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주기를 추모하며
지난 일요일 이태원 참사 1주년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광장을 다녀왔습니다. 정확히 1년 전, 영문도 모르게 스러져간 159명의 별들을 기억하는 자리였습니다.
기분 탓일까요? 최근 참가했던 어느 집회보다 젊은이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각기 보라색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옷을 입고, 보라색 리본을 달고, 보라색 손팻말을 들고 있는 그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죄스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들을 타자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성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들 보다 기성세대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우선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보내야 했을까. 그냥 단지 이태원에서 할로윈을 맞아 놀고 싶었을 따름인데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백주대낮에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그 질문의 근저에는 세월호가 있었습니다. 꽃다운 아이들을 어이없이 보내야 했던 그 트라우마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왜 세월호 사태를 겪었음에도 또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가. 이는 나이 마흔이 훌쩍 넘은 제가 반성할 일이고, 통탄할 일이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여당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통제 가장 잘 하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에서 그와 같은 참사가 벌어진 것은, 현재 권력이 그간의 노력을 당연시했던 오만과 자만의 결과이며, 생명을 등한시하는 무도함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어지는 후속처리는 더욱 기가 막힙니다. 참사를 사고라 강변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거론조차 거부합니다. 망자를 추모하기는커녕 망각을 위해 이름조차 불리기를 반대하며, 희생자들의 연대마저 가로막습니다. 함께 모여 슬픔을 줄여야 하거늘, 고립시켜 한을 극대화 시킵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차마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후 자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권력을 탄생시킨 건 누구인가. 내가 직접 뽑지 않았어도 그 결과를 빚어낸 것은 내 탓 아니던가.
이럴 줄 몰랐던가. 오늘과 같은 상황을 충분히 직감했으면 조금만 더 설득하고, 조금만 더 공감하고, 조금만 더 노력해야 했지 않은가.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나이든만큼 경험이 많고, 조금 더 많이 누리고, 조금 더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로서 너무 비겁하고, 소극적이고, 이기적이었던 것은 아닌가.
무대에서 구슬픈 추도곡이 나오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부끄러움의 눈물이요, 회한의 눈물이요, 분노의 눈물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제가 할 일을 상기합니다. 세월호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떠올리고, 이태원이 할 역할을 묻습니다. 이태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가 할 일을 묻습니다. 살아남은 자는 항상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움은 저의 몫이기에 저는 저의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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