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경숙 Jun 07. 2019

12 엄마 노후자금 담당 동네골목 은행점포

엄마 모시고 은행에 갔다. 정기예금 만기일이 지난지 한 참되었는데 미루고 있었다. 오늘은 작심을 하고 한나절 휴가를 냈다. 은행 오픈 시간에 맞춰 오랜만에 여유 있는 아침을 먹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노인이 은행 간다고 하니 정신의 총기를 모으시는지 눈을 크게 뜨신다.      


엄마는 평생 통장을 본인이 관리하시고 나는  월급을 통장째 엄마께 드렸다. 사람들은 '와 정말 대단한 효녀다.' 하며 놀란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다. 한 달 쓴 카드비 빠져나가고 이런 저런 대출등 갚고 나면 통장잔액은 별로 많지도 않은데 생활비는 많이드니 밑지는 장사다. 그리고 아이들 돌봐주는 수고비는 아예 따로 명목도 없으니 실속도 없다. 그저 살림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자부심만 드렸다. 그래도 엄마는 생활비를 요리조리 쪼개서  저축을 하셨다. 엄마 노후 자금을 어느 정도 만들었으니 결국 자식부담 덜어준 고마운 일을 한 셈이다.      


엄마의 자금관리는 무조건 정기예금이다. '계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을 듣기라도 하셨는지 통장을 여러 개로 쪼개놓았다. 정기적금을 들어 만기가 될 때마다 따로 정기예금 통장을 만들었으니 허구한 날 만기가 돌아온다. 이제는 더 이상 살림도 않아서 수입도 없는데 은행 볼 일만 잔뜩 만들어 놓았다. 다치기 전까지는 엄마가 직접 은행거래를 했다. 은행 청경아저씨가 엄마 후견인이다. 현금 쓸 일이 있거나 돈 부칠 일 등이 있을 때마다 보행기를 끌고 꼭 은행을 방문하니 이 상냥한 젊은이가 어찌나 친절하게 도와주는지 엄마는 나는 안 믿지만 청경아저씨는 믿는다.     


이제는 은행 거래는 못하신다. 그래도 예금 명의는 엄마 것으로 해서 내가 인터넷 뱅킹으로 거래를 한다. 만기 재예치의 숫자를 많이 줄였다. 얼마 되지 않는 자금이라 한 바구니에 담아도 깨지지도 않을 계란이니 한 통장으로 모으는 중이다. 돌아가실 때까지 옆에 꼭 끼고 있을 통장이라 잘 관리해야 한다. 엄마가 도둑이 들면 못 찾을 장소를 물색해서 숨겨놓았다. 예전에 애기 돌 반지도 세탁기 뒤 허름한데 검정비닐로 싸놓았다가 내가 버릴 뻔 한 적이 있어 이제는 그렇게 허름한 곳에 두지는 않는다.  인터넷으로 거래하니 통장 관리할 필요 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은행 가기 어렵다고 내 이름으로 바꿀까 하다가 엄마의 상실감이 클까봐 그냥 모시고 다니기로 했다.     


오랜만에 갔는데 그 젊은 청경아저씨를 보더니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창구에서 볼일을 보는데 엄마가 지팡이로 툭툭 친다. 할 말 있다는 뜻. 귀를 대니 엄마가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선물 달라고 해! 치약 없나?' 내가 웃으면서 직원에게 '엄마가 선물 안주냐고 하네요! 치약 준다면서.' 했더니 직원이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는다. 예금 찾아가는 사람에 왜 선물을 주겠나?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창구직원이 치약세트를 내밀며 엄마에게 눈을 맞춘다. 엄마가 조그만 소리로 '고마워!' 하니 직원이 눈웃음을 준다. 청경아저씨는 바깥까지 부축해서 차에 태워주고 들어간다. 오랜만에 엄마 친한 이웃을 만나니 나도 덩달아 좋다. IT발달로 은행점포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우리집골목 작은 점포는 엄마 살아 계신동안  오래오래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독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