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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나의 특기

by Alle

나는 특기가 없다. 누군가 내 특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뭐라 답해야할지 모를 것이다. 회사 면접에서 저런 질문을 받는다면 그 순간 머리에서 떠오르는 거짓말로 무마하겠지만 사석에서 저런 질문을 듣는다면 아마도 음 글쎄요, OO씨는요? 하고 상대방에게 역질문을 해서 힘겹게 대화를 이어나가겠지.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나의 특기가 '불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나의 아픈 강아지를 산책시키는데, 강아지가 앞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순간 비틀댔다. 나는 그 짧은 순간 강아지의 전신마비와 죽음까지 떠올려버렸다. 누군가는 이런 것을 '재앙적 사고'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어떤 현상을 두고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버리는 사고방식이다. 그 찰나에 머릿 속에서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은 다음 나는 곧 스스로의 재앙적 사고를 자책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의 이런 부분이 강아지의 치료에 도움이 됐던 적이 여러 번 있었음을 깨달았다.


강아지는 이때까지 여러 번 아팠는데 대부분 아픔에는 전조 증상이 있었다. 척수연화증은 어느날 갑자기 마비가 올 수 있는 질환이라 강아지가 걷는 게 묘하게 어설프다든가, 살짝 모양새가 이상하면 득달같이 병원에 데려가서 진료를 봤다. 그런 때는 진료에서 보행 검사를 하면 상태가 조금 안 좋아져있어서 스테로이드를 추가 처방받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이 질환은 병의 악화가 비가역적인 경우가 많아서 최대한 빠른 조치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강아지의 상태에 대해 늘 곤두서 있었고 과잉 반응했는데 이런 부분이 그래도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면 내 불안은 썩 괜찮은 일을 해낸 셈이다.


하지만 나는 만성적인 불안 때문에 심리 상담을 여러 차례 받기도 했었다. 불안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아주 조그만 현상을 보고도 재앙으로 치닫는 사고 방식 때문에 인생이 고통스러울 때도 많았다. 표정과 어깨는 늘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약간이라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조금의 여유도 가지지 못하고 인생을 즐기지 못했다. 나는 자책했다. 분명 즐길 수 있는 순간도 많았는데 왜 그러질 못했는지, 왜 늘 과하게 불안하고 긴장해서 주변 사람마저 괴롭게 하는지, 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를.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새싹만 보고도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꼼짝 않고 있는 사람보다는.


그렇지만 나의 지긋한 불안도 강아지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원래 불안을 느끼도록 진화했다. 우거진 숲 속에서 흔들리는 풀을 보고 사자를 상상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생존할 확률이 높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굴 안을 탐험하고 싶었던 낙천적인 사람보다 동굴 안에 뭔가 위험한 게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다. 불안은 생존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나는 원시림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안전한 환경 속에서 루틴한 생활을 보내는 현대인이기에 흔들리는 풀을 보고 사자를 상상할 이유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불안이 강아지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듯, 분명 어느 정도는 쓸모가 있다. 예를 들어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하기에 여행 계획을 열심히 세우고 짐을 꼼꼼히 챙긴다. 이런 점은 나의 동행인에게 꽤 도움이 된다. 통장에 돈이 없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과하게 소비하지 않으려고 어느 정도 노력한다. 내가 체력이 너무 없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점들을 우려해서 짧게나마 운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반대로 불안이 나의 발목을 잡았던 적을 생각해보면 불안이 두려움이 되었을 때인 것 같다. 너무 불안하면 두렵게 되고, 두려우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회피적인 행동을 해왔다. 내 인생의 책임을 어딘가에 맡기고 싶어했다. 나의 행동에 책임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취업하는 게 두려웠기에 오랫동안 하고 싶지 않은 고시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사기업에 들어가는 게 두려워서 안정적인 공공기관에 취업을 했었다. 나는 바보 같은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 목표하던 대학에 들어갔으니 나의 나머지 인생은 알아서 굴러가질 거라고, 고시 공부를 하는 시간이 내가 사무관이 될 거라는 결과를 언젠가 보장해줄 것이고, 공공기관에 취직하는 게 나의 무탈한 인생을 보장해줄 거라고. 나는 여기까지 노력했으니 그 나머지는 알아서 이뤄질 것이라고.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인생은 언제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같은 구태의연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그래서 나의 결론은 이렇다. 불안이 생존에 도움이 되도록 잘 벼르고 닦아야 한다. 우선 불안이 두려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두려움에 기반한 회피적인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불안을 시그널로 인식하고 그 전조가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 실제로 정말 문제가 되는 일일 때 대비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 반대로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 별것 없으며 실체가 없을 때는 불안을 내려놓는다. 또한 나의 선택적인 낙천성이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인지 한번 쯤 점검해볼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강아지의 건강에는 상당히 불안해하면서도 나의 건강에는 이유 없이 낙천적인데,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어느 정도 불안을 갖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즉 불안은 생존을 위해 행동하기 위한 도구이지, 잠식당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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