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의해 잉태된 또 다른 중독
나는 여전히 패션 품목에 강하게 집착하는 특정 품목에 대한 쇼핑중독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 쇼핑중독은 패션이라는 특정 품목에서 벗어나 무한 수평 확장되고 있다. 아니 그보다 수직 확장이라고 해야 정확할까.
내 부서지기 어려운 열등감에서 유발된 수치심이라는 부정적 이차 정서의 최초 타깃이 스타일이었다면 이보다 더 깊은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학력 콤플렉스, 지적 콤플렉스다. 앞서 말했듯 패션 쇼핑이 책 쇼핑으로 옮겨갔다는 동료의 지적처럼 나는 책을 사들이는 내 모습을 애정하고 이 모습에 소요되는 비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패션 소비와 달리 죄책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변명하자면 나는 책을 사 모으는 취미를 좀 더 특별한 하나의 의식으로 만들었다. 최근 사회가 가장 관심을 두는 주제를 탐색하기 위해 온, 오프라인 서점을 뒤지고, 내가 관심이 있는 주제지만 절판돼 서점에서 살 수 없는 책을 구하기 위해 중고 서점을 헤맨다. 그리고 중고 서점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책들은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찾는다. 그래도 없으면 고서 박물관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남산도서관에서 아쉽지만 대여해 읽는다.
책만으로 만족하지 못해 이제는 뒤늦게 상담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인간에 대한 관심, 지식에 대한 욕구를 채우기 위한 버킷리스트를 실행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이런 중독사는 정말 네버엔딩 스토리다. 계속 수평, 수직 확장돼 중독의 길에는 최종 종착지가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 중이다.
정신과 의사 Gary Small은 실제 상담 과정을 담은 ‘물구나무 서는 여자’에서 홍보회사 부사장으로 성공적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한 여성 사례를 소개했다. 이 여성이 게리 스몰을 처음 찾았을 당시에는 거식증으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이후 몇 년 지나 다시 상담실을 찾았을 때는 거식증은 중단됐지만, 쇼핑중독 문제가 새롭게 발견됐다. 이 여성은 상담을 오기 전 쇼핑을 하고 그 쇼핑백을 상담실에까지 자랑스럽게 들고 오는 자기만의 의식에 충실했고, 의사가 이를 지적하자 공격적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안타깝게도 이 여성은 쇼핑뿐 아니라 ‘의사 쇼핑’까지 이중삼중의 중독 문제를 드러냈다. 게리 스몰은 이 여성에게 “한 가지 중독에서 다른 중독으로 옮겨갔다.”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이 진단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여성이 의사 쇼핑에까지 이르게 된 자신에 대한 항변이다. 그는 “박사님이랑 내 쇼핑중독의 돌파구를 찾았을 때의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런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순간을 더 원하게 됐어요. 나도 착한 환자가 되려고 더 노력했지만 그런 마법 같은 순간들은 더 이상 박사님에게서 얻을 수 없잖아요.”라며 상담을 하면서 느낀 깨달음의 순간을 자신만의 쾌락제로 이어가고 있음을 인정했다.
나는 내 쇼핑중독의 확장을 건강한 중독증으로 너무 성급하게 자가진단했다는 사실을 이 사례를 읽고 깨달았다. 나 역시 이 여성처럼 ‘통찰을 얻은 마법 같은 순간’에 도취해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쇼핑중독의 여정을 패션으로 시작해 책에서 대학원으로까지 이어갔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나의 중독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이 역시 통찰이라는 쾌락을 끊임없이 주입받아야 하는 내 극한의 중독 아닐까.
*게리 스몰. '물구나무 서는 여자', 파이카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