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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Nov 15. 2019

내 속 가려운 걸 누가 알겠는가

   

엄마가 가려움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광복절 전날 밤 CT를 찍었는데 조영제 부작용인 듯 하다. 촬영 전에 부작용 발생가능성을 조사하기위해 피검사를 했다. 검사결과 이상이 없었는데 부작용 현상이 나타났다. 의사선생님도 부작용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처방은 안 해준다. 급하면 병원으로 오라는 건가?     

쉬는 날 종일 집에서 가려움과 씨름했다. 약국에서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사다 먹고 바르긴 했지만 약해졌다 심해졌다 한다. 냉동실에 찜질팩을 번갈아 넣으며 냉찜질을 하고 선풍기를 틀어댔다. 지금까지 엄마는 상처 한 번 덧나지 않았었는데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게 분명하다. 조금 열이 오르면 헛소리처럼 중얼중얼 하시니 겁이 덜컥 나서 응급실로 갈까 고민도 했다. 그래도 밤새 팩을 갈아대고 약을 바르고 해서 어느 정도 진정되었기에 아침에 센터에 보냈다.     

오래 아프다보니 응급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미적거리게 된다. 당사자는 가려워 미칠 것 같을 텐데 인터넷에서 증상을 찾아보고 물만 자꾸 먹이니 답답할 노릇일 테다. 처음 아플 때는 여차하면 응급실로 달려갔다. 응급실이라는 곳이 그렇다. 긴급해서 혼비백산 갔는데 막상 병원에 가서 눕고 수액이라도 맞으면 상황이 진정되고 별일 아닌 것으로 끝난다. 돈만 깨먹고 온다. 큰 병원 응급실은 한 마디로 돛대기 시장 같아서 위중한 사태 아니면 환자 취급도 안한다. 엄마는 아프다는데 일상처럼 유유히 오가는 의사나 간호사를 보면 열통이 터진다. 그러다가 아무 일도 아니라고 주사 한 방 맞고 나올 때는 닥달했던 그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그래도 몇 번은 진짜 응급상황이었으니 어른들 아프다는 소리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취급해 그냥 넘길 일은 아닌 듯 하다. 어쨌든 이번 증상은 아는 병이니 두드러기 반경이 온 몸으로 번지는지를 봐서 병원을 가야할 듯 하다.     

엄마와 살면서 주거조건 1번을 '병원근처'로 삼고 있다.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면 최상이다. 거동이 불편하시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 또는 1층집이어야 한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병원과 붙어 있었다. 급하면 걸어가도 되니 최상이었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이라면 오밤중에 앵앵거리는 응급차 소리를 365일 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자다가도 구급차 소리에 잠이 깨곤 했는데 그것도 한참지나니 적응이 되었다. 지금 다니는 병원은 국내 최고의 병원중 하나다. 의술은 최고이겠지만 의사선생님 만나기가 어렵고 예약을 할라치면 급한 환자는 숨 넘어가게 생겼다. 다행히 엄마는 장기전투이다보니 늘 병원예약이 되어 있는 상태다. 신경과, 정형외과, 내분비내과를 거쳐 대장항문외과,소화기내과까지 줄줄이 진료일정이다. 달력에 표시해 일정관리를 해야 한다. 거기에 동반할 사람 일정과 배치가 필요하니 병원원무과의 개인분소 같은 느낌이다. 중간 중간 회사 일정까지 다이어리는 늘 만원이다.     

그래도 어제는 식구들이 와서 밥해 먹고 뒹굴다 갔다. 십시일반이라고 한사람씩 들락거리며 보살펴드리니 한결 살만하다. 노인케어의 이상향은 대가족 동거인듯 하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시설에 가는 순간 운동능력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진다. 어제도 투닥투닥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혼자 있으며 힘들고 우울한 것보다 옆에 사람이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한 가지 바란다면 놀러온 식구들도 남의 집 손님처럼 굴지말고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알아서 도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평소에 데일리로 늘 겪는 사람보다 가끔 오는 식구들은 사실 간병을 잘 못한다. 환자의 심리와 생활패턴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엄마는 3일전 또 한 번 넘어지셨다. 내가 부축하고 신발을 신기는 중에 뒤로 넘어지셨다. 다행히 골절은 없으신 듯하나 걷는 건 더 힘들어졌다. 심리적 불안이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며 조금씩 더 움츠리고 쇠약해지겠지. 어제 찍은 CT검사 결과를 보러 다음 주에 또 병원을 간다. 대장암 수술 예후를 봐야 한다. 그래도 암으로 급격히 악화되는 거에 비하면 낫다고 생각하며 지낸다. 옛 어른들 말처럼 '좋은 거 쳐다보고는 못산다. 나보다 못 한 것 내려다보며 살아야지!' 다음 주 검사 결과가 깨끗하게 나오길 기도할 뿐이다. 긁어서 빨개진 엄마 다리를 보고 센터 할머니들이 난리라고 센터 간호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염되는 피부병일까봐.  전염 안되는 거라고 간호사선생님이 설득하시겠다고 하며 확인차 전화하신 것이다. 아무렴! 누구든 내 몸이 가장 귀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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