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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Jan 27. 2022

현대인의 잠재된 다중인격 ‘배드 앤 크레이지’

사람은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도 설명되는 존재이기를 원한다. 설명되지 않는 나는 주변 사람들은 물론 자신에게도 불안을 유발한다. 설명적 존재로서 ‘나의 개념’은 최근 들어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공적 자아’, ‘사적 자아’는 이제 친숙한 말이 됐고, 공적 자아는 ‘사회적 자아’라는 좀 더 세분된 개념으로 사적 대화에 흔하게 등장한다.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하나, 혹은 이중자아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개인은 다중자아로 더 많은 자아가 필요해지게 됐다. 다중자아가 적응적 기제로 외현화되고 있지만, 각각의 자아는 이면의 부적응적 기제로서 사회와 충돌을 피할 수 없다.   


현재 방영 중인 ‘배드 앤 크레이지’(tvN)는 3%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종영을 한 회 남긴 지난 22일 11회에서 2.4%로 추락했다. 그러나 ‘다중’이면서도 동시에 ‘개인’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태생적 갈등을 다뤄 단순 오락물로 보아 넘길 수 없게 한다.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아파했던 이들이라면 느꼈을 ‘욕망하는’ 내면의 나에 대한 불안과 연민이 투영된 다중인격 수열의 ‘욕망하는 나’, ‘분노하는 나’의 이중적 모습은 지금 여기를 사는 현대인들의 겪는 혼란을 드러낸다.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저마다 이유는 있지만, 돈 앞에서 정제된 그간의 자아를 버리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반사회적 자아를 드러낸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 웃음 뒤에 무거운 침묵을 감춘 암묵적 공감으로 참가자 각 개개인의 욕망을 관망한다.      


‘오징어 게임’이 지극히 평범한 개인이 속물적 수준을 넘어선 반사회적 이기주의로 돌변하는 상황을 그린다면, ‘배드 앤 크레이지’는 부당함을 성공의 기회로 역이용해온 속물적 개인이 부당함에 맞서는 영웅으로 반전하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후자는 전자와 달리 병리적 다중인격으로 분류되지만, 질환으로서 다중인격, 즉 ‘해리성 정체성 장애’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누구에게나 무의식으로 억압된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해 ‘오징어 게임’처럼 감춰든 인간 이면의 모습을 들춰보는 아릿함이 있다.       


tvN ‘배드 앤 크레이지’ K(위하준), 수열(이동욱)

      

‘배드 앤 크레이지’의 반부패수사계 팀장 수열은 낮과 밤이 다른 일상을 산다. 감찰 수사를 명목으로 재산과 출세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낮의 자본주의적 일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예고 없이 등장하는 미친놈에게 구타당하고 괴롭힘당하는 밤의 공포스러운 일상이 시작된다. 자신을 K라고 소개한 미친놈은 한술 더 떠 자신이 수열과 하나라고 주장한다. 정체를 밝힌 K는 낮의 일상까지 등장해 수열이 힘겹게 쌓은 자본주의적 삶에 균열을 일으킨다.       


다중인격은 자아의 분열이 환자가 연기하지는 않은 진짜인지 판별이 쉽지 않다. 1977 성폭행으로 체포된 빌리 밀리건은 당시 다중인격을 연기하고 있다는 논란을 일으켰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다중인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세월이 흘러 다중인격에 관한 이론적 토대가 강화된 지금도 24개의 인격 가운데 몇몇은 그가 자신의 담당의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그가 다중인격이라는 진단 자체가 부정되고 있지는 않다.      


빌리 밀리건, 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 저자이자 심리학자이기도 한 대니얼 키스는 빌리 밀리건을 성급히 반사회적 인물로 규정해 사회에서 격리 조치하기보다 그의 다중인격이 전문가들에 의해 면밀히 다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빌리 밀리건이 WAIS 지능검사 인격마다 결과가 달랐다는 점, 그를 치료했던 의료진, 자신의 관찰 등을 토대로 다중인격을 연기하는 것이 아닌 다중인격 환자임을 주장했다. 이는 다중인격을 부정하고 그를 사회에서 완전하게 격리돼야 할 반사회적 인물과 규정했던 당시 여론과 대립했다.       


빌리 밀리건과 수열의 다중인격은 부모에 의한 학대가 발현점이다. 수열은 아버지의 폭행으로 얼굴과 몸에 피와 멍이 가실 날이 없었고, 빌리 밀리건은 의붓아버지로부터 폭행뿐 아니라 성적 학대를 당했다. 수열은 아버지의 가혹한 폭행에서 해방돼 인재희가 아닌 류수열의 삶을 살고 있지만, 학대당한 과거는 수열과 K에게 전혀 다른 정체성을 심어줬다. 수열은 친아버지 밑에서 동물처럼 살았던 과거를 보상하듯 출세지향주의 삶을 살지만, 아버지에게서 도망칠 당시의 봉인된 기억 일부를 기억하는 K는 ‘부당함에 분노’하는 정체성에 충실 한다.        


