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하게 말하자면
개를 키우고 싶다던 세 자녀의 등쌀에 무척이나 시달렸던 부모님은 마침 동네 사람의 발바리 출산소식에 만원을 주고 암컷 한 마리를 입양했다. 대소변은 가려야 할 텐데 생각하며 집 곳곳에 신문지를 깔아놨는데 신통하게도 집에 오자마자 신문지에만 대소변을 봤던 천재적인 발바리였다.
이름은 내가 지었다. 하도 사납게 굴고 고집이 세서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의 여자 캐릭터인 ‘춘리’로 지었다. 이름에 걸맞게 가끔 나타나는 쥐는 물론이고 나는 파리마저 앞니로 깨물어 잡곤 했다.
춘리와 우린 요즘의 대접받는 반려견들처럼 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함께 했다. 집을 비울 땐 몇 박을 떠나던지 함께 다녔다. 털 달린 우리 집 넷째였다. 그러다가 모든 옷감에 구멍을 내는 특기를 포기하지 않게 되면서 방은 출입금지가 되었다.
우리 춘리는 ‘풍산개 왕수’ 이전에 키웠던 강아지다. 춘리에게도 저녁마다 자유가 허락되었으며, 워낙 날쌔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던 춘리는 15년 동안 하루도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가난한 집에 입양된 것을 아는 듯 어디 하나 아픈 곳도 없었다. 흔한 감기 한 번 안 걸렸고, 피부병도, 귓병도 없었다. 예방 접종을 한 적도 없고 병원에 가본 적도 없는 건강 하나는 타고난 아이였다. 게다가 새끼를 세 번 낳았는데 기가 막히게 모두 크리스마스이브에 출산을 했다. 당연히 아빠가 누군지는 모른다.
크리스마스이브마다 새끼를 낳는 것은 우리에겐 선물과 같았다. 지독히 가난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유일한 선물은 춘리가 낳은 눈도 못 뜨고 꼬물거리며 엄마 젖을 찾아다니던 새끼 강아지들이었다. 우리에겐 그 어떤 선물보다 귀했다. 추운 겨울 쪼그려 앉아 새끼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미의 헌신으로 인해 새끼들은 늘 잘 자라줬다. 천재견 춘리를 영특하게 여기던 지인들은 서로 새끼들을 데려가려고 젖을 떼길 기다렸다.
춘리가 떠났던 해, 15살이 되던 때였다. 노견의 티가 전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십 년이고 삼십 년이고 우리와 함께 할 것 같았다.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 이번에도 출산을 맞았다. 출산 때만 되면 주인이고 뭐고 예민 보스가 되어 가림막을 쳐 놓은 집에서 나오지 않고 혼자 모든 일을 해냈다. 이번에도 근처만 가도 으르렁거리며 출산을 준비했고 금세 새끼 강아지의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신 때의 배 크기를 보았을 때 세네 마리는 출산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 새벽, 가족들은 출산이 잘 마쳐지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하지만 출산의 진행이 더디다. 아침 적이 되어서야 둘째를 낳았고 그 이후로는 춘리와 새끼의 끙끙거리는 소리와 핥아대는 소리만이 전부였다. 가림막을 들어 조심스레 바라보니 출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셋째를 출산하고 있는 중인데 중간에 걸려있다. 도와주려니 이빨을 드밀고 난리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끝까지 힘을 내서 출산하기를 기다렸는데 곧 셋째 새끼는 보랏빛이 되어버렸다. 춘리도 더 이상 쓸 힘이 남아있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건강해 보여도 노견은 노견이었다. 늘 혼자서 모든 일을 잘 해낸 춘리였기에 부모님은 그대로 기다려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병원에 갈 돈도 없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던 부모님은 동네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그런데 의사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죽은 새끼와 함께 춘리의 장기도 썩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수술을 해볼 순 있지만 큰 의미가 없으며 금액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고 한다. 조금만 더 일찍 왔어도 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응급처치만을 받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뒤, 그렇게 건강했던 우리 춘리는 1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온 가족은 미안함과 허전함을 이기지 못해 울며 지냈다. 가족이 떠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가난으로 인해 잃었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보호자의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인해 잃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돈이 있었더라면 분명 몇 년은 더 함께 했을 것이다.
춘리와의 기억은 너무나 소중하고 강렬해서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음에 안착해있다.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동물들이 그 세상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게 확실한 이야기라서 춘리를 다시 품에 안을 수 있다면 죽음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는 수년이 지나고도 춘리가 집에 있을 것만 같다고 한다. 풀어줘도 저녁이면 늘 집에 들어와 밥을 찾았던 것처럼 금방이라도 집에 들어올 것 같다며 그리워하고 슬퍼했다.
자식들은 너무 어렸기 때문에 모든 선택권은 부모님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마음은 죄책감이 더해져 더 아팠을 것이다. 아마 돈 때문에 춘리를 잃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8년째 키우는 푸들 갑돌이는 병원에 자주 데려가며 끔찍이 여긴다. 형편이 나아진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같은 후회를 하지 않으려 애쓰시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지금도 춘리를 기억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춘리는 15년 동안 단 한 번도 보호자의 도움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딱 한번, 마지막 출산의 때에 우리가 보호자로서 도와야 할 일이 생겼다. 그런데 그 한 번도 못 도와주고 보내버렸다. 보고만 있었던 나 스스로가 후회스럽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부모님이 밉기도 하고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5년 동안 아낌없이 주기만 한 춘리를 기억하는 것이 행복한 일이어야 하는데 죄책감 때문에 떠올리는 것이 몹시 가슴이 아프다. 다시 태어난다면 꼭 부잣집에서 태어나길.
지금도 경제적인 이유로 버려지거나 치료받지 못해 아픈 삶을 살고 있는
반려동물들이 많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돈이 없는 것은 유죄와 마찬가지입니다.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대비해야 하고 모아야 합니다.
무능력은 무책임으로 이어집니다. 무책임의 희생자는 반려동물입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아들이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