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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Apr 17. 2024

투박한 사랑

보따리 장사를 하던 엄마는 인근 대여섯 개 마을을 번갈아 가며 일을 나가셨는데 아침에 가서 저녁 늦게 집에 돌아왔다.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 보면 어느덧 저녁 어스름이 찾아오고 집집마다 저녁밥 짓는 연기 냄새가 난다.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아이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널찍한 종가집 바깥마당에는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나는 애꿎은 자치기 막대를 벽에 딱딱치면서 구슬치기 구멍만 신발 앞 코로 쿡쿡 차고 있었다. 한참을 종갓집 처마 밑에 앉아 있어도 엄마가 오지 않으면 큰길을 따라 마중을 나갔다. 초승달이라도 하늘에 있으면 그 빛을 의지하여 윗마을 언덕배기 서낭당까지 올라간다. 올라갈수록 집들이 드문드문해져 주위는 캄캄하고 희끄무레하게 신작로만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몸을 으스스 떨며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자박자박 발소리가 들린다. 나는 “엄만가?”하고 큰 소리로 불러본다. 위에서 엄마가 내 소리를 듣고 “숙이라? 집에 있지 왜 나왔노?” 대답한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엄마가 눈앞에 쑥 나타났다. 나를 만나자 엄마는 머리에 이고 있던 무거운 옷 보따리를 땅에 내려놓는다. 숨을 ‘휴우’ 몰아쉬고 내려놓은 보따리를 풀더니 곡식 자루에서 대봉감 하나를 꺼낸다. 손으로 감에 묻은 곡식 분을 쓱쓱 닦더니 나에게 주었다. 배고프기로 치면 하루 종일 걸어 다녔을 엄마가 훨씬 더하겠으나 배가 고팠던 나는 엄마 한 입 드시라는 인사도 없이 맛나게 감을 먹었다. 한입 가득 감을 물고 무거운 보따리를 인 엄마 옆에서 타박타박 걸을 때 외로움과 두려움을 걷어낸 내 발걸음은 한 없이 가벼웠다.


80년대 격변기에 대학에 입학했지만 운동장엔 탱크가 주둔하였고 수업은 휴강이니 학교에 나온 우리는 할 일이 없었다. 낮부터 한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한 술집에서 늦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통행금지 시간이 임박해서야 집으로 돌아올 때 골목 입구에 팔짱을 끼고선 엄마의 얼굴은 걱정과 분노가 반반씩 섞여 있었다. 내 등짝을 세게 한 대 내리치고 나서 말없이 돌아서 집으로 향하는 엄마의 등에서 안도의 한숨이 느껴졌다.


다정스레 감싸 안으며 표현하는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랑의 표현에는 서툴렀다. 밤 늦게까지 자율학습을 하며 대학입시 공부에 애쓰는 딸아이가 안쓰러웠지만 학교에서 데려오는 일은 고3 때 겨우 몇 달밖에 하지 못했다. 교육열이 드높은 이 땅에서 자식 사랑은 어지간해서는 지나치다 하지 않겠지만 나는 그 표현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척, 애달파하지 않는 척 자립심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한 부모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대중교통이 동네 구석구석까지 닿는 서울이고 통금도 없는 시절에 직장 일을 끝낸 피곤함을 이끌고 굳이 하교길에 자가용으로 딸을 태우러 가는 것은 과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단 여섯 달이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길에 나섰던 것은 딸의 애씀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최소한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꼭 안아주거나 사랑한다는 표현을 입 밖으로 낸 적이 없다. 나 또한 엄마 젖가슴을 만지면서 잠들지도 않았고 그 품을 파고들지도 않았다. 매사에 나를 위해 헌신적이면서도 신체적으로 그런 애정을 표현한 적이 별로 없던 엄마와 나는 그렇게 덤덤하게 살았다. 우리 사이는 끈적끈적한 정이라든가 애살스러움이 아니라 한 인격적 존재에 대한 존경과 같은 감정에 더 가까웠다. 늙어 아프고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연후에야 나는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거나 살짝 안아주는 기회를 얻었다. 말 없는 엄마의 은근한 배려와 말랑하지 않게 절제된 사랑의 표현에 대한 응답으로.


지방에서 자취하는 아들이 올라올 때 처음 마중을 나갔다. 마을버스 정류장이 동네 가까이 있고 길찾기 앱이 눈을 감고도 위치를 찾을 수 있게 상세한 시대에 골목 어귀에 서서 아들을 기다린다. 올 시간이 지났는데 어찌된 것인지? 핸드폰을 놓고 나와 망연히 기다리고 서 있을 때 그 옛날 겨울 통금시간에 다 큰 딸의 귀가를 기다리며 떨고 있었을 엄마가 그리웠다. 언제 올지도 모르면서 시린 발을 굴리며 마음 한가득 걱정을 안고 초조했을 엄마가. 한참을 기다리다 못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은 이미 집에 도착해 있다. 정거장을 잘못 내렸으나 길을 찾아 다른 골목으로 들어왔다고. 아들 덕분에 40여년만에 엄마의 마음 다시 만났다. ‘사람을 마중 나가는 일은 사랑을 알게 된 마음만이 시킬 줄 안다.’는 문태준 시인의 말은 투박한 엄마와 나의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변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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