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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Aug 15. 2019

19 엄마의 질투

엄마는 책을 질투하신다

느지막이 아침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게 휴일의 최고의 낙이었는데, 그런 날이 언제였던가? 기억이 아슴아슴하다. 엄마와 집에 있는 동안 나에게는 하루의 두루마리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평소에 시간을 낭비하다가도 막상 뭘 못하게 되면 그 시간이 더 아쉬워진다.      


일요일 아침 식사 후 땀을 뻘뻘 흘리며 대청소를 하고 샤워를 끝내고 나왔더니 엄마는 침대에 누워 쉬고 계신다. 상쾌한 마음으로 냉커피를 한잔 타서 식탁에 책을 펴고 앉았다. 얼마 만에 느끼는 독서의 기쁨인가?      

마음껏 이 순간을 즐기려는 찰나!      


식탁위에 놓였던 무선마우스가 내 손에 걸려 바닥에 후다닥 떨어졌다. 얼른 몸을 기울여 방을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엄마 몸이 움직인다. 그 다음은 뻔한 순서다. 하는 수 없이 엄마를 모시고 나와 식탁에 앉혀드렸다. "엄마 책 볼래?" "……."     


법륜스님의 '행복'을 가져다 드렸다. 커뮤니티 친구 분이 엄마 읽으시라고 큰 글자 책을 선물해주셨다. 엄마는 그 책을 머리맡에 두고 가끔 책장을 뒤적뒤적 넘기신다. 읽으시는 것은 아니다. 책을 가져다 드리니 오늘도 책장만 넘기신다.      


책꽂이에서 그림이 있는 책을 찾았지만 마땅치가 않다. 그때 눈에 띈 책이 "서양미술사"다. 엄마 앞에 펴드리니 그림들을 보신다. 나는 기쁘게 맞은편에 앉아 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치 아이들 어릴 때 엄마가 바쁘면 TV나 비디오 틀어주는 생각이 난다. 교육적으로 보면 옆에 앉아 책을 읽어주고 비디오도 함께 보는 게 최상급이겠지만 바쁜 엄마들이야 그럴 틈이 없지 않았는가? 내가 바로 그 꼴이다. 내 독서 시간 확보를 위해 엄마에게 책 한 권 안긴 모양새다. 한참동안 책을 보다 독서대 넘어 엄마를 보니 동작이 멈추어 있다. 졸고 계셨다. 내가 기척을 내니 다시 눈을 뜨고 마치 졸지 않았다는 것처럼 시치미를 떼신다.      


엄마는 내가 책보고 글 쓰는 걸 질투하신다. 밥하고 설거지, 청소, 빨래를 할 때는 혼자 잘 계신다. 그런데 일이 끝나고 이제 뭘 좀 하려고 앉으면 바로 부르신다. 아마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신 듯하다. 내가 바쁠 때나 잠을 자고 있을 때는 뭐든 혼자 하려하시고 부르지 않는데 일을 끝내고 좋아하는 걸 하려 하면 꼭 내 관심을 끌려고 하신다. 막내가 태어났을 때 둘째가 엄마 사랑받으려고 퇴행현상 보인거랑 같은 느낌이다.     

엄마는 책을 질투하신다. 


나는 책도 엄마도 공평하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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