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 구매의 숨 막히는 긴장감
중독의 파고를 지나온 현재의 나는 강박적인 구매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났지만, 여전히 내 시선을 사로잡는 패션에서 시선을 때지 못한다.
가을이 깊어진 10월, 2달 만에 헤어숍에서 염색과 커트를 하고 바람에 날아갈 듯 가벼워진 마음으로 평소 좋아하던 편집숍으로 향했다. 가던 길에 가본 적 없는 편집숍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하고 들어선 순간 푸들을 연상하게 하는 컬러와 질감의 부클레 소재의 오버사이즈 풀오버 스웨터가 눈에 들어왔다. 네크리스가 오픈칼라 셔츠로 디자인된 유니크한 디자인이 눈을 땔 수 없게 했다.
내 손은 자연스럽게 가격표를 찾았고 그 순간 두근거리던 심장마저 멈추고 내 주위에 정적이 감돌았다. 내 뇌는 옷을 본 순간 작동을 시작해 예상가와 나를 위해 허용 가능한 구매가를 빠르게 인출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격표를 확인한 순간 갑자기 평온이 찾아왔다. 절대 내가 살 수 없는, 사서는 안 되는 가격이 나를 빠르게 현실로 되돌려 놨다.
그리고 한참을 그 풀오버 스웨터가 내 뇌에 자리를 틀었다. 사실 한 달이 다 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나는 뇌에 한 구석에 그 옷이 머물 자리를 만들었다. 순전히 나만을 위한 은밀한 공간이다. 은밀한 공간은 내 욕구를 조절하는 최소한 자구책이다. 그보다는 욕구 발산이 이뤄지기 전의 잠복기라고도 할 수 있다.
11월이 지나 12월에 들어서면 늘 그렇듯 그 편집숍의 세일 시작 일정을 체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세일 공지가 뜨면 사이트에 들어가 그 제품이 세일 품목에 포함되는지, 혹시 솔드아웃된 것은 아닌지 확인할 것이다. 솔드아웃 공지가 뜨면 그 옷 브랜드 이름을 다른 편집숍에서 검색해 판매 중인 곳을 찾을 것이다. 나는 이런 과정을 반복한다.
내 쇼핑중독은 심리 장애 범주 중 ‘강박구매’에 포함된다. 쇼핑중독으로 불리지만 학술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강박 구매와 충동 구매가 중독적 구매를 지칭하는 좀 더 전문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구매에서 강박과 충동의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R. J. Faber는 그 차이를 명료하게 정의했다. 충동 구매는 일반화되고 일상적인 행동으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구매 양상이다. 강박 구매는 이보다 병리적이다. 통제할 수 없는 구매 욕구를 경험하는 심리적 장애로, 강박 구매자는 어떤 품목에 대한 구매욕이 솟구칠 때 이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고 구매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긴장이 해소되지 못하고 지속된다.*
누군가는 긴장쯤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강박 구매는 불편한 기분에서 끝나지 않고 불안, 약물남용을 초래할 수 있고 섭식 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성격 장애로 진전될 수 있다.** A. Mueller는 강박 구매가 재정적인 문제는 물론 정신적, 사회적, 직업적 문제를 초래하며 때로는 법적 문제까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한창 쇼핑중독에 빠져있을 때는 체중에 집착했고, 주위에서 쇼핑중독 혹은 이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꺼낼라치면 공격적으로 돌변해 항변의 말을 늘어놨다. 결국 해결되지 않고 밀려올 신용카드 결제 대금을 남겨 놓은 채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Ronald J. Faber. Wiley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Marketing. 2010.
** https://pubmed.ncbi.nlm.nih.gov/11465011/
*** A. Mueller, et al. in Encyclopedia of Behavioral Neuroscience,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