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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l 28. 2019

엄마는 과속감시 카메라

중년의 내가 막 나가지 않게 지켜주는 존재

토요일에 엄마를 센터에 보내고 나는 놀러갔다. 생각하면 엄마에게는 야속한 일이지만 상황이 조율이 되지 않아 부득이 잡은 선택지다. 어제의 사고로 엄마의 상태가 걱정되었지만 심하진 않다. 불안감 때문에 걷는데 더 소극적이 되고 몸을 보조자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토요일 치과일정과 외부 모임이 있었다. 엄마때문에 모든 모임을 포기할 순 없다. 그렇게 소외되면 나 스스로가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다. 1박2일 모임이지만 당일 다녀오는 것으로 하고, 엄마는 센터에서 8시간 지내고 오후 5시이후에는 나머지 온 가족이 함께 해주기로 했다.


토요일 센터 배차시간이 맞지않아 9시쯤 직접 센터에 모셔다 드렸다. 센터에 도착하니 마침 다른 코스를 돌고 온 차가 도착하여 할머니들을 삼삼오오 내려놓는다. 많이 등원하셔서 다행이다. 엄마는 휠체어에 타고 들어가시며 손을 흔든다. 기분이 좀 나아지신듯 하다. 센터에 안가신다는 말은 금요일 처음 들었다. 넘어진 그날은 정말 두려우셨던 모양이다. 토요일은 기꺼이 간다고 하신다. 엄마가 늘 얘기하시는 '서울대학생'때문인가? 정확한 내용은 파악을 못했지만 그 대학생은 원장님의 조카인듯 하다. 노래와 율동을 도와주는 모양이다. '학벌주의자' 엄마는 서울대라는 이유로 그 학생을 좋아한다. 언제 원장님께 '서울대학생'에 대해  자세히 여쭤본다고 하고는 매번 잊어버린다.


 엄마를 모셔다드리고 치과에 갔다. 1시간에 걸쳐 '드르륵' '슉슉슉슉' '칙칙 솩솩' 갈아대는 기계와 물, 바람을 입안에 쏘이며 갈고 닦고 떼우는 작업을 했다. 이제 겨우 한쪽을 했다. 앞으로 한달에 걸쳐 나머지 한 쪽에도 같은 작업을 해야한다. 그래도 노후를 위한 튼튼한 식생활 장비를 챙긴다 생각하며 기꺼이 치료받는다. 매일 남의 입을 쫙쫙 벌리고 기계를 들이대는 치과의사도 이 직업을 좋아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1시간 단위로 서로 다른 입 냄새를 맡아가며 하루종일 얼굴을 들이대고 심지어는 토요일까지 환자가 이어지니 돈은 잘 벌테지만 언제 여유있게 돈쓰고 즐길 시간이 있겠나? 쓸데없이 돈많은 부자 노는 걱정까지 하는 오지랖인가 하겠지만 세상 직업이란게 '물좋고 정자좋은 곳 없다'는 옛 말처럼 다 좋기만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힘들고 돈 많이 못 벌어도 내 직업의 좋은 점을 찾아보면 그래도 한 두개는 있으니 그 일을 하는 동안은 그 좋은 점을 지지대 삼아 잘 해나가면 된다. 어렵고 힘든 것만 생각하면 세상에 할 일은 하나도 없다.


이런 저런 생각하며 운전을 하다보니 어느새 '자연인 농막'에 도착했다. 직접 자재를 가져다 집을 짓고 농사를 시작한 동기의 집에서 30년전 입사동기 모임을 한다. 엄마생각은 뒤로하고 친구들과 옛이야기하며 논다. 직접 밭에서 재배한 토마토, 참외, 수박과 열심히 기른 토종닭까지 식탁이 풍성하다.

재활용 난로에 나무로 불피워 푹 고은 토종닭과 닭죽 맛이 기가 막힌다

뒤늦게 괴산에서 도착한 동기가 유명한 '대학 찰옥수수'까지 한 자루 가져와 즉석에서 다듬어 삶았다. 밤 늦도록 이야기는 이어지고 이대로 날이라도 샐 기세지만 나의 '신데렐라 유리구두'가 사라질 시간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은 남겨두고 훤히 린 심야의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향한다. 잘 놀았고 이 정도가 딱 좋다. 나이들며 하염없이 늘어질 자리나, 마냥 앉아 게으름 피울 때 등장하는 '엄마생각'은 이것들을 쫓기에 좋다. 중년의 감상이나 우울에도 빠질 여유를 주지 않는 '엄마생각'이 나에겐 과속방지 카메라 같다. 늙어가며 과속해서 사고치지 않게 하는 신호이다.


오늘은 엄마와 부침게도 해먹으며 평범한 비오는 일요일을 보냈다. 아이들도 와서 뒹구니 그냥 보고 있기만 해도 맘이 편하다. 이렇게 휴일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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