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언제인진 몰라도 확실히 다가올 그날을 위해

by 알레로그

지금까지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글을 적으며, 가장 확실한 미래인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개인적인 생각들이 많이 담겼지만 혹시라도 내 주장에 설득되어서 글을 읽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아마 혀 끝에서 맴돌던 질문이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뭘 어떻게 준비하라는 건데?”


오늘은 구체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좋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에, 내가 감히 좋은 죽음을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글에서 나름대로의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반영해 왔기에,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는 내가 바라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준비하겠다는 ‘누군가의 계획서 1’ 정도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이전 글들에서 잘 표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자가 홍대병 중증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죽음에 대한 글을 적기 시작한 것일지도..) 글을 읽다가 띠용(?) 하는 부분이 있다면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맞이하는 죽음과는 다른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하는 생각이 반영되었다는 점을 참고해주었으면 한다.


버킷리스트(Bucket list)와 더킷리스트(Duck-it list)


버킷리스트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접하면서 익숙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접하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봐 설명하자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리스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살면서 한 번쯤 해외 어떤 명소를 가보고 싶다던가, 어떤 맛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던가 하는 바람들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더킷리스트는 이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번에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노트”를 읽으면서 처음 본 단어다. 서로 의미가 반대되는 단어이고 크게 어려운 단어는 아니었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게 신기한 부분이었다. 더킷리스트는 죽기 전에 하지 말아야 할 회피 목록을 적는 리스트다.


개인적으로는 버킷리스트보다는 더킷리스트에 더 신경이 쓰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무언가 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크게 없는 편이다. 앞서 버킷리스트 예시로 들었던 어떤 멋진 대자연 풍경을 보러 간다던가, 정말 유명한 셰프의 비싼 코스 요리를 먹어본다던가 하는 것들을 내 삶의 죽기 전 리스트로 담을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렇다고 평생 가지 않겠다는 건 아니고, 기회가 되어 가보는 것도 좋겠지만 가지 못한다고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 같다.)

내게 더 중요하게 느껴졌던 건 더킷리스트인데, 내가 죽기 전까지 가장 피하고 싶은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하면, 후회하는 걸 고를 것 같다. 살아가면서 수 없이 하게 되는 많은 선택 과정에서 후회 없는 선택지를 골라내고 싶다. 물론 그 안에는 옳은 선택도 있겠지만, 잘못된 선택들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잘못된 선택지를 골랐더라도 그에 대한 후회와 자책으로 채우기보다, 잘못된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분석해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벼운(?) 예시로 주식 투자를 하는 상황이라고 하면, 주식이 급등락 하는 과정에서 언제 살걸/언제 팔걸에 대한 자책만 하기보단 매매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매매과정에서 내 판단이 틀렸더라도 그 안에서 얻어낼 수 있는 걸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래도 내 인생에서는 하고 싶은걸 하지 못해서 생기는 아쉬움보다 하지 말아야 할걸 해서 생기는 후회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해서 더킷리스트가 크게 느껴졌지만, 이는 개인마다 원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버킷리스트를 중요시하든, 더킷리스트를 중요시하든 두 리스트는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거나/피하고 싶은 일을 명확히 함으로써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법적인 준비 사항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자기 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내가 결정해야 할 것들을 대리인이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나와 가장 가깝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대리인이 되겠지만, 그 어떤 대리인 보다 나에 대한 걸 잘 아는 사람은 ‘나’다. 그렇기에 스스로 원하는 마지막이 있다면 생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남겨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겨둔다고 해서 모두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법적인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테면 내가 열심히 적고 있는 브런치와 같은 온라인 환경에서 유언을 남긴다면, 이 온라인 유언은 법적인 효력이 없다. 하지만 법적인 효력이 없더라도 내가 어떤 죽음관을 갖고 있는지를 쉽게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없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브런치 북의 마지막(에필로그)에는 내가 바라는 죽음관을 담은 간략한 유서를 적어볼 생각이다.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노트’ 안에서 대한민국 민법에서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는 다섯 가지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로는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으로 유언자가 전체 내용을 자필로 작성하고, 유언장에는 연월일, 주소, 성명을 포함해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도장을 찍어야 한다. 타인이 대신 작성하거나 컴퓨터로 작성한 유언은 효력이 없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녹음에 의한 유언’으로, 자신의 유언 내용을 말로 녹음기에 남기는 방식이고 마찬가지로 성명과 연월일을 함께 담아내야 한다. 또한 증인 한 명 이상이 유언 내용을 들어야 하며 증인은 유언 내용의 정확성을 증명하며 자신의 성명도 녹음에 포함해야 한다. 세 번째는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인데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자가 자신의 유언 내용을 구슬하면, 공증인이 이를 필기하고 낭독하는 것이다. 유언자와 증인 두 명이 내용을 확인 후 서명까지 해야 유언이 완료된다.

나머지 두 방식도 법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서 본인 이외의 유언의 사실여부를 증명해 줄 증인 두 명 이상을 필요로 한다. 생각보다 법적 효력을 받는 유언을 작성하는 과정이 까다롭기는 한데, 내가 뭐 재벌도 아니고 가진 게 많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가진 걸로 법적 분쟁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아서, 이런 방식의 유언까지는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온라인에 내가 갖고 있는 죽음관을 표현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유언장 외에도 내가 올바르게 의사를 표현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기기증서약서, 법적 대리인 지정서와 같은 문서들이 있다. 문서 이름들이 꽤나 직관적인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글자 그대로 사전에 연명의료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를 작성하는 문서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명의료에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이 있다. 장기기증 서약서 역시 문서대로 사후에 내 장기의 거취에 관한 문서로 사후에 장기를 기증할 의향이 있다면 작성하는 것이 좋다. 법적 대리인 지정서는 법적 대리인을 미리 지정해 놓는 문서로 내가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사태에서 나의 의료결정권을 대신 행사할 수 있는 대리인을 지정하는 문서이다. 내 죽음관에 대해 미리 전하고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는 사람을 법적 대리인으로 지정해 둔다면 원하는 마지막을 맞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상으로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앞서 이야기한 버킷리스트와 더킷리스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 외에도 삶을 더 충만하게 가꾸는 재료가 될 수 있다. 법적인 준비사항들은 대부분 내가 정상적인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신해서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하는 대비책이다. 이런 것들을 미리 준비해서 얻는 이점은 첫 번째로 우리는 우리가 언제 죽을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대비하는 목적이 있고, 그다음으로는 죽음을 준비함으로써 삶의 목표를 조금 더 뚜렷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게 곧 좋은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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