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경숙 Apr 03. 2024

유럽여행 단상

[글제 : 여행]


브뤼셀 추천 관광지 중 ‘오줌싸개 소년 동상’은 늘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벨기에 여행 첫날 넓은 광장과 큰 성당, 높은 첨탑이 있는 시청 건물과 어깨를 겨루며 명소에 이름을 올린 그 동상을 찾아 나섰다. 지도를 따라 골목을 들어가니 한 귀퉁이에 조그맣고 까만 조각 하나가 눈에 띈다. 크기가 너무 작아서 그 앞에 모인 사람들 머리통 위로 한 뼘 정도 보이는 소년의 동상이다. 사람들을 헤치고 가까이 가보니 벌거벗은 소년이 정면으로 오줌을 누고 있는 형상이다. 큰 기대를 하고 온 관광객들은 헛웃음을 날리면서도 쑥스러운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동상은 보기엔 초라하지만 브뤼셀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고, 소년의 오줌싸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갖가지 기념품이 관광객의 지갑을 열게 하고 있다. 심지어는 도난을 우려하여 원본 조각은 브뤼셀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관광객이 보는 소년은 모조품이라고 한다. 이 소년은 루이 15세 이래로 끊임없이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계절이 바뀌거나 기념일이 되면 다양하게 옷을 바꿔 입기도 한다. 외교상 전 세계로부터 기증받은 의상만 몇천 벌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이 나라의 상징이 되어 ‘브뤼셀의 가장 나이 많은 시민’으로 불리는 소년의 동상은 그야말로 스토리의 힘이다.     


여행지의 다양한 풍경과 문화재를 감상하며 그 장대함과 아름다움에 찬탄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반면에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단지 낯선 여행지에서 본다는 이유만으로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짧은 기간동안 유명 관광지만을 섭렵할 때는 뭔가 대단한 것, 독특한 것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낯선 나라에서 한 달가량 지내게 될 기회가 생겼다. 처음 시작할 때는 신기한 것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낯선 일상에서 불편함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며칠 지나 현지 생활에 익숙해지니 별다르게 새로운 것도 없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냐 라며 여행을 즐기지 않는 사람의 태도가 이해되기도 했다.     


일주일 쯤 지나 볼 만한 건 다 봤다고 생각할 때쯤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평소에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하여 자동화를 통한 편리함을 추구하던 삶에서 극도로 비효율적인 유럽의 문화를 접했을 때 처음엔 당황스러운 점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무심한 듯한 지나치던 프랑스 사람들이 살짝 스쳤을 때 지체없이 미안하다는 뜻으로 ‘빠흐동’이라며 살짝 웃는 모습, 지나친 서비스가 아니면서도 늘 가볍게 아침인사로  ‘봉주르’를 날려주는 직원들을 만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어느 날은 이런 호감을 가지고 음식점 자리에 앉아서 어렵사리 주문을 마쳤지만 10분, 20분이 되어도 음식이 나오지 않으니 어찌해야 할지 몰라 혼돈스럽기도 하다. 테이블에 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목을 빼고 쳐다봐도 눈길도 주지 않는 직원들이 원망스럽다. 그러다가 옆 테이블을 보는 순간 아차 싶다. 그들에게도 음식이 서빙되지 않았지만 편하게 와인이나 음료 한 잔씩을 즐기며 편안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다. 답답하게 느끼며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 건 우리 일행뿐인 듯하다. 이래서 식전주나 애피타이저가 필요한 거구나 깨닫게 된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사람과 차와 자전거가 뒤섞여 혼돈속에서 묘하게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 등도 새로웠다. 내가 살던 곳과 다른 풍습, 규율 등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단점이 있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번거롭고 지루한 절차 뒤에는 일하는 직원의 노동권이 밑바탕에 있음도 이해하게 되었다. 관광객이 보기에 좋으며 역사가 오래된 유럽의 건물들 중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많다. 낑낑대며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갈 땐 그들의 삶의 방식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럽인들은 오래된 것을 갈아치우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을 듣고 불편하지만 이러한 시간의 흔적이 유적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건 그 덕분이 아닌가 이해가 되었다. 길거리에서 담배뿐 아니라 대마초 냄새까지 맡아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질주하는 자전거에 화들짝 놀라긴 하지만, 안락사까지 허용하는 그들이 지향하는 ‘자유’에 대한 무한한 존중의 개념과 미래의 지구환경에 대한 고민들을 떠올렸다.     


여행 첫날 볼품없는 오줌싸게 소년의 동상을 돌아 나오며, 오랜 시간의 흔적속에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느꼈다. 불편함과 낯선 경험을 하며 그 안에서 새롭고 소중한 삶의 이야기를 얻는 것이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새 봄 낯선 곳에서 시간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을 받았다.

이전 07화 세월의 향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