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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Sep 11. 2019

명절 유감

추석을 맞으며

명절을 이틀 앞두고도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으니 마치 해야할 숙제를 미뤄두고 골목에서 놀고 있는 아이 심정이다. 언제 엄마가 불러 들일지 모르는 불안한 휴식처럼.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부르지도 야단치지도 않는 허전한 명절이다. 시댁에도 며느리 다섯이 각자 집에서 분담받은 음식을 해서 명절날 아침에 모이니 예전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나는 경상도 특유의 배추적을 맡았다. 준비는 쉽지만 막상 만들 땐 조금 까다로운 음식이다.


결혼한 이래로 배추적 굽기는 경상도 산골 출신 막내 며느리인 내 차지였다. 양손에 밀가루 반죽을 잔뜩 묻혀야하는 것이 어설프기도 하고 무엇보다 온 식구들의 사랑받는 술안주이기도 해서 엄청난 양을 구워제껴야한다. 집집마다 음식을 나누어 맡을 때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배추적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배추적 레시피를 들은 사람들은 말한다. '설명을 들어서는 별 맛이 없을 듯 한데'라고. 우리 고향 경상도 북부지방의 별미인 배추적의 맛을 뭐라고 설명하면 될까?


생배추 살짝 익혔을 때 달착지근한 맛과 고소롬한 밀가루 부침옷이 잘 어울러진 슴슴한 맛이다. 거기에 참기름과 깨소금, 파를 넣은 간장을 찍어 먹으면 더 맛이 살아난다. 온갖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한 도회지 사람들의 첫 반응은 "이게 뭐 맛있다고"인데 몇 년씩 이웃에서 얻어먹은 사람들은 "배추적 했어?" 하며 목을 멘다. 꼭 '오래사귀어야 아는 친구의 참맛' 같은 음식이다.


생배추 두 통을 사다가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밀가루를 적당히 묽게 반죽을 해서 배추를 한잎씩 들어 앞뒤로 반죽속에 넣어 밀가루를 입힌 다음 후라이팬에 구워내면 된다. 배추적을 잘 굽기 위해서는 배추를 꺼풀이 얇고 달큰한 것으로 잘 골라야 되고 다음은 반죽이다. 너무 묽으면 생배추 익힐 때 나온 물기 때문에 밀가루가 배추에 붙지 않고 다 떨어져 버린다. 또 너무 진하면 보기는 안정되나 너무 밀가루 옷이 두꺼워져 맛이 없다. 다 구우면 전날 미리 남편 손에 들려 시댁에 보낸다.차례용을 미리 챙기고, 술안주로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집성촌의 특성상 집안 어른들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냈다. 장남이 아닌 집은 음식을 장만할 필요가 없었다. 항렬로 따져서 가장 높은 집 장남부터 시작해서 쭉 내려오면서 큰집들에서 제관들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하고 다음집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다음집은 미리 차례상을 준비하고 일행을 맞는다. 하루종일 거의 열대여섯집을 돌며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잔뜩 먹고 나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잔치맞은 강아지들 처럼 신나서 돌아다녔다. 그러나 나의 명절은 늘 조금은 쓸쓸했다. 장남도 아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으니 우리집은 차례도 없고, 큰집 차례 준비를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처지인데 그마저도 엄마는 장사로 열외가 되어 할 일이 없었다.

옷장사를 하던 엄마는 명절이 다른 때보다 몇 배는 바빴다. 평소에는 인근 대여섯 마을을 돌며 장사를 하다가 명절이 되면 먼 강원도까지 영역을 넓혔기 때문이다. 명절 한 달여 전부터 서울의 평화시장, 남대문시장에 가서 옷을 도매로 사가지고 강원도 황지, 태백,삼척, 묵호 등지를 돌며 탄광촌 사람들에게 소매값으로 팔았다. 지금이야 고속도로가 훤히 뚫렸지만 6,70년대만 해도 '대관령 고개 넘듯 한다'하면 힘들다는 뜻일 정도로 가기 힘든 곳이었다. 청량리에서 영동선 완행열차를 타면 태백산맥 서쪽을 따라 영주까지 내려와서 다시 태백산맥 동쪽을 타고 묵호나 삼척까지 올라가면 열두시간은 꼬박 걸리니 외지로 나가기 어려운 동네였다. 그런 탄광촌을 엄마는 몇 년동안을 명절 때마다 단골집들을 찾아 옷을 팔고 왔다. 명절 임박한 대목까지 장사를 하고 추석이나 설날 오전 한나절이나 되어야 집으로 왔다. 그때까지 나는 차례 지내는 무리들 사이에 외롭게 끼어서 이집 저집 다니며 엄마를 기다렸다. 서너 번째 집 정도 차례를 지낼 때쯤 마침내 엄마가 오면 나는 기가 살아서 겅중겅중 뛰며 돌아다녔다.

엄마는 피곤에 절고 옷에는 탄광의 검은 가루가 가무잡잡하게 묻은 채로 돌아왔다. 그러나 엄마는 사람들 사이에서 빛이 났다. 강원도에 사는 친인척들의 소식을 들고 왔으니 모두 엄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솜씨 좋고 공정하게 처신도 잘하는 엄마는 오자마자 음복을 나누는 과방에 자리를 차지했다. 그 자리는 자기 자식들에게 떡이나 과일 한 조각이라도 집어줄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 엄마가 과방에 앉아 있으면 그근처를 얼찐거리다 맛있는 약과나 사탕. 소고기꼬치 같은 귀한 음식을 받아들고 의기양양하게 먹었다.

엄마는 과방을 보다가 이따금씩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폈다. 내가 눈에 띄면 손짓을 해서 불렀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과방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뭐라도 챙겨 먹이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런 별도의 챙김받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이 그런 특혜를 누릴 때 마음속으로 그 불공정함에 비난을 퍼부었기 때문에 막상 나에게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양심상 아닌 척하고 그 기회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엄마는 내가 숫기가 없다고 답답해했다

딸 아이들은 여행을 떠나고 남편과 아들은 시댁에 차례 지내러 갈터이니 추석날은 엄마와 둘이서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야 할 모양이다. 명절앞에 준비도 없이 지나갈려니 섭섭한 마음인지 심란해서 옛날 기억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모레는 거실 가득 종이를 펴고 전기 후라이팬에 기름 자르르 두르고 배추적이나 지치도록 구워야겠다. 엄마 앞에 앉혀 놓고 방금 구운 배추적 죽죽 찢어 드리면 그 옛날 과방에서 엄마가 날 뭐라도 챙겨주려던 그 마음을 조금은 갚은 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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