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알레 Jul 27. 2022

부자 선배 가난한 선배

2016년 생애 첫 주택 구입을 고민 중인 신입사원에게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여기서의 '가난한 아빠'은 결코 빈곤을 뜻하는 게 아니다. 글쓴이의 아버지인 '가난한 아빠'도 사회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지위를 누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바라봤을 때 제법 잘사는 편에 속했다. 다만 글쓴이는 '부자 아빠'와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상대적 표현으로서 '부자'와 '가난'이라는 말을 쓴 것이다. 




내가 이번 글에서 표현하는 '부자 선배'와 '가난한 선배'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둘 중 어느 누구도 실제로 가난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볼 때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리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비유로 인한 오해가 없었으면 해서 서두에 밝힙니다. 









가난한 선배




2016년도에 나는 신입사원이었다. 2009년도에 혼자 서울에 올라와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자취생활을 했으니 그때도 이미 자취 8년 차였고, 5번의 이사로 지친 상태였다. 2016년 가을 원래 살던 집 계약이 만료되면서 새로 이사할 집을 알아봐야 했다. 재계약을 할 수도 있었는데, 55만 원이던 월세를 10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해서 나오게 됐다.




서울 외곽 지하철이 가깝지 않은 동네의 신축 대단지 아파트. 24평 매매가 4억. 네이버 부동산을 이리저리 검색하다가 버스를 타고 임장을 갔다. 그때는 임장이라는 단어도 몰랐고, 무슨 자신감으로 집을 보러 갔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가보니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와있는 매물은 없었고 33평대 6억 6천만 원짜리만 볼 수 있었다. 




당시에 LTV는 70%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매매가가 4억이면, 2.8억을 주택담보대출로 빌리고, 1억 원 정도를 신용대출로 빌리면, 직장 생활하면서 모은 2천만 원 정도의 내 돈으로도 집을 살 수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퇴직금 중간정산을 하면서까지 서울에서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지원을 5천만 원 정도 받는다고 가정하면, 그다지 영끌이 아니어도 가능했다. 




"나는 서울은 잘 모르니,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잘 판단해라."




아버지는 서울을 와본 적이 거의 없으셔서, 서울에서는 어느 동네가 좋은지, 그 정도 가격이면 적당 한 지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셨다. 회사에 가서 선배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출근을 해서 집을 사는 것에 대해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지난 10년간 서울 아파트는 인플레이션 방어도 안됐어". 연평균 얼마가 올랐다고 통계까지 근거로 덧붙이니, 투자로서의 부동산은 영 매력 없이 다가왔다. "김포에 분양받고 좋아했는데, 그때가 고점이었어. 지금 8년이 지났는데 손실이야". 8년 동안 손실이라니, 아파트는 사는 게 아닌가 보다 두려워졌다. "신도시 집을 샀는데 지금 반토막이야". 신입시절 내내 들은 이야기는 '부동산으로 돈을 잃은 이야기', '앞으로 주택을 사지 않을 거라는 계획'이었다. 




게다가 26살의 나는 대출을 3억 정도 받는 걸 상상하고, 그 돈을 언제 갚을 수 있을지 두려워했다. 인터넷에 '원리금 계산기' 같은걸 검색해서 3억을 20년~30년 동안 상환하려면 월 얼마를 내야 하는지 찾아봤다. 당시 내 연봉은 4천 정도여서, 또래 대비 높은 편이었으나 그 정도의 빚을 이자와 함께 갚는 건 무리였다.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고 나면 남는 돈으로 어떻게 생활할지 걱정됐다. 




"돈을 조금 더 모으고 사자"




조금만 더 모으고 집을 사기로 했다. 그리고 사회 초년생이다 보니 집을 보는 안목도 좀 없는 것 같아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도 모으고 안목도 기르자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내가 봤던 4억짜리 집은 5억이 되어있었다. 



내 눈에 좋아 보이면 남의 눈에도 좋아 보이는 거였다. 나름 상대적으로 '싸다'라고 느꼈던 아파트였는데, 그만큼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올랐다. 1년 정도 저축을 하면서 2천만 원 남짓 더 모았으려나. 근데 집값은 1억이 상승했으니, 나는 내 집 마련과 더 멀어졌다. 




그 이후는 모두가 알다시피 이 과정의 반복, 연속이었다. 나는 주식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저축과 투자를 병행했으나, 상승하는 집값 앞에 무기력함만 커졌다. 집값은 올랐는데 대출한도는 줄었다. 예전에 내가 보던 4억짜리 집은 이제 12억이 되었는데, 주택담보대출은 대략 4억 정도 받을 수 있다. 자기 자본 8억 원이 필요한데, 그 돈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부자 선배




2020년. 부서를 옮기고 만난 선배들은 모두 유주택자였다. 30대 중반의 나이였는데, 이미 몇 년 전 집을 사둬서 시세차익도 상당했다. 서울에 20억 상당의 아파트에 주택담보대출 없이 자가로 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모두'가 유주택자일 수 있지?




사연을 들어보니 속 편한 '증여'도 아니었다. 20살 때부터 의식적으로 자기 집 마련에 열심히였고, 처음엔 1~2억, 그다음엔 5~6억짜리 집을 샀다고 한다. 대출은 최대로 일으켰으나, 집값이 오르면서 이를 갚고도 충분한 금액이 남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벌어들인 돈을 보태서 입지가 더 좋은 집으로 계속해서 옮겼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서울내 좋은 입지를 분석해서 옮겨다녔으니, 잘못사서 손해를 본 경우는 없었다.




이 부서 사람들 '모두'가 유주택자였던 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동산을 적기에 매수해서 돈을 버는 사람을 봤고, 또 그 사람을 통해 조언을 들으면서 집을 찾아다녔다.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소설을 보면 사람들은 송 과장에게 부동산 투자에 관해 질문하고 조언을 구한다. 한 두명 성공사례가 있으니,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실제로 부자 선배들은 후배가 들어오면 집을 사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내가 이 조언을 들었을 땐 이미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11억을 넘은 시점이라, 뭐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다는게 아쉬울 뿐이다. 




내가 사회 초년생 때 '부자 선배'가 옆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혹시 내가 4억짜리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시절, 3억의 빚을 두려와하던 시절. 실거주용 부동산은 단순히 투자용으로만 볼 수 없다고, 주거 안정성의 측면에서도 집은 중요하다고 말해줬더라면, 대출은 내가 노동소득으로 갚는 게 아니고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줄어드는 거란 걸 알았더라면. 노동 소득으로는 자산 가격의 상승을 따라가기 어렵다는걸. 2020년도에느 듣게된 위와 같은 조언들을 2016년도에 들었더라면...




그러나

투자는 개인의 책임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보고 배웠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으나 결국 선택은 '내 몫이다'. 나는 집을 사지 않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고, 아직 무주택자로서 이사 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다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도 공부하고 있으며, 부자 선배에게 더 배울만한 게 없는지를 돌아보고 있다. 





타의로 이사다니지 않아도 되는 삶을 꿈꾸며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떠오르는 애피소드를 풀어본 것으로, 누군가를 향한 비난보다는 따뜻한 응원과 격려 부탁드릴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것도 꼰대와 MZ의 갈등인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