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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Oct 07. 2021

항상 건강할 줄만 알았다

바보같이


  나는 유선종양이 폐암으로 전이되어 생을 마감한 아이를 떠나보낸 14살 공주 말티즈 보호자이다. 가정에서 분양받아와 '체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리 아이는 감기 한 번 앓은 적 없이 건강했다. 입질 한 번 안 하고 으르렁 소리마저 듣기 힘들었던 그 어떤 생명체보다 착하고 순한 아이였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배에 심상치 않은 몽우리가 잡혔다. 곧바로 동네 병원에서 진료를 봤다. 병원에서는 '유선종양'이라고 했다. 유선 종양은 중성화를 하지 않은 암컷 개나 고양이에게서 흔하게 발견되는 유선(유방)에서 발생하는 종양이라고 한다.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너무 어렸다. 병원에서는 간단히 제거할 수 있는 별 것 아닌 질병처럼 말했기에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적 독립을 하기 전이었던 터라 부모님께 수술의 필요성을 말씀드렸지만 부모님은 단호하게 강아지 수술비로 쓸 돈은 없다고 하셨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불안이 다가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주입했다.


설마 우리 아이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병원에서도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을 거야. 지금까지도 건강했는데 뭐.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혹은 점점 커지고 아이는 평소처럼 잘 먹고 잘 자는데도 뼈가 보일 정도로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일어설 힘조차 내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듯 누워버리는 모습을 보았다. 축 쳐진 아이를 부둥켜안고 동네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췌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틀 동안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더 이상 누구의 눈치를 볼 상황이 아니었다.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부모님의 완강함마저 꺾어냈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차에 태우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체온을 나누며 큰 병원에 도착했다. 진료를 보고 의사 선생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들었다.


악성 유선종양이 폐로 전이가 되었습니다. 폐암입니다. 치료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이미 상당히 많이 진행이 된 상태입니다.


  머리가 멍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덜 아프라고 진통제를 처방받아 왔다. 그리고 아이의 남은 시간이라도 행복하게 해 주려, 평소 좋아서 환장하던 간식들을 입가에 두어도 전혀 먹지 못했다. 젖은 눈의 느릿한 깜빡임만이 살아있음을 표했다.

  아이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도록 결정을 내려주는 것도 보호자의 역할이란다. 크리스마스이브 새벽,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그저 두고 볼 수 없어 남의 얘기로만 여기던 ‘안락사’로 더 이상 아픔도 슬픔도 없는 곳에 보내주었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두는 것이 자연스럽고 좋은 것이라고 들어왔다. 중성화 수술은 아이한테 몹시 잔인한 방법이라 생각하고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었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서 중성화 수술을 해주지 않은 게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모른다. 종양을 발견하고 수술을 못 시켜준 것도, 병의 징조가 보일 때 바로 큰 병원을 찾지 않은 것도 후회된다.

  이 후회는 지금도 때때로 나를 괴롭힌다. 중성화 수술만 했었더라도 폐암으로 고통스럽게 떠나보내지 않아도 됐을 텐데. 노견이 되기 전이라도 해줄 것을. 종양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해서든 얼마가 됐든 바로 수술을 시켰어야 했는데.


  단 한 번도 특별히 아픈 적 없이 건강했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항상 건강할 줄만 알았다. 바보같이... 많이 아팠을 텐데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긴 시간 이런저런 핑계로 아이를 방치한 스스로가 밉고, 우리 아이에게 정말 미안하다. 그때의 ‘나’가 아니라 지금의 ‘나’였더라면 더 잘해 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텐데.



박OO님의 사연을 다듬어 옮겼습니다.



주변을 보면 중성화 수술을 해줘야 할 지 고민하시는 보호자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이 글이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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