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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May 28. 2019

엉터리주부 살기 좋은 세상

삼시 세끼 뚝딱 요리 만들기

막내야 뭐 해줄까? 냉면, 우동, 생선까스, 떡볶기 아니면 순두부찌게에 밥 먹을래? 여기가 식당도 아니고 그렇게 다양한 메뉴를 주문하면 뚝딱 해낼 수가 있을까? 막내는 '떡볶기'를 주문했다. 10분만에 냄비에 보글보글 떡볶이를 하고 사과 한 알 깎아 막내의 저녁상을 차린다.


50년을 제대로 된 요리 한 번 않고 지내던 내가 요즘 삼시세끼 뚝딱 요리에 빠졌다. 평생 밥해주던 엄마가 이제는 더 이상 요리를 못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우리가 언제 들어오든, 밥을 먹고 오든 안 먹고 오든 늘 준비된 밥상을 차려줬다. 가만히 앉았다가도 냉장고 문을 열기만 하면 레시피가 나오고 뚝딱 요리가 만들어졌다.

계절마다 묵나물을 장만하고 마늘, 고춧가루, 매실액 등 기본 양념은 제철에 한 보따리씩 사서 빻고, 찧고, 담가서 냉장실, 냉동실 구석구석 저장한다. 시장을 가면 요모조모 살피며 감자,고구마,양파,대파 등 한동안 두고 먹는 야채를 사서 베란다에 놓아둔다. 떨어지기 전에 품목들을 미리미리 살펴 시장 갈 때마다 사다 채워 넣는다. 그리고는 하루 한 번 마실가듯 시장이나 마트를 들러 제철 과일이나 야채를 그때 그때 사들고 온다. 냉장고는 빈틈이 없고 냉동실은 한 번 열 때 마다 떨어지는 덩어리에 발등 찧지 않게 조심해야 될 정도다. DB구축 하듯이 기본 재료가 쌓여 있으니 어떤 요리도 자유자재로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뒤늦게 살림을 맡게 된 나는 결코 엄마와 같은 과가 될 수 없다. 일단은 시간이 아깝다. 틈만 나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 가족을 위한 요리시간에 내 아까운 시간을 투자할 맘이 안 생긴다. 요리를 주어진 의무로 생각하니 정성보다는 어떻게든 효율적으로 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시장은 일주일에 한 번 본다. 엄마가 싼 가격을 찾아 품목별로 시장과 마트를 병행한 방법을 난 결코 따르지 않는다. 어디든 한 군데서 모든 쇼핑을 한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셈이다. 주말에 마트를 간다.한바퀴 주욱 돌며 사야할 품목을 카트에 가득 담는다. 나의 주특기는 반조리 식품 요리하기다. 엄마를 위해 생나물과 과일을 추가하고 언제든 구워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담으면 쇼핑 끝이다.

일인분씩 양념까지 넣어 포장된 떡볶이, 우동, 돈까스는 막내를 위한 황금레시피다. 그냥 넣고 끓이거나 전자렌지에 돌리면 끝이다. 엄마를 위해서는 일요일 반나절을 투자한다. 삶고 절이고 무치고 볶고 해서 4~5가지 야채반찬을 해서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놓고 일주일 국거리 3~4종 재료를 다듬어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끝이다.

좋은 세상에 사니 나같은 똥손도 뚝딱 요리를 해낼 수 있다. 아직 완전 조리 반찬을 주문하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일품요리는 어쩔 수 없어서 외식하러 간다. 사랑하는 친구인 유튜브 요리 동영상을 부엌에 켜놓고 한 가지씩 시도해 보고 있다. 어제는 김치치즈나베를 해서 바쳤더니 막내는 오케이가 떨어졌으나 엄마는 나의 집요한 칭찬요구에도 "짜다" 한 마디로 일축하고 만다.

환갑이 다가오는데 요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 이런 무능력 주부도 식구 굶기진 않게 되었다. 엄마의 평생 살림을 단 일년만에 리스트업 해버린 엉터리 주부 살기 좋은 세상이다. 엄마는 좀 억울할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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