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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Sep 24. 2019

실패한 양평 드라이브

엄마 모시고 나들이 가고 싶다

아침 일찍 배고프다는 엄마의 신호에 더 자고 싶은 마음을 접고 일어나 식사준비를 했다. 아들은 자고 있어서 엄마만 아침을 차려드렸다. 이 닦고 세수시켜서 방에 앉혀드리고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혼자 옷을 갈아입고 나오신다. 화들짝 놀라 달려가서 묻는다.
"엄마 왜? 어디 가시게?"
"센터"
갑자기 머리가 핑 돈다. 날짜와 요일을 잃어버린다는 치매증상인가?
"엄마 오늘 일요일이야. 센터 문 안열었어. 차도 안오잖아!"
"센터 전화해라"
엄마는 내 얘기를 들은척 만척 방을 나와 현관으로 보행기를 비틀비틀 몰고 간다. 나는 부리나케 고무장갑을 벗고 엄마를 잡아세웠다.
"엄마 오늘 일요일이니까 조금 이따 미용실에 가서 머리커트나 합시다." 달래듯이 말했으나 엄마는 신발을 신기라는 눈짓을 하신다. 나는 당황해서 일단 거실의자에 엄마를 앉히고 핸드폰과 차열쇠만 들고 엄마를 부축해 현관을 나섰다.

밖에 나오니 생각지도 않게 빗방울이 가볍게 날린다. 태풍 소식을 들었는데도 귀담아 듣지 않으니 날씨가 어떨지 생각도 못했다.
'이제 어쩐담!' 잠깐 고민을 하다가 내친 김에 드라이브라도 시켜드려야겠다 생각하고 엄마를 차에 태웠다. 갑자기 나선 길이니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이 안났다. 간선도로를 타고 달리다보니 춘천 양평 방향이다. 언뜻 생각난 것이 두물머리. 경치 감상이나하다가 차를 마시고 점심 사먹고 오면 되겠다 생각하고 양평 쪽으로 달렸다. 엄마는 10분도 안되어 잠이 들고 나는 라디오의 음악을 들으며 비오는 양평길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간간히 눈을 뜬 엄마는 무표정하게 앞을 보다가 이내 또 잠이 든다. 두물머리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조금 더 굵어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찻집으로 가려고 우산을 펴들었다. 지팡이를 짚은 엄마는 나의 어깨에 한쪽 팔을 걸치고도 몸이 쓰러질듯 쏟아진다. 한쪽 어깨에는 작은 무릎담요를 걸치고 부상병을 부축하고 퇴각하는 패잔병같은 모양새로 총대신 우산을 들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중간에 나타난 나무아래 바위에 담요를 깔고 엄마를 앉혔다. 생각하니 핸드폰과 카드를 차에 두고왔다. 움직이지말고 그대로 있으라는 말을 몇번이나 강조하고 차로 달려갔다. 중간에 있는 연잎 핫도그집 앞을 지나며 보니 모두 입장권처럼 핫도그를 하나씩 들었다. 핫도그 좋아하는 엄마 드릴려고 주머니를 뒤졌으나 현금이 3,000원이 안된다. 카드가 안되는 집이라 고 써붙여놨는데. 한편으론 이와중에 핫도그까지 들면 구경거리 나겠다싶어 현금 없는 게 다행이다 하고 위안을 삼는다.

엄마에게 가까이 달려가니 얼굴에 근심이 가득이다. 일으켜 세우는데 뭐라뭐라 말을 한다. 귀 대고 들으니 '돌아가자'라고 한다. 다리풀려 주저앉은 며칠전 기억때문에 보행기 없이 지팡이만 짚고 걷는 것을 두려워하신다. 점점 몸을 움츠리게 되어서 걷는 거리가 많이 줄었다. 두물머리 큰나무 지나있는 찻집까지는 아무래도 걷기가 무리이지싶다. 하는 수없이 차로 다시 돌아가야했다. 이렇게 갑작스런 양평 드라이브는 수확없이 끝났다. 자리에 앉은 엄마는 비오는 풍경은 아랑곳없이 평온하게 잠이 드셨다. 오가는 동안 조수석에서 잠만 잔 엄마에게는 이번 외출은 무효나 마찬가지다. 집까지 나홀로 휴일드라이브를 즐긴 꼴이 되고 말았다.


저녁에 식구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데 낮에 있던 드라이브 이야기를 했더니 두 딸이 할머니 모시고 여행을 가자고 제안을 한다. 나는 감히 엄두도 못내고 남편과 아이들이라도 각자 즐기라고 권하곤 했는데 함께 가자고 하니 너무 고마웠다. 휠체어를 타고라도 밖에 모시고 가야겠다. 매일 매일 집과 데이케어센터만 왔다갔다하는 엄마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제는 아예 그런저런 기대도 접어버리고 자연과 풍경에 대한 감흥도 잊은 것 같다. 그래도 의식 저 바닥에는 아직 떠남을 동경하는 마음이 남아있지 않을까? 잠들려는 엄마의 감성을 깨워드리고 싶다.


10월을 기다린다. 바베큐도 해 먹고 밤하늘의 별도 바라보는 그날을 엄마가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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