렬에 따르지 못한 채, 멀리서 지켜만 봅니다.

총장은 학생들을 매번 무시했다. 이렇게. 대놓고.
진짜로. 출처:총학생회 인스타

그제야 외부 언론의 취재가 시작됩니다. '진짜 마법의 단어' 앞에서, 대학은 "해임한 적 없다"고 내뺍니다. 거짓말. "다음날 오후 5시까지 짐 싸서 편집실을 나가"라는 녹취록을 공개합니다. 기자는 기사를 다시 씁니다. 또다른 기자는 캠퍼스에서 쫓겨납니다. 홍보팀 의미없는 정정보도 청구 쏟아니다.


"A 기자님, 제가 정말 잘못한건가요? 학교쪽 얘기도 들어보셨으니까, 객관적으로 제가 잘못한 걸 말씀해주세요."

"학교가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 저도 정말 분노했어요. 잘못한 거 없어요. 그냥. 뭐랄까.. 굉장히 'extra ordinary'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대학은 "기사가 사실과 달라서 잘랐다"고 말을 바꿉니다. 학칙, 언론중재법, 헌법 위반이라는 법률 자문을 받아 교육부에 공문으로 제출합니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양치기 소년' 전략을 내세웁니다. 또 거짓말. 장황한 거짓말. 법으로 점철된 거짓말.


법률 싸움, 팩트 논쟁에 돌입합니다. 6개월 간 문서 전쟁을 치릅니다. 대학의 모든 억지 주장을 하나씩 반박합니다. 대학 대표 변호사는 '명예훼손', '지도권', '임명권'을 내세웁니다. 혼자 법 공부를 하며 '명예훼손 조각 사유', '학칙상 지도권이 발생하지 않는 관계', '임[면]권이 아닌 임[명]권으로는 해임 불가' 등받아칩니다.


난 철학과인데. 난 법대생이 아닌데. 내가 진실인데. 부당한 힘이 진실을 이길까. 설마.

한나 아렌트와 아이히만을 가르친 사람이 악에 물들어 게 집단 린치를 가할까. 마.

<정의란 무엇인가> 책을 감수했다면, 본인이 배운 대로 살지 않을까.

난 도대체 무슨 철학을 배운걸까. 이런 대학엔 왜 다녀야 하는 걸까.


세종시에 있던 교육부 조사관이 직접 서울로 올라와 현장 조사합니다. 보도하려던 기사를 한 줄씩 검토합니다. 결론. '모두 사실. 부당한 해임.'


물러서지 않는 벽. 대학에선 끝까지 짓밟기 위해 내부 TF팀을 꾸립니다. 바람처럼 학칙을 바꿉니다. '민·형사 소송 등을 당하여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소송비용 지원을 통해 교직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아 소송을 하려는 거구나. 학교 돈으로, 자기 돈이 아니라 학교 돈으로, 나랑 소송하자는 거구나.


한 순간에 전액 장학금도 날아갑니다. '(신설)정당한 지도에 불응할 경우 징계할 수 있다. 학칙에 의거하여 징계를 받은 자는 장학금을 지급하지 아니한다.' 돈도 뺏어가는구나.


참고인 조사를 위한 출석요구서.


무거운 발걸음.


"저기 앉아."

"자리가 정해져 있나요?"

"원래 다들 거기 앉았어."

"...학교에서 높으신 분들 다 오셨네요."

"...녹음 할게요."

"싫습니다."

"원래 녹음 동의한다는 싸인 다 해"

"싫다고요."

"그럼 진술 거부하는 걸로 알겠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학에서 이런 조사 할 땐 다 동의 받아. 우기지 마. 나중에 소송가면 이런 게 다 공식 증거로 쓰이는 거야."

"우기는 게 아니라, 제 의견을 말씀드린 겁니다."

"xx대 대표 변호사 xxx니다. 저 알죠? 통비법상 당사자 녹음은  불법 아닙니다. 녹음 할게요."

"..."

(중략)

"먼저 사과하고, 고개 숙이고 그러면 해결되잖아."

"제가 먼저 사과하라고요?"

"교수님도, 총장님도 다 힘드셨을 거 아니야. 이렇게 공문 작성하는 우리도 힘들고."

"법대 학장님. 지금 그게 2차 가해입니다."


게다가 대학 총장은 "조주빈과 같은 악마"라며 개인적인 비난도 이어갑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사과 등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합니다. 총장은 '사과할 수 없다'고 소송을 겁니다. 대법원까지 이어진 소송. 그리고 2심 결과인 고등법원 판결문이 이제야 도착합니다.



붕괴


총장 패소. 한시름 덜지 않았냔 질문에 답합니다. "하나도 기쁘지 않아.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상처는  깊어집니다. 사흘을 고민해도 끝끝내 펼쳐볼 수 없었던 판결문을 펼칩니다. 호화스러운 로펌 변호사들이 떡하니 등장하는 첫 페이지. 국문과 교수까지 등장해 "'조주빈과 같은 악마'라는 말은 언어적 표상, 발언의 구조적 흐름이나 응집성 차원의 구성 관점에서 문제 없다"고 항변한 마무리까지. 한 줄 한 줄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웃자고.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꽤 오랫동안 스스로 다짐해 왔는데. 붕괴해 버렸습니다.


