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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이상 Oct 30. 2022

PART 1. 타인의 시선

쇼핑중독자라는 사회적 낙인

“그런 병리적인 이슈를 여기서 거론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충격적인 한방과 같은 말이었다. 논문 주제를 쇼핑중독으로 선택하고 나서 내가 설정한 가설을 밀고 나가도 될지 고민하던 중 상담 심리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동기 모임에서 나와 비슷한 쇼핑중독 경험이 있는 동기들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대화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런데 그중 한 동기가 쇼핑중독처럼 병리적인 문제를 겪은 적이 있는지 모임 자리에서 묻는 것은 개인 사생활 침해라며 단호하게 나의 말을 막았다.  


쇼핑중독이 병리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쇼핑중독이라는 자기 공개가 그렇게 치욕적인가. 나는 그 순간 굉장히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날을 기점으로 내가 생각하고 판단해온 쇼핑중독의 심각성에 관한 인지가 지극히 편협해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가족 사이에서도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는 소박한 중산층 소시민인 우리 가족에게 ‘쇼핑중독’은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사치였다. 내 삶의 지배권을 행사하지 않는 엄마, 아빠는 가슴앓이 하듯 나를 바라봤고, 나와 너무도 다른 성향을 가진 오빠 부부는 한심과 우려가 뒤섞인 시선으로 나에게 질타의 시선을 보냈다. 


그런데도 나는 당당했다. 왜 그렇게 일말의 거리낌이 없었을까. 이유는 명확했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쥐뿔도 없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이 인정하는 이미지를 갖고 싶었고, 동경했지만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패션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마루타 삼아 시험해 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출혈은 감내해야 한다고 여겼고, 나는 이런 나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월 카드 결제를 일주일 앞둔 시점부터는 불안감이 죄책감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카드 대금이 처리되고 나면 이내 잊어버렸다. 


나의 자위는 그냥 나만의 것이었다. 내 삶은 이미 가족들에 의해 낱낱이 해체되고 있었다. 내 카드 대금 영수증은 늘 누군가에 의해 찢겨있었고, 중독자라는 낙인이 내 몸에 깊이 새겨졌다. 그런데도 나는 내 쇼핑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쇼핑 방식이 내가 아닌 패션 문외한의 삶을 살게 했던 부모님 때문이라고 자신에게 주입하며 상황의 객관적 인식을 외면했다.  


내가 쇼핑중독을 짊어진 진 채 회사를 그만뒀을 때 오빠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미국에서 공부 중이던 오빠는 “너 거기 있으면 계속 답 없다. 차라리 여기로 와.” 엄마와 아빠는 나의 미국행이 미친 듯 사들이는 나의 쇼핑 행렬을 멈출 수 있기를 바랐고, 나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나와 너무도 맞지 않는 오빠 부부와의 동거가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일 수 있겠다 싶은 심정으로 쇼핑중독의 보금자리를 떠났다. 


그 후 지독한 중독 후유증을 겪어내고 한참이 지나 나의 중독기를 되돌아보려는 지점에서 같이 공부하는 동기의 지적은 다시 한 번 나를 뒤흔들었다. 쇼핑중독이 병이라고, 그것도 공개하기 어려운 치욕스러운 병이라고 말하는 그의 단정적 말과 어투로 인해 나의 과거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과거 가족이 나를 향해 비난의 눈길을 쏘아붙였을 때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그 동기의 질책 섞인 평가는 그게 끝이 아니다.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라며 책을 사들이기에 대해 유쾌하게 지적 변명을 한 김영하 작가의 말을 신봉하는 내게 그 동기는 또 한 번 “쇼핑중독이 (패션에서) 책으로 옮겨간 거다.”라며 더는 빼낼 수 없는 칼을 심장에 박았다.  


나는 나의 현재를 재인식했다. 쇼핑중독에 관한 나의 입장뿐 아니라 그 동기의 견해 역시 편협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잠재적 쇼핑중독자이기에 그의 말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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