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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or review Nov 01. 2024

2024년 10월 28일

2024년 11월 첫째 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나태주 <지금도 네가 보고 싶다> 中


이 시의 제목은 11월입니다.

진짜 11월입니다. 한기와 온기가 뒤엉키는 하루 끝에서 눈을 바짝 치켜듭니다.

깜빡, 깜빡, 깜빡. 마우스 커서와 같은 속도로 눈을 깜빡여봅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 안정됩니다.

이제 손을 움직여 글을 써봅니다. 한 글자씩. 천천히.



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2024년 10월 28일(월),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비가 왔습니다. 정말 미세하게 노크하는 빗방울을 맞았습니다. 발길을 돌려 곧장 이태원역으로 갔습니다. 차마 10월 29일(화)에 갈 용기는 없었습니다. 퇴근 지하철엔 사람들이 콩나물처럼 빽빽했습니다. '혹시 나처럼 이태원역에 가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한 것도 잠시. "죄송합니다. 내릴게요."라는 말로 밀집된 사람들을 뚫어내야 했죠.


한 어르신께서 머리에 헬멧을 쓴 채 인파 관리를 하고 계십니다. 아니, 헬멧을 머리에 어정쩡하게 얹은 채로 멀찍이 사람들을 멀뚱멀뚱 바라봅니다. 눈이 마주치자 말씀하십니다. "이 짝(쪽)으로 올라가요오~". 어디로 간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 하긴 화장실도, 출구도 모두 위에 있겠지. 여긴 목적지가 아니라 경유지니까.


6호선 이태원역에 도착해 열차에서 내리면, 출구까지 꽤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한 눈에 채 담기지도 않는 높이. 길게 뻗은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일단 이어폰을 집어넣고, 주위 소음에 집중합니다. "벌써 2년이래. 미친." 욕설이 따갑게 들이칩니다. 속으로 받아칩니다. '맞아. 벌써. 2년이지. 2년 전엔 내가 이렇게 살 줄 몰랐는데. 2년은 군 입대 후 전역까지의 시간이지.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 '맘마' 같은 말을 따라 하는 시간이지.'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나오자마자 본 풍경은 너무나도 일상적이었습니다. 풋라커와 러시 가게에선 상품을 팔기 바쁩니다. 그 앞으로 딱 열 한 걸음을 내딛으면 골목에 도착합니다. 마침내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입니다.


그들도 사람들을 뚫어내야 했고, 경유해야 했고, 이럴 줄 몰랐을 텐데.


SBS 기자 1명이 리포트를 달달 외웁니다. "2년 전 참사가 났던 골목.. 2년 전 참사가 났던 이 골목.. 큼큼.. 1년 전부터 추모 작품들이.. 추.모... 추모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기자는 골목을 촬영합니다. 스님 한 분이 목탁을 두들깁니다. ".... 다음 생엔..." 이렇게 초라해진 골목길엔 이제 번쩍이는 조형물과 이마트 24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추모 작품에 써 있는 글을 정독합니다.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은 미완성입니다. 2022년 10월 29일 밤, 이곳에서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그날로부터 15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빈자리를 봅니다. 이 참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에 흔적을 남겼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생존자와 구조자, 이태원 지역 주민, 상인, 노동자... 그날의 시간을 겪는 모든 사람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서 있는 이곳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기억해야 할 얼굴들, 부르지 못한 이름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부르지 못한 이름을 새기고 누구나 안전하고 존엄하게 이 길을 걸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 부디, 그날 밤을 기억하는 모두의 오늘이 안녕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문장을 계속 읽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의 기억


'부디, 모두의, 오늘이, 안녕'이라는 말은 생선 가시처럼 목에 걸립니다. 그리고 JTBC 오대영 전 앵커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말(20221111 JTBC 뉴스룸)을 기억해 냈습니다.

제가 전해드리는 뉴스룸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1년 반 동안 매일 여러분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소중했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영광이었습니다. 부족함도 많았습니다.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제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안전하시길 바랍니다. 뉴스룸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시 방송 화면이 아닌 스튜디오에서 직접 이 말을 들었습니다. 모두가 오대영 앵커의 마지막 멘트는 뭘까 궁금해했습니다. 굳이 '안전'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태풍 힌남노신당역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고, 카카오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까지 이어지는 등 사건사고가 연이었기 때문일까. 집에 가는 길에도 계속 혼자 생각했습니다. '왜 안전이 인사말이 된 걸까.'


그 이후 뉴스룸을 이어받은 박성태 전 JTBC 앵커에게서도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엔 안 믿었지. 모니터로 150명 딱 찍히는 순간, 다시 알아보라고 했어. 맞대. 150명 압사가. 어우..."

