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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Oct 24. 2021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사랑의 방법

 30°를 웃도는 초여름, 설레는 마음으로 신축 아파트에 입주를 했다. 높은 층수에 뻥 뚫린 전망,  우리가 기다려왔고 꿈꾸던 곳이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살랑바람이 집을 스치며 노닐다 간다. 그런데 종일 우리의 귀와 마음을 아프게 하는 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강아지 두 마리의 짖음 소리다. 이사 오고 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쉬지 않고 짖어댄다. 참다못해 아내와 나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아파트 단지 2시 방향 쪽 공원이 조성되고 있는 곳에 텐트 하나가 보인다. 개들의 소리는 그쪽에서 들려왔다. 개들과 개 주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에 그리며 긴장되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작은 켄넬 안에 강아지 두 마리가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눕지도 못한 채 끼여서 끊임없이 짖고 있었던 것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에 짖다 헥헥대다 짖다 헥헥대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짖음 소리는 제발 살려달라는 절규 같았다. 물이라도 넣어주고 싶었으나 텐트 주변의 살림살이가 예사롭지 않아 함부로 건들지 못했다. 버너와 일회용 부탄가스들, 생수와 씻기지 않은 그릇들, 모기향과 모기퇴치 스프레이, 그리고 이리저리 주름져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침구류... 누군가 여기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이 강아지 두 마리에게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학대였다. 켄넬 안엔 물도 사료도 없었다.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시청이 해야 할 일이라며 시청에 전달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주변에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 찾다가 결국 못 만나고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강아지들의 호소는 여전했다. 새 집에 이사 온 행복도 잠시, 우린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려오는 고통의 울부짖음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시 텐트를 찾아도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깜깜한 밤, 가로등도 제대로 갖춰 있지 않은 텐트로 찾아갔다간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다시 한번 텐트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그분의 이야기로는 근 한 달간 이 텐트를 보았고 60대 노부부가 오전에 나가서 폐지를 모아 저녁에 돌아온다고 한다. 신축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면서 종이 박스와 같은 폐지를 수거하시는 분이 강아지 두 마리를 집에 두고 오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인가 보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차라리 목줄이 백배 낫다. 1미터의 삶이라 할지라도 물과 사료는 원할 때에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젠 시끄러운 게 문제가 아니었다. 작은 켄넬 안에 갇혀서 하루 종일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싸지도 못하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사실 강아지를 그런 방법으로 키우는 주인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빨리 종결시켜야 했다. 시청에 직접 다시 민원을 넣었다. 노숙과 소음, 동물학대, 금지구역 취사 등의 이유로 민원을 넣었고 빠른 처리와 결과 안내를 요청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덧붙였다. 


혹시나 이 강아지들이 보호소에 가거나 안락사 위기에 처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강아지들의 거취가 불분명해진다면
새 주인과 좋은 보금자리를 제가 직접 찾아보겠습니다.
이 강아지들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럽게 생긴 것과 반대로 지옥과 같은 몇 뼘 켄넬 안에 살고 있는 두 녀석을 어디든 좋은 곳으로 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민원을 접수하고 3일 만에 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내용은 이랬다.


개 짖는 소리는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다. 동물학대도 포함이 안된다. 노숙이나 야외취사에 대한 부분으로 해결해야 할 것 같다. 빠른 시일 안에 현장에 가서 확인해보겠다.


 하, 이렇다면 어디론가 옮겨가도 또 이렇게 살게 될 것이다. 너무 예쁜 강아지들이 곧 쪄 죽을 것만 같았다. 텐트 주변엔 나무 그늘 하나 없다. 못 키울 것 같으면 애초에 안 키워야 한다. 이 아이들은 이런 주인이라도 저녁에 돌아오면 좋다고 꼬리를 흔들고 배를 까겠지. 




 며칠 뒤 드디어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땐 한 마리는 켄넬 밖에 두고 짧게 묶어 놓았다. 주인을 보니 한편으론 참 짠하고, 또 강아지들을 그리 키우는 것이 열 받고... 여하튼 직접 접촉하는 것은 싸움밖에 안 날 것이니 바로 시청에 전화해서 현장에 와달라고 했고, 나는 일정이 있어서 따로 답변받기로 했다. 나중에 온 답변은 이러했다.

 민원접수 후 현장 방문하여 확인한 결과, 해당 공터 내 텐트에서 개 2두를 사육 중이었으며, 민원인께서 언급하신 케이지 내 가둬두고 개를 키운다는 동물학대 관련 부분은 확인 결과 개를 케이지가 아닌 밖에 묶어 놓고 키우고 있었습니다. 견주와 면담 결과 충분한 사료 및 물 공급을 하고 있으며, 예방 접종 또한 적기에 실시한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개 소음과 관련해서 오후에 해당 민원발생 장소에서 멀리 ㄱ떨어진 거처로 이주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기타 추가 불편사항이 발생할 경우 시청 동물보호팀으로 연락 주시면 성심껏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하나의 켄넬 안에 두 마리가 부대껴서 살고 있는 동영상과 사진을 수없이 첨부했는데 한 번의 실사 상황과 견주의 말만으로 사건을 종결해버리는 최고의 해결사였다. 일 참 편하게 한다. 그러고도 월급 따박따박 받겠지.



 나는 답변에 반박하는 글을 작성했다. 개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져도 또 그렇게 지내게 될 것이며, 예방접종 여부와 적당한 물과 사료의 공급을 견주 말만 듣고 믿는 거냐고. 강아지 꼴을 보면 누가 봐도 유기견처럼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 말을 덥석 믿냐고. 텐트를 이동한다 해도 다시 이 강아지들을 하나의 켄넬 안에 종일 가둬놓고 불법 노숙과 불법취사를 이어갈 텐데 왜 아무 제재하지 않느냐고.

 견주가 상황을 피하려 둘러댄 말을 안 믿어져도 옳다구나 하고 믿고 휘리릭 돌아간 시청 직원이 원망스러웠다.


 내 민원에 이번에는 유선으로 연락이 왔다. 노부부는 기초수급자이고 자택이 있으며, 자택으로 돌아가서 사실 수 있도록 지도할 거라고 한다. 한편으론 내가 어려운 누군가의 생업을 방해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쓰려왔지만 시청 복지 관련팀에서 더 신경 쓸 거라는 대답이 그나마 마음을 놓게 했다. 내 민원으로 인해 두 강아지도, 그 노부부도 지금처럼 옮겨 다니며 사는 삶보다 더 나은 삶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내 심란함을 토닥였다.


 어쩌면 노부부는 강아지들을 끔찍이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아끼고 소중히 여겼을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강아지들을 학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의 사랑의 방법은 심각하게 위험했다.


 사랑의 방법엔 정답이 있다. 누가 봐도 명백할 정도로 안전해야 하고, 누가 봐도 크게 걱정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돌봐야 한다.
아니 이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누가 봐도 '상식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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