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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l 10. 2019

엄마 외숙모님의 영면을 빌며

카카오톡 서비스로 부고가 왔다. 엄마의 외숙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다. 엄마의 외숙모라면 친척이 많은 집에서는 그다지 왕래가 없을 관계이겠지만 이모도 고모도 없는 우리집에서는 가까운 친척이다. 영주에서 큰 문방구를 하시던 엄마 외삼촌은 오래전에 돌아 시고 신심이 깊은 불교 신자로 발도 넓고 많이 베푸시던 외숙모는 90을 넘겨 사셨다. 마지막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서서히 호흡을 줄이고 평화롭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일찌기 엄마를 잃은 우리 엄마에게는 부모처럼 의지하는 분들이었다. 엄마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딸하나 데리고 오갈데 없이 가난한 처지에 빠졌을 때 장사를 권유하며 장사밑천 3만원을 대주신 분들이다. 그 종자돈으로 엄마는 옷장사를 시작했고 돈을 벌어 논도 사고 집도 샀다. 엽엽하게 곁을 두지 않는 무뚝뚝한 성격의 엄마를 무슨 집안 행사마다 불러 챙기고 내가 읍내 중학교를 다닐 때 빈방을 내주기도 했다. 욕심없이 마음 다스리며 사시던 분이니 마지막에 치매에 걸리셨지만 억지도 쓰지 않고 욕지거리도 하지 않고 조용한 노인으로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치셨다. 지극한 딸,아들의 효도를 받으며 이 세상을 떠났으니 좋은 길로 가셨으리라.


엄마에게는 아직 알리지 못했다. 상심하여 우울해지실까 염려가 된다. 나중에 자연스레 알 때까지 비밀로 할 작정이다. 요양병원 계실 때도 옆방에 계시던 분이 돌아가시니 한동안 우울해 한 경험이 있다. 점점 현실로 실감하게 되는 모양이다.


퇴근 후 부리나케 차를 달려 경북 영주까지 갔다가 두어 시간 앉았다 일어섰다. 눈꺼풀을 연신 치켜 올리며 참았지만 졸음이 쏟아져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한시간 가까이 잤다. 웬만하면 결혼식,장례식 안가고 축의금,조의금으로 대신하지만 엄마가 기운이 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달려갈 외숙모님이라 직접 가서 조문했다. 이렇게 엄마 역사의 또 한 조각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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