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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Sep 13. 2019

엄마와 둘이 한가로운 추석을 보내며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추석 전 날에 정상근무입니다. 어르신 등원하실건가요?" 잠깐 망설이다가 그러마고 했다. 명절에 가족에게 둘러쌓여 지내지 못하고 센터에 가시는 게 맘에 걸렸지만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 아이들은 모두 나가고 없고 엄마 보내고 대청소를 한다. 11시쯤 수퍼에 나가 장을 봐온다. 다이어트 기간이라 딱히 살 것도 없다. 큰집에 가져갈 배추적을 굽기 위해 통배추를 샀다. 그리고 나머지는 늘상 먹던 야채와 과일 그리고 고기다. 추석날은 불고기를 해드릴려고 호주산 소고기를 샀다.

재료를 준비해 거실바닥에 앉아 부침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주변에 동영상 만드는 분들이 많아 동영상제작을 해보려고 전 부치는 과정을 찍었다. 혼자 작업하며 한 손으로 영상을 찍고 있으려니 뭔 주책인가 싶기도 하다.

배추 작은 거 통을 부치고 부추도 단 부쳤다. 작업중에 남편이 왔길래 뜨거운 것 한 접시 줬더니 순식간에 먹으며 "맛있다"고 노래로 답례를 한다. 요즘 음악을 한다고 발성을 배우러 다니더니 녹음을 해와서 들려준다. 나름 고마움의 표시이겠으나 아마추어 연습곡 보다는 듣던 팟캐스트를 계속 듣고 싶었다. 그래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어 좋다고 하며 들었다. 부침개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뜬금 없는 성악을 감상하며 긴 시간에 걸친 작업이 끝났다.

곧 센터에 가신 엄마가 돌아오셨다. 워낙 배추적을 좋아하시니 오자마자 한 접시 드렸다. 저녁을 드시고 오셨는데도 맛있게 드신다. 남편도 가고 정리가 끝나자 집안이 조용하다. 평일과 다름이 없지만 명절이라고 하니 괜히 맘이 썰렁하다. 책을 본다고 식탁에 앉으니 엄마가 방에서 나온다. 뭔가 드시고 싶은 기색이라 일전에 사다놓은 강정과 크런치초코렛, 사과를 드렸더니 과자만 드신다. 남겨진 사과는 내 차지다. 다이어트한다고 좋아하는 배추적을 한 점도 못 먹으니 아쉬운 마음을 사과로 달랜다. 엄마가 남긴 크런치초코렛도 하나 먹고 말았다. 사이클 한시간 타야되는 음식이다. 그래도 달달하니 쓸쓸함을 가셔준다. 기분이 좋아지는 단맛이다.

엄마는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지우개로 싹싹 지워가며 열심이시다. 그 모습을 보니 맘이 아리하다. 누구보다 북적이는걸 좋아하는 분인데 자식도 달랑 하나뿐이고 몸도 맘대로 안되 명절인데 그림이나 그리고 있다니. 아이들 빈자리가 크다. 연휴라고 여행을 떠나겠다기에 흔쾌히 보냈는데 없으니 집이 텅비고 조잘거리며 수다떠는 게 소중한 줄 알겠다.

한가로워 몸은 편해 좋으나 그래도 사람과 부대끼며 이야기보따리 풀어놓는 재미가 훨씬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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