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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Aug 02. 2019

정신이 맑으시니 또 하루 버틴다

엄마의 인지기능 검사를 했다.

휴가를 내지 못하는 나는 전날부터 걱정이 되었다. 엄마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선생님의 판단때문에 점수가 왜곡되어 혹시 치매 판단을 받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우려때문이다. 엄마의 말은 나와 막내만 알아 듣는다. 병원에 못가는 나를 대신해 남편과 막내를 보내며 아침에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편의를 위해 병원일정을 하루에 모으다보니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엄마는 병원에 있게 생겼다. 차에 내려 휠체어 빌리는 것부터 접수, 수납,채혈,초음파,점심,인지검사까지 자세하게 상사에게 업무 브리핑하듯 메모까지 해가며 일러둔다. 요즘 종합병원은 어찌나 넓고 복잡한지 처음 간 사람들은 얼이 빠진다. 오랜 병원 경험의 좋은 점은 일처리의 전문가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비전문가 남자 둘이서 헤멜 생각을 하니 쓸데없는 말을 자꾸 덧붙이게 된다. 묵묵히 듣고 있는 막내가 고맙다.

카톡으로 메모까지 해서 보낸 연후에 출근을 했다. 그러다보니 사무실에10분이나 지각을 하고 낮에도 연신 전화기에 손이 간다. 또 하필 이런 날은 일이 많다. 간부 인사이동 첫날이고 월례조회가 있는데 의원실 보좌관은 전화와서 방문일정을 조율하자 하고 자료작성도 지시해야 하는데 내 맘의 절반은 병원에 가 있다. 오후3시가 넘어서 막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검사 잘 받았다며 "할머니 대답 잘 하시던데. 그런데 막 판에 가니 기운이 달려서 목에서 바람소리만 들리더라구!"라며 할머니 곁에서 통역해주고 집에서의 일상생활 증세를 알려드렸단다.

선생님이 검사 후 간단히 결과를 알려주었는데 인지기능에 큰 문제는 없다고 한다. 육체의 장애 때문에 순간적으로 화가 나고, 인지는 하지만 행동으로 연결이 안될 뿐인가보다. 그리고 노년기의 집착이나 퇴행현상이 신체장애로 인해 더 심해지는 경우로 짐작된다. 신체 건강한 분들 중에도 이보다 심한 고집불통에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를 많이 봤다. 엄마는 몸이 아픈걸 감안하면 저 정도 정신줄 잡고 사는 것만 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니 기운 빠져 축 늘어졌을 거라 짐작했던 엄마가 일어나 앉는다. 사들고 들어간 뜨거운 순대를 드리니 아주 맛있게 드신다. 밤에도 평소와 같이 잠드셨다. 다행이다. 인지가 정상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기운이 난 모양이다. '치매'라는 말을 가장 두려워하신다.

아침에 일어나 목욕 깨끗이 시켜드리니 갈아입을 옷을 골라주신다. 머리 단정히 빗고 함께 센터 차를 타러 나왔다. 막내에게 맡기고 출근하는 차안에서 백밀러로 보니 얼굴이 부쩍 피곤한 기색이다. 오늘 하루 버티시려면 힘들겠다.  그래도 아침에 카레라이스 한 그릇을 거뜬히 드시고 토마토도 한접시 깨끗이 비우셨다. 엄마는 밥심으로 버티시는 것 같다.

'엄마 주말이예요. 하루 잘 지내고 오시면 휴일에 맛난 것 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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