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다른 7명의 각기 다른 이야기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스무드
혼모노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우호적 감정
잉태기
메탈
https://www.youtube.com/watch?v=BbZr8h7WXJA
성해나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고 어떻게 인물을 구상할까. 나는 줄곧, 대부분의 소설 작가가 자신이 경험한 것에 한해서 혹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인물을 구성할 것이라 생각했다. 본인이 겪었던 사건, 느꼈던 감정을 기반으로 그것에 살을 붙여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리라 여겼다. 젊은 작가의 경우 더더욱. 하나의 소설집을, 특히 최근 젊은 작가의 소설집을 들여다보면, 그 한 소설집 안에서 비슷한 인물이 여럿 보였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혼모노>는 달랐다. 영화감독의 팬, 한국계 미국인, 무당, 한 가지 목적에만 몰두한 젊은 건축가, 회사원, 부유한 가정의 엄마, 꿈을 포기한 20대 청년.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끌어내는 이야기는 다채롭게 빛났다. 겹치는 소재도 없었고, 앞에서 본 듯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인물과 사건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는 것인지. 작가가 작업하는 과정이 궁금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개인적으로 소설집 후반에 있는 글들이 더욱 좋았다. 초반에 있는 단편들, 특히 <스무드>와 <혼모노>,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셋은 흥미로운 소재와 전개로 재미있게 읽었으나, 거기서 끝이었다. 음 재미있네, 하고 끝. 그래서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다. 재미'만' 있어서. 세 단편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을 것 같은 사건, 한 번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을 것 같은 감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해당 단편들을 통해 지난날의 나를 반추한다거나, 살면서 한 번쯤 만나볼 법한 타인을 이해한다거나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한숨에, 그것도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리라.
남은 네 편의 소설은 현실과 맞닿아있었다. 내가 겪었던 혹은 앞으로 겪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이 좋아하는 감독의 논란을 마주하는 것을 보며, 지난날 누군가를 좋아했던 경험을 되새겨보았다(<길티 클럽:호랑이 만지기>). 알렉스가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보았을 때에는, 소문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생각했고, 그 팀이 결말을 향해가는 여정을 지켜보며 나까지 씁쓸해졌다. 사람은 왜 이리도 입체적이어서 함부로 미워할 수도, 쉽게 좋아할 수도 없는가... 이런 생각도 했다(<우호적 감정>). 그리고 자신의 결핍을 집착으로 승화시키는 양육 방식을 보며 (아이를 기를지 안 기를지 모르겠으나 기른다면) 나의 육아는 어떨까 가늠해 볼 수도 있었다(<잉태기>). 우림, 시우, 조현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 많은 청춘들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성장이라는 이름 하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포기되는가. 꿈꾸기를 멈추고 현실과 타협하는 행위를, 행복했던 과거를 놓아주고 현실로 걸어가는 행위를, 우리는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메탈>).
흡입력이 좋은 소설이 모여있기에, 소설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 혹은 오랜만에 소설을 읽고 싶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나는 이제, 성해나가 꾸려나갈 새로운 인물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