빌리 밀리건은 상처받는 자아, 보호하는 자아, 통솔하는 자아, 반사회적 자아 등으로 세분화해 각각의 자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거침없이 분출하는 동시에 죄책감과 사회적 지탄에 대한 방어기제를 작동했다. 반면 물질만능주의에 적합한 자아를 가진 수열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분노하는 자아를 통해 내면의 억누른 울분을 정의로운 방식으로 분출한다. 이는 다중인격을 비현실적 영웅주의로 극화해 다중인격의 병리적 본질을 왜곡한다. 그러나 K를 부정하던 수열이 K가 자신임을 인정하고 공조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은 대니얼 키스가 소설을 통해 설명한 다중인격 통합의 과정을 보여준다.        

      

tvN ‘배드 앤 크레이지’


K는 수열이 위기에 직면하지 않고 피하려 할 때 등장해 수열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다. 이때 수열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시간 동안 기억을 잃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수열은 기억을 잃지 않고 K와 자리를 공유한다.      


기억상실증은 다중인격에서 동반되는 증상이다. 자아가 자리를 바꿀 때 밀려난 자아가 다른 자아에게 자리를 내준 시간은 그의 삶에서 지워진다. 빌리 밀리건은 치료 과정에서 ‘선생’이라는 인격으로 부분 통합된 후 기억상실증이 사라져 자신이 한 행동을 모두 기억하게 되면서 내적으로 깊이 침잠하게 된다.      


대니얼 키스는 빌리 밀리건이 다른 인격의 존재와 인격이 저지른 행위 등 모든 것을 인지하게 된 후 기억상실증은 지워졌지만,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한 슬픔을 느꼈다고 기술했다. 빌리 밀리건은 부분 통합과 이에 따른 슬픔과 혼란을 느꼈지만, 다음 단계인 완전한 통합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수열은 영웅주의 서사의 완결을 향해 간다.      


범죄에 가담한 마약범죄수사계 김계식 팀장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위기를 맞은 수열 앞에 K가 등장하지 않는다. 상황이 마무리된 후 나타난 K는 자신을 원망하는 수열에게 “계속 있었어, 네 옆에. 이제 수열이 꽤 하네”라며 독려한다. 이는 수열이 분노하는 자아 K를 분리하지 않고 자신 안으로 통합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빌리 밀리건, 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와 ‘배드 앤 크레이지’는 해리성 정채성 장애인 다중인격을 다루지만, 두 사람의 인생행로는 극과 극이다. 빌리 밀리건은 통합 실패로 반사회적 자아가 활성화돼 탈옥범이 되고 실종 및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등 사회적 기대에 부응한 반사회적 삶을 살았다. 반면 수열은 자본주의적 속물에서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서는 속물적이되 분노할 줄 아는 현실 영웅으로 자아를 통합해가고 있다.        

      

tvN ‘배드 앤 크레이지’


세상은 하나의 자아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힘차고 빠르게 변화해 상황마다 중심 자리를 차지하는 자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중인격의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도 다중자아의 시대에 개인은 자아 간 충돌, 자아와 사회의 충돌 등으로 끊임없이 내적 혼란을 겪는다. 이러한 양상은 SNS 속 가상 자아와 현실 자아 간 일어나는 충돌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빌리 밀리건과 ‘배드 앤 크레이지’ 수열은 어린 시절 학대당한 트라우마로 인한 병리적 발현 과정을 겪는다. 그러나 다중자아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다중인격과 유사한 심리적 혼란 증세를 보인다.     


청소년상담 학술지에 실린 ‘인터넷 중독에서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자아 정체감 불일치가 미치는 매개효과 연구’는 SNS상에서 이뤄지는 자아분열 과정을 명료하게 제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현실공간에서는 자신을 나타내는 다양한 모습이 하나의 고정된 실체를 나타내는 특성들로 취급되지만, 가상공간에서는 각각 특성이 특정 개인, 바로 그 자체 모습이 된다. 즉, 다중 정체성은 서로 갈등적이고 경쟁하는 다른 특성들이 각각 하나의 존재로 자신의 위치를 세우는 것과 유사하다.       


인터넷의 발달로 자아는 이제 현실과 가상, 두 개의 활동무대를 갖게 됐고, 다중자아는 더욱더 복합한 양상을 띠고 있다. 현실보다 더 유혹적인 가상공간인 SNS는 내가 아닌 나, 즉 정제되지 않은 또 다른 자아의 공식적인 활동의 장이 돼 자아정체감 불일치로 인한 우울, 자살 등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각기 다른 자아의 통합과 분리가 기능적으로 유연하게 될 수 있다면 다중자아, 자아 불일치에 대한 심리적 질환의 불안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유연성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복잡해지는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내 안의 다양한 모습을 부정하지 않고 수용하는 ‘나’로 성장해야 가야 한다.      


‘배드 앤 크레이지’를 다중인격 영웅물이 아닌 한 인간이 세상으로 버텨내는 서사로 본다면, K로 인해 불편을 겪다 수용하고 공조하는 수열의 삶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 타이틀 사진=  tvN ‘배드 앤 크레이지’

[* 본 글은 외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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