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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정아 Nov 13. 2023

그것은 바다가 나에게 들려주는 목소리였다

시작도 끝도 없는 바다처럼


  나는 수영을 못한다.


  어릴 적에 수영을 배우려 강습반에 든 적이 있다. 처음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을 땐 차갑다 못해 서늘한 물에 지레 겁을 먹었다. 그래도 물장구치며 한두 달 배우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는데, 문제는 얕은 물에서 노는 데 금세 흥미를 잃었다는 거였다.


  커다란 풀에서 놀고 싶었다. 아직 수영 실력이 미숙하다는 것을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슬슬 기회를 엿보다가 성인용 수영장에 풍덩 몸을 담갔다. 그런데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거다.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크게 당황했고, 그만 머리끝까지 물에 잠기고 말았다. 놀라서 허우적대지만 않았어도 금방 물 위로 떠올랐을 텐데 이조차 알지 못했다. 물에 빠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르겠다.


  살기 위한 본능인 건지 나는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떴다. 수영장에 울리는 호루라기 소리,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물속은 바깥의 모든 소리를 지운 채로 이루 말할 수 없이 투명했다. 너무 어려서 ‘평화’라는 단어를 몰랐어도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음에도.


  지나가는 어른에게 발견되어 나는 물 밖으로 나왔다. 그 이후로 엄마는 나를 두 번 다시 수영장에 데려가지 않았다. 그때 죽을 뻔한 거 아닌데. 나 계속 다니면 안 돼? 내가 우물쭈물하면 엄마는 화를 냈다. 호기롭게 시작한 수영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고요한 물속을 바라본 기억 때문인지 나는 자라면서 바다를 동경했다. 물이 넘실대는 그곳에 내가 꼭 있고 싶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동해 바다는 차로 3시간 정도를 달려야 도착한다. 왕복으로 한나절 이상 걸리므로 보통 마음먹기로는 쉽게 떠날 수 없는 곳이다. 그래도 나는 기회만 있으면 바다로 갈 궁리를 했다. 마음이 꼬이는 날이면 특히 더 그랬다. 당일치기로 급하게 양양 하조대를 다녀올 정도였다. 바다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늘 새로웠다.


  올해 9월 초, 나는 강원도 삼척에 머물렀다. 성수기가 지나니 식당이나 카페에 오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바닷가는 어느 때보다 한적했다. 파도의 물살에 둥그렇게 마모된 돌덩이만이 군데군데 보였다.


  나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무릎까지 바지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고운 모래들을 자근자근 밟으며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물이 생각보다 차가웠는데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찌릿한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젖은 모래들이 발가락 사이로 나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 나는 흘러가는 물결에 엉킨 감정을 실어 종이배처럼 띄워 보냈다. 부디 나의 눈물과 잘못마저 품어주기를.


  소금기 가득한 바람이 불어온다. 파고가 높아질수록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나는 언제쯤 미련 없이 부서지고 떠날 줄 아는 파도가 될 수 있나. 얼마간 무릎을 모아 앉아 있던 나는 모래를 털고 일어났다. 유영이 가능한 구역 너머로 부표들이 줄지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나는 노란 튜브를 끼고 한 걸음씩 바다로 향했다. 새하얗고 눈부신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역시 수영을 열심히 배워둘 걸 그랬지. 어렸을 적만큼 용맹하지 못하지만 나로서는 커다란 시도였다.


  물밑에서 미끄러운 암초가 밟혔다. 바닷속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서서히 멀어졌고,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발을 놀렸다. 기어코 부표가 있는 곳에 도달했을 때 나는 줄을 바짝 잡고 매달렸고 하늘을 마주보기 위해 몸을 조금씩 뒤로 젖혔다. 수평선처럼 나란히 눕고 싶었다.


  광활한 바다가 그대로 하늘에 비치는 것만 같았다. 그날의 물속처럼 티 없이 맑고 투명했다. 나와 바다만이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물위로 둥둥 뜨는 내가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불현듯 살아 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하루만 더 살아 보자고. 살아서 한 번 더 바다를 보러 오자고. 그것은 바다가 나에게 들려주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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