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의 '책'임.
'책임'인지 '책'이라며 반말을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딜레마 천국
웨일북(whalebooks)
기자가 꿈인 (나같은)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젠장, 이건 내 길이 아니야!’라고 실망하며, 책상을 쾅 내리치고 싶은 욕망. 눈을 반짝이며 ‘진정한 저널리스트의 생생하고 실천적 고민’이라고 치켜세우며 미래를 동경하는 마음.
그리고, 비보호 교차로에서 머뭇거리는 아이처럼 굳어버린 판단.
저자 김인정은 이와 비슷한 딜레마에 빠진다. 흔한 말로 딜레마 천국이다. 취재 현장에서 ‘고통을 언제 보여줘야 하는지’, ‘어떤 고통을 직시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고통을 보여줘야 하는지’ 헷갈린다. 고통을 지적하는 건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비겁하고 비현실적인지’, 혹여 ‘무례하진 않았는지’, ‘가난을 역경으로 보진 않았는지’, ‘보이지 않는 고통을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한다.
김인정이 분석한 ‘고통 구경하는 사회 메커니즘’(각 페이지 발췌)은 이렇다.
고통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자연스레 구경꾼이 모인다. 고통에 값이 매겨진다. 스마트폰을 든 구경꾼이 고통을 중매한다. 고통이 손쉽게 팔린다. 흔해진 고통은 누더기로 전락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누더기가 된 고통을 구경하고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 죄의식을 느낀다.
김인정은 그 죄의식에서 출발한다.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고, 지금껏 해온 일도 거의 쓸모없다는 절망'을 뿌리친다. 그리곤 우리에게 천국으로 향하는 단서를 쓱 흘린다. ‘기사를 디코딩해서 해결 방법을 논의하는 공동체’가 가능할까. ‘뉴스 뒷면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정확히 꿰뚫어내는 질문이 가능할까’.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도 절망하거나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단테는 <신곡> 지옥 편에서 “지옥은 나를 거쳐 황량한 도시로, 나를 거쳐 영원한 슬픔으로, 나를 거쳐 버림받은 자들 사이로 간다”고 했다. 신형철 교수는 이런 지옥을 엿봤다. 추천사에서 ‘간곡히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딜레마 천국에 같이 빠진 거다. ‘같이 천국으로 가자’고 유혹한다. 나도 천국으로 향하는 구원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이젠 내가 유혹할 차례다.
제목 : <고통 구경하는 사회: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저자 : 김인정
출판 : 웨일북(whalebooks)
발행 : 2023.10.15.
가격 : 15,750원
랭킹 : 인문 부문 124위 [교보문고](20241108 기준)
나 학보사할 때 이런 걸 왜 안 했을까. 잘할 수 있었는데.
여튼 이것도 억지로 썼습니다. 억지로 쓴 것 치고 열심히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