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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May 28. 2019

엄마의 시간, 나의 시간

엄마는 움직이고 싶어하고, 나는 앉아 있을 시간을 갈망한다.

엄마가 나를 부르는 시간은 거의 1시간에서 2시간 간격이다. 우리의 신호는 침대 모서리를 나무 막대로 땅땅치거나 기둥을 손으로 탁탁 두드리는 거다. 방울이 달린 종을 사다 드릴까도 생각했지만 소리가 너무 선명하여 나도 놀랄 것 같고 함께 사는 막내가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잘듯 하여 약간 둔탁한 지금의 신호로 정했다. 가끔 밤중에 딱딱 소리가 나서 놀란듯이 일어나 갔는데 엄마는 주무시고 계실 때가 있다. 아파트 2층에서 나는 소리에 잠결에 깬 것이다.

오늘은 내가 잠깐 청소를 하고 있는 사이 방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서 심장이 쿵 떨어졌다. 얼른 방으로 뛰어가니 엄마는 침대 아래에 황망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너무 놀라서 일단 엉덩이 다리 다친 곳이 없나 확인을 했다. 다행히도 다치진 않았다. 안도를 하고 엄마를 보니 잘못을 저지르고 선생님 앞에 끌려온 표정으로 손을 내민다. 엄마 손에는 한 웅큼 손톱깎이, 귀후비게, 실꾸리 등이 잡혀 있다. 아마도 한 손에 물건을 집어서 손잡이를 제대로 꽉 잡지 못 한 채 일어나다가 사단이 난 모양이다. 이론에 의하면 감정을 실어서 마구잡이로 야단치는 어리석은 보호자는 되지말라고 되어있을 텐데, 쉽지 않다. 내가 놀란 만큼 엄마를 앉혀 놓고 잔소리를 해댔다.

연휴의 두루마리 시간은 책 읽고 글쓰며 보내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옛 일이 되었다. 엄마와 24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서로 시간으로 줄다리기를 한다. 엄마가 화장실을 다녀오고 침대에 눕히거나 의자에 앉히고 나면 나는 득달같이 내 자리로 온다. 그러면 조금있다 엄마가 땅땅 나를 호출한다. "전화기 충전 해다오" "아까 왔을 때 시켰으면 되잖아!" "......"  이런 식이다. 엄마는 가급적 정당하게 나를 자주 보고 싶은지 한 번에 한 가지씩만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엄마가 한번 부를 때 한방에 여러가지를 해드리고 내 시간을 갖고 싶다. 연휴내내 우리의 밀당은 계속된다.


오늘은 미끄럼사고 때문에 엄마를 밀착 감시하고 있다. 엄마는 엉덩이가 아픈 고통속에서 나의 시간을 독차지하는 호사를 누린다. 호사라 해봐야 얼굴 쳐다보고 몇 마디 대화에 불과한데 너무 비싸게 구는 보호자 한방 먹이는 효과는 있다. 엄마는 내 앞에 마주 앉아 어제 본 책의 삽화를 또 보고 있고, 나는 섰다 앉았다 하며 책 보며 감자를 찌고 있다. 오늘 점심 엄마의 주문 식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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