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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Oct 08. 2021

가족처럼이 아니라 가족으로

반려견을 식구로 맞아들일 땐


 2003년, 아내가 애견용품 회사에서 근무할 때였다. 강아지를 많이 만나는 직업이라서 그랬는지 살면서 한 번도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은 아내는 종종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말하곤 했다. 


 그 당시만 해도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았을 때였다. 대신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로 쓰였다. 이 표현을 지금에 와서 보니 가족이라는 느낌보단 재산상 소유물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또한 관상용이나 장난감 같은 뉘앙스도 있다. 누구도 가족을 내 물적 재산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가지고 노는 장난감으로도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강아지와 고양이를 많이 키워왔고, 동물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반려동물들을 가족으로 맞는 것에 있어서 매우 신중했다. 혹시나 아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애견’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그대로, 쉽고 즐거울 거라고만 생각해서일까 싶어 조심스레 물었다. 


평생 끝까지 책임질 수 있어?


 아내는 죽을 때까지 평생 함께 하겠다고 했다. 아내의 ‘다짐’과 강아지를 향한 나의 ‘애호’가 화합하여 속전속결로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했다. 강아지의 이름은 ‘앵두’로 지었다. 빨갛진 않지만 앵두처럼 눈도 코도 동글동글했다. 작고 하얀 포메라니안 녀석은 싱그럽게 열린 앵두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앵두가 우리 가정에 오고 우리도 웃는 날이 많아졌다.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외롭게 두지 않으려 서로의 직장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분양받아 온 지 열흘쯤 지났을까. 앵두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믿을 수도 없고 인정하기도 싫은 말을 듣고 말았다.


이 아이 눈을 보시면 하얀 줄이 있습니다. 그쪽 귀는 못 듣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두 눈 다 그렇습니다. 두 귀 모두 못 듣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 소리를 못 듣는 우리 앵두였다. 어쩐지 불러도 반응이 없고, 가까이 가도 인기척을 못 느끼는 것 같았었다. 그 모든 게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그랬구나.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저 사람에 대해 무심하거나 귀차니즘이 심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순식간에 멘탈이 탈탈 털린 상태로 병원을 나왔다.


 죽을 때까지 책임지겠다던 아내가 말한다. 

 “다시 보낼까..?”


 나는 화를 누르며 말했다. 

“죽을 때까지 책임진다고 하지 않았어? 우리한테 온 게 이미 인연이야. 우리가 키운다.”


 우리 부부는 듣지 못하는 앵두를 끝까지 책임지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여전한 사랑에 긍휼함까지 얹어 자식처럼 키워나갔다. 

 듣지 못하는 앵두에겐 늘 위험이 도사린다. 그 당시엔 목줄을 해서 산책을 시키는 문화가 아니었다. 강아지가 작으면 그냥 졸졸 따라다니게 두던 때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밖에 나갈 땐 안고 다니거나 아무리 사람이 없는 곳이라도 목줄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가 두 번 바뀌도록 함께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 당시 판단으론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갈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안  난임 부부 가정이 자식처럼 키워주신다고 하여 내심 다행인 마음으로 앵두를 보냈다. 앵두를 보내고 난 후 며칠은 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나마 더 좋은 주인을 찾아준 최소한의 책임은 다 했다는 사실이 불편한 우리 마음을 합리화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앵두 입장에서는 파양이었을 것이다. 이유도 모르고 헤어져야 하는 앵두였을 것이다. 끝까지 책임진다고 했는데 이유야 어찌 되었든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 자식처럼 여기며 살았는데 자식은 아니었나 보다.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잘못은 그리움이 되어 심장을 찌르곤 한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흰색 강아지만 보면 우리 앵두 생각이 난다. 잘 지낼까? 잘 지냈을까? 지금도 많이 보고 싶지만 앵두를 보낸 가정과는 연락이 닿질 않는다. 보낸 이후 몇 달은 소식을 전해받기도 하고 묻기도 했는데 입양 보낸 가정에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앵두를 그리워하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 스스로 자제했다.


 거실에 누우면 꼭 내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자던 앵두, 듣지를 못하니 짖지도 못해서 조용했던 앵두. 너의 귀가 되어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해.


 누구라도 어떠한 상황에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 반려동물을 입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장애가 발견되더라도, 멀리 떠나야 한다 해도. 


김OO님의 이야기를 옮기고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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