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촛불처럼
한때 우울한 관성에 사로잡혀 모든 것에 관심 없던 시기가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 귀찮았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았고 새로운 내일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통 먹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딱 그만큼만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의 선택을 따랐다.
그러나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들이부어도 나는 채워지지 않았다. 자꾸만 속으로 타들어 갔다. 제 몸을 녹여 사라지는 양초처럼. 마음속 불씨는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작아졌다. 타인의 취향은 당연하게도 내 것이 아니었다. 분명 그들처럼 즐거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마음의 소리를 잃어버렸다.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기록 따윈 관심 없어. 상처받기 쉽거든."
오한기 단편 소설 「25」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무심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건 남들과 다른 모습에 방황하던 나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의도적으로 하루하루 잊어버리고 그냥 흘려보냈다. 나는 상처받기 쉬운 마음으로부터 도망치는 중이었다.
상처받는 것은 내성이 없다. 익숙하지 않은 고통이 늘 가슴을 후벼 판다. 그럼에도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처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는 죄책감으로 충분히 괴로워했으니까. 역설적으로 나는 나에게 상처를 받고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극복할 수 있다고 했던가. 나는 잃어버린 하루를 찾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글쓰기를 하면서 나 자신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내게 어떤 아픔이 있는지, 그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를 들여다보았다. 또다시 고통받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알면 알수록 오래된 상처들을 비로소 떠나보냈다.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제 항상 눈과 귀를 열어둔다. 모든 가능성이 내겐 기회이니까. 똑같은 일상이더라도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차를 식히며 마시기 적당한 온도를 찾는 일, 영화 엔딩 크레딧에 깔리는 음악에 귀 기울이는 일, 서점을 둘러보며 새 책 냄새를 맡는 일, 산책하는 강아지의 기분을 함께 느끼는 일들로 나날이 채워갔다. 나를 위한 행동을 할수록 마음은 점점 뜨거워졌다.
금방금방 잊어버렸던 습관 탓인지 나는 여전히 기억력이 나쁘다. 여러 번 봤던 영화나 책, 즐겨 듣던 노래들과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보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하나 예를 들자면,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Love Affair’를 한동안 취해 들은 적이 있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음악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곡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나는 마치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 흥미를 느끼고 다시 한번 빠져든 것이다. 마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보다 잘 기억했다.
상처가 아무는 힘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랑에서 나왔다. 이를테면 앞서 걷던 이가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모습, 길고양이에게 깨끗한 물그릇을 내미는 손길 같은 것들이 마음을 어루만졌다. 내가 느낀 사랑의 크기는 전혀 사소하지 않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는 거겠지. 어느덧 나도 기꺼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라본다. 차갑게 굳은 양초가 아니라 매 순간 타오르는 촛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