2022년 11월 2일 수요일

한 기자는 제게 "새벽 내내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눈물이 쏟아지는 그 시간. 언론사에 쏟아지는 적나라한 제보 사진과 영상도 봤습니다. 아수라장이라는 표현도 부족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태원을 찾은 건 참사 며칠 뒤입니다. 수많은 국화꽃과 포스트잇으로 뒤덮였던 거리는, 이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골목을 막은 펜스도, 삼엄한 경찰도 보이지 않습니다. 텅 빈 일상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4학년 정보사회학과 마지막 리포트 주제는 '반복되는 참사의 역사'였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까지 약 10년 주기로 반복되는 참사를 되짚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당시 전국재난참사피해가족연대가 발족하기 전까지 준비 과정이 필요해 유가족 인터뷰를 진행할 순 없었습니다. 과제는 엎어졌습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미완으로 남겨진 주제입니다.



해갈과 이별


어쩌면 이건 '우리 사회'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정준희 교수님의 말(20241024 씨네21 <정준희의 closing: 어느 부끄러운 사회과학자의 소심한 축사>)을 빌리자면, 답이 없는 건 아닙니다. 역량이 없거나, 비겁해서 답을 내지 못할 뿐이죠.

우리가 사회를 지어 살아가는 한 사회에 대한 탐색과 질문 그리고 해답 찾기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사회는 이런 사회 과학의 느린 몸짓을 비웃으며 저 멀리 달아나고 있다. 미국 사회과학은 왜 트럼프가 멀쩡히 살아 돌아와 기세 등등하게 유권자를 후리고 다닐 수 있는지 해명하지 못한다. 유럽 사회과학은 홀로코스트의 비극 이후 영원히 묻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극우의 발호를 눈뜬 채 방임하고만 있다. 한국 사회과학은 우리 민주화 과정이 왜 이런 대통령과 여당을 주기적으로 권좌에 올려주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뭐 다들 나름 해설은 한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거나, 누군가의 탓을 할 뿐이다. 냉정히 말하면 역량이 없는 것이고, 다소 심하게 말하면 비겁할 뿐이다.


누군가 이 답을 찾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왜 우리는 참사를, 참사 뒤에 아픔을, 아픔 뒤에 공허함을, 공허함 뒤에 참혹함(신형철 <눈먼 자들의 국가> 中)을 반복할까요.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10.29 이태원 참사는 단순히 10월 29일에 발생하고 끝난게 아닙니다. 참사에서부터 참혹함까지 이어지는 그 모든 과정이 참사입니다. 가수 윤종신이 썼던 노래 제목처럼 '한 번 더 이별'하는 것까지 겪어야 진짜 이별이라는데, 아직 그럴 수 없습니다. 여전히 아리고 슬픕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10.29 이태원 참사와 이별하지 못했습니다.

윤종신 : '한 번 더 이별'은 제목부터 내 생각이 들어가 있는 건데.. 실제로는 한 번 더 이별해야 돼. '마무리하자 이제.. 힘들었던 것 같아..' 하면서 마무리하는 '그 이별'하고.

(누구는 1년, 누구는 6개월 누구는 몇 년이 가는 사람도 있지만) 한 번 이렇게 똑 떨어져 나가는 거를 내가 느끼는 때가 있어요. '..아! 이제는 된 것 같아' 그게 불현듯 찾아온다니까?
 
그냥 이렇게 먹다가 '어..! 생각해 보니까.. 여기 예전에 걔랑 왔던 데..' 이렇게 인식을 못하고 있었어. 그러면 나는 이별한 거야 그거는. 근데 한참 그 속에 빠져 있을 때는, 이미 저 집을 갈 때부터 생각나는 거지. 그러면 그 사람과 아직 이별한 게 아니지. 어디 품고 있는 거지 지금.
 
근데 여기 품고 있는 요 덩어리가 뚝! 하고 떨어져 나가는. 그게 예를 들어 물리적으로 얘기하면, 그냥 잘 때 뚝 떨어져 나갈 수도 있고, 각질이 떨어지는 것처럼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데. 그걸 못 느끼고 살고 있다가, 어느 날 월남 국숫집에서 이렇게 먹고 있는데 생각해 보니까 '여기 그때 그 집이네..' 심지어 몇 번 왔었어. 그럼 나는 이제 얘랑 이별한 거지. 그런 과정을 거쳐야 이별인 것 같아요. 완전한 이별.


그래서 오늘도 소환할 수밖에 없는 정혜승 작가의 책 <정부가 없다(이태원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


기왕이면 정부가 좀 더 다정했으면 좋겠다.
우리만 바라보고, 우리를 보호해 주는 다정한 정부.
'정부가 없다'고 분개해도
우리에게는 끝내 정부가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다.


여전히 10.29 이태원 참사를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2023년 6월 27일,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탄핵 심판 마지막 변론 기일에 제출한 이태원참사 유가족 의견서를 곱씹습니다.

우리가 희생하더라도 함께 지켜야 하는 게 국가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얼마간은 국가도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참사 이후 우리가 만난 국가는 차라리 거대한 폭력이었습니다.



오늘의 사족.

시간은 빠르다. 시간은 정확하다. 시간은 비정하다. 시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렇다면 시간과 관련해서는 이런 일을 해야 하리라.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변하지 않으면 좋을 것들이 변하지 않도록 지켜내고, 변해야 마땅한데 변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 변할 수 있도록 다그치는 일.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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