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혼이 답이었던 걸까? 남편은 사무실 직원과 연애했다. 그는 매일의 반복되는 평범하던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열정을 찾는 듯했다. 그러다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바람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이별을 맞이했단다. 한편 아내는 남편의 친구를 만났는데, 그녀 또한 열정에 사로잡혔다. 이 관계가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새로움을 느끼지 못할 때 이 남자를 떠났다. 남편과 아내는 다시 예전처럼 남들 보기에 행복한 그들의 가정에 존재했지만, 더 이상 이 집을 지킬 수 없었다. 그들은 이혼했다. 이것은 제임스 설터의 소설 『가벼운 나날』의 주인공 ‘비리’와 ‘네드라’의 이야기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 여자 동창들과 1박2일 휴양림으로 여행을 떠났다. 숲 산책을 하고 난 후 시원하게 샤워를 마치고 바닥에 둘러앉아 맥주도 한잔씩 했다. 소량의 알콜만으로도 우리들의 마음은 확 열리고 바닥에 벗어놓은 옷가지처럼 긴장은 속절없이 풀렸다. 사업하는 남편들을 두고 자녀들도 장성해서 모두 제 짝을 찾아주었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친구들이다. 가끔 만났을 때 지갑이 부지런히 열리는 것으로 봐서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녀들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소설의 내용 그 이상 같았다.
한 친구는 사업을 하던 남편이 금전적으로, 이성 관계에서 여러 번 속을 썩여서 이혼을 수십 번도 더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아이들이 모두 크면 반드시 갈라서겠다고 결심하고 살아왔단다. 그런데 친구는 아직도 그 남편과 살고 있다. 함께 손주들을 돌보면서. 술 한 잔씩 마신 김에 물었다. 왜 이혼하지 않았느냐고.
흔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한다. 어지간한 갈등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봉합되고 상처는 치유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말했다. 믿음을 저버렸던 남편은 나이 들어가며 기가 빠졌지만, 자기는 남편이 아직 용서가 안 된다고. 마음속 깊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오랜 기간 몸부림쳤단다. 한집에 살지만, 서로에게 믿음이 없는 부부라면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지 않겠는가. 친구에게 이혼을 권할 수는 없으니 서둘러 분위기를 돌렸지만.
미국 가정의 내면을 보여주는 소설을 읽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혼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신선함과 열정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요구하는 성실성과 믿음을 배신할 때, 누구든지 부부관계를 예전처럼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종적으로 가정을 지키는 목적은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견디고 살다가, 황혼이혼을 단행하는 부부도 늘어나고 있으니.
겉으로 행복해 보이는 미국 가정이 내면의 붕괴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는 이 소설을 공감하며 읽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의 현실도 그런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로 사랑하며 결혼한 상대가 믿음을 배신할 때 함께 꾸리던 가정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서로의 잘못에 대해 인내하고 수용하면서 성숙해 가는 삶을 살 것인지, 홀로 서서 진정한 자신의 자유를 찾아갈지. 많은 사람이 끝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리라. 자식이라는 매개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부의 연을 이어줄 단단한 고리가 되지 못하니까.
이 소설에서 주인공 남녀가 시련을 겪으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중요한 것은 각자의 ‘성장’인 듯하다. 사계절의 변화와 연결해서 본다면 아이들이 태어나서 자라는 온화한 봄, 여름처럼 뜨거운 격정의 위기에 불륜을 저지르기도 하고, 그 시련을 딛고 한 차원 올라서 성장하는 계절의 가을, 그리고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흰 눈에 덮인 세상처럼 흔적이 사라지는 겨울까지. 그 과정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혼을 겪었지만, 결국은 성장했다. 갈라서지 않고 성숙한 관계에서 새로운 믿음을 가꿀 수 있었다면, 흔히 말하는 백년해로 부부가 될 수도 있으리라.
삶에서 겪는 상처와 경험 그리고 환희의 순간들을 통해서 사람은 성장한다. 좋은 부부는 서로의 성장을 이끌어 주는 관계이다. 그 안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상처를 겪은 부부에게 정답은 치유 뒤에 오는 성장이다. 그 방법이 함께 사는 것이든, 각자 홀로 서는 것이든. 결국 부부간의 상처는 그 해결도 부부만의 몫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