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세 줄로 요약한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했다. 밥을 먹고 책을 읽었다. 또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났다. 마지막 밥을 먹고 산책했다. 어제와 같은 하루였다.’ 어떤 날은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떠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아니면 컴퓨터라는 기계에 매달려 세상 사람들은 뭘 하고 사는지, 오지랖 넓게도 오만가지 일에 간섭하고 열을 낸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요즘의 세 줄 일기는 이렇다.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대지의 열기, 엄청나게 덥다, 어제도 더웠다. 내일도 덥다고 한다. 더위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다 냉방을 하니 머리가 아프다. 이렇게 하루가 간다.’ 생각 여행이라도 떠나봐야 할까.
올림픽 기간 중 생전 관심도 없던 여러 가지 운동 종목의 선수들이 겨루는 모습을 지켜봤다. 준비한 만큼 성과를 거둬 박수갈채를 받는 선수도 있고, 노력을 배신한 잔인한 실패를 겪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세 줄로 요약한다면 오늘 이 순간은 어떤 한 줄이 될까? ‘오늘도 연습했다. 어제도 연습했다. 내일 또 연습할 것이다.’로 끝나는 선수도 있을 것이고, 대회마다 금메달을 여러 개 따서 어떤 메달을 기록할 것인가 고민하는 선수도 있을 것이다.
나라 안팎에서 정치인들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목청을 드높여 국민에게, 당원에게 호소하고 있는 뉴스 사진을 본다. 어떤 사람의 인생에서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할 것이고 4~5년의 그 기간이 그 사람 인생을 정의 내리게 될 수도 있다. 재임 기간 중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영광과 오욕을 겪지만, 세 줄로 요약되는 공적이 있다면 역사적 인물로 꼽힐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지도자의 공적을 세 가지씩 꼽아보는 한가로운 짓을 하다 보니, 문득 한 사람의 일생으로만 본다면 그 인생이나 내 인생이나 별반 차이도 없다는 머쓱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인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세 줄로 쓸 수 있는 사건은 무엇인가?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세 가지로 요약했다. 인간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상상하면서 역사는 시작되었고, 흘러 다니며 유목하던 사람들이 정착하여 농사를 짓게 되어 비로소 다른 동물과의 차별을 이루었으며, 과학혁명을 통해 무한의 힘을 획득함으로써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저자가 마지막으로 말한 결정적 한 줄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였다.
생각의 범주를 더 넓혀서 내친김에 우주의 역사로 나아가 본다. 1990년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가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지구를 촬영한 사진을 전송해 왔다. 그 사진에는 보일 듯 말 듯 먼지처럼 작고 푸른 점이 하나 보이는 데 그것이 지구이다. 『코스모스』를 쓴 미국의 과학자 칼 세이건은 이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명명하며 ‘지구는 광막한 우주의 미아이며 무수히 많은 세계 중의 하나일 뿐이다.’라고 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약 천억 개의 은하 중에 우리 인류처럼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살고 있는 곳이 없다고 어찌 장담하겠느냐고.
무더위에 지쳐 하루의 일상이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문득 눈을 들어 시선을 저 멀리에 보내본다. 그리고 생각이 갈 수 있는 데까지 방황하도록 그대로 둔다. 작게는 지리멸렬한 나의 하루에서 일생을 통해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까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동시대인의 삶으로 눈을 돌리면 그나마 작은 안도감이 일어난다. 긴 인류의 역사 속에 내가 선 자리, 그리고 더 멀리멀리 우주까지 시선을 넓혔을 때 잡힌 ‘작고 푸른 점’ 지구까지, 생각은 너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닌다.
먼 우주로 향했던 시선을 내려뜨려 다시 내 곁의 작은 것들을 바라본다. 넓은 공간 속, 긴 시간 속에서 찰나처럼 있다가 사라지는 작은 존재라고 생각하니 일상의 이 순간이 한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때로는 나의 일생을 세 줄로 요약하는 대범함으로 시련을 뚫고 나아가고, 또 어느 때는 하루의 일상에서 세 줄의 작고 소중한 것들을 건져 올리는 기쁨을 누려 본다. 카메라의 렌즈처럼 확대와 축소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무더위의 일상도 곧 다가올 서늘한 가을바람과 온 천지를 뒤덮는 흰 눈의 예고 편일 뿐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