누군가 물어봅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도저히 잘 설명할 자신이 없어, 대충 밀어냅니다.


그냥 쫌 복잡해.


물론 공식적인 답변(국회, 언론 등)엔 몇 가지 인용구를 포함 말합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든지.

'진실과 거짓이 있을 때, 세상 모두가 거짓을 말하더라도 당신이 진실을 고수했다면 당신은 미친 사람이 아니다(조지오웰 <1984>)'라든지.

'가난한 것은, 일을 해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 척박한 땅에 사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사로잡혀 사는 거야말로 수치다(박경리 <토지>)'라든지.

'애들이 이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거 봤어? 농성한다고 학교 측에서 정수기를 다 떼어갔지 뭐니. 저녁 되면 전기도 끊어버려. / 독하네요. / 학교가 벽 같아. 벽 보고 말하는 것 같아. / 우리는 이미 졌어요 / 그제야 사람들이 들었다. 교수 중 한 사람이 말했다. / 그렇게 생각되겠지만 그렇게 말하지 말자(정세랑 <피프티 피플>).'라든지.


그리고 이번주에 발견한 문장(한강 <파란돌>)을 추가합니다.

그들과의 만남은 대체로 즐거웠고, 심각한 이야기는 거의 오가지 않았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꼭 한 번, 대학 시절의 은사를 찾아뵈었을 때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종교가 필요할 때가 없으세요?

글쎄, 종교적인 것과 종교는 다른 것이지. 그런데 왜, 요즘 관심이 있어?

그냥…… 인간적인 한계를 느껴서요.

지나가듯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싸워서 이겨야지, 그래야 그림이 되지.

그날 지하철역까지 선생님이 나를 배웅 나온 것이 본래 다정한 성품 때문이었는지, 부끄럽게도 나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여기 20년 동안 일했는데, 대학이랑 싸워서 이긴 학생을 본 적이 없어'라고도. '너 총학생회장 하려고 해?'라고도. '계란으로 바위치기야'라고도. '쇼 하지 마'라고도. '상담받고 (피해자인 거) 부각하게?'라고도.


아니, 애초에 싸우는 게 아니라 '먼저 포기하겠다'며 자퇴서를 두 번이나 들고 갔을 때도. '지금이 민주화운동하는 80년대야?'라며 끝까지 괴롭혔던 말들이 여전히 까끌거립니다. 벅벅. 드르륵드르륵.


"이제.. 저 좀 조용히 살고 싶어요... 직원들이나 교수님들이 쳐다보는 눈. 너무 무서워요."

"너가 뭘 잘못했는데? 잘못한 거 없잖아! 좀 떳떳해져!"

"안 돼요. 그게.. 정문, 중문으로 못 다니겠어요. 일부러 더키친 앞으로 돌아가요. 아무한테도 안 보이게.
악이 만연해요. 그 분이 말했듯이. 전 대학이 꿈을 이뤄주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니, 적어도 도와주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은 꿈을 철저히 짓밟는 곳이에요. 아.. 과장(옆에 있던)님.. 울지마요."


잊기 위해 일을 시작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잊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바쁘게 움직입니다. 커리어에 채 1달의 공백도 만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제도 악몽을 니다. 꿈이었어. 괜찮아. 꿈이었어.


여전히 들어오는 인터뷰 요청. '대학 언론의 발전과 저널리즘의...인터뷰를 요청드리고자...'

굳이 한 마디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끝끝내 입 밖으론 툭 내뱉지 못했던 말(이병률 <바다는 잘 있습니다>)을 조심스럽게 선별합니다.


누구나 미래를 빌릴 수는 없지만, 과거를 갚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 스스로에겐 송경원 편집장의 말(20241022 씨네21發 <[편집장의 opening] 곧은 말, 너른 삶. 굽은 말, 부박한 생>)을 건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애정 어린 관심과 호기심, 그걸 담아낼 곧고 너른 말이다. 살아온 대로 말하기 때문에 품격 있는 말이 존중받는다. 반대로, 말하는 대로 살아지기 마련이니 증오의 언어를 지워나가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 굽이진 말을 뾰족하게 받아치면 악순환이 이어질 뿐이다. 힘들고 괴롭고 피곤할지라도 모두 감싸 안을 수 있는 '곧고 너른 말'을 입에 담으려 애써야 한다. 우리에겐 사랑의 말이 더 필요하다. 아무리 부당하게 공격당하고 미움받아도 "서로 사랑하는 것만은 도저히 그만둘 수 없(<플라네테스> 중에서)"으니까.




영화 <벌새> 中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펴 봐! 그리고 움직이는 거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손가락은 신기하게도 움직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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