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안에서의 자유를
인적이 드문 주택가 골목 끝집에 살던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아버지는 노르스름한 풍산개 새끼 한 마리를 안고 오셨다. 시골에 사는 지인에게 한 마리 얻었다고 한다. 털 달린 동물의 새끼는 그 어떤 동물보다 더 사랑스럽다. 이름은 ‘왕수’로 지었다.
마당에 기다란 밧줄을 횡으로 고정하고 그 줄에 쇠줄이 달린 목줄을 채워 묶었다. 묶어 키웠지만 어지간한 마당의 땅을 다 밟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땐 ‘묶여 사는 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별로 없었다. 그 정도면 상팔자라 생각했다.
왕수는 저렴한 포대 사료와 더불어 집에 남겨진 짬밥들을 먹으며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커갔다. 물에 넣으면 부풀어 오르는 아이들 장난감처럼 자고 일어나면 또 커져있었다. 다 크고 보니 풍산개라 하기엔 카리스마가 하나도 없다. 덩치와는 다르게 매우 순하고 바보 같았다. 그냥 풍산개의 탈을 쓴 비글이랄까. 보통은 몸을 뉘어 눈을 끔뻑이며 시간을 보내다가 사람만 보면 그 육중한 몸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반가워했다. 가족들이라도 지나갈 때면 앞발로 허벅지를 단단히 잡아놓고 그냥 지나가지 마라며 애교를 부렸다. 얼마나 사랑과 사람이 고팠을까. 가끔 큰 풍채에서 나오는 우렁찬 짖음으로 인해 온 동네가 시끄럽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온순한 녀석은 흔하지 않다. 스스로는 마치 누군가를 공격할 수 있는 튼튼한 이빨과 힘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때론 자신의 변을 맛보는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게 했지만 바로 치워주지 않은 주인의 잘못이었겠다.
마당개로 자랐지만 왕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대단했다. 일부러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서 구워줄 만큼 컸다. 맛있는 음식은 일부러 남겨 왕수의 입에 넣었다. 아버지에겐 친구나 다름없었다. 거의 매일 취해서 들어오시는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면 오랜 시간을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왕수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세상 원망도 하고 신세한탄도 한다. 말없이 바라만 보기도 한다. 착한 왕수는 옆에서 얼굴을 비비며 아버지의 주사를 받아준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개.... 와의 소통이 잘되셨다. 그리고 대화의 마무리는 늘 왕수의 자유였다. 매일 묶여 사는 게 얼마나 답답하겠냐며 두꺼운 목줄을 풀어주고 놀다 오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유를 얻은 왕수는 동네 밤공기를 만끽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게 일상처럼 당연했지만 어느 날은 해가 밝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한 달여를 왕수만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결국 다시 만나질 못했다.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던 왕수는 표정부터 순하다. 누구라도 나쁜 마음을 먹으면 충분히 쉽게 차에 태워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 안 좋은 생각은 가족들을 괴롭게 했다. 아버지는 크게 후회했지만 후회할 땐 이미 늦다.
반려동물은 보호자의 올바른 구속 안에서 제대로 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