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_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알레로그의 유언노트_v2025

by 알레로그

드디어 짧지만 짧고, 길다면 길었던 약 3개월간의 “가장 확실한 미래 준비하기”의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프롤로그를 포함한 10편의 글이 독자분들이 조금이라도 죽음을 편하게 생각하고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길 바란다. 에필로그는 예전부터 계획했던 대로(독자분들은 몰랐겠지만) 내 유언노트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온라인에 남기는 유언은 법적인 효력은 없다. 다만, 현재는 내가 남길 유산이 그렇게 크지 않고 법적인 분쟁의 소지가 없을 것 같아 그저 내가 바라는 죽음관과 마지막 인사를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는 적합한 것 같아 이렇게 온라인으로 적어보려고 한다.


나는 2021년에도 유언노트를 적은 적이 있다. 당시 적었을 때에는 매년 적는 게 목표였지만 삶에 집중하다 보니 매년 유언노트를 갱신하는 건 꽤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21년도 유서에는 매년 이런 유서를 작성할 것을 기대하고 적었었는데, 이번 유언 노트는 내가 비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할 것을 감안해서 적고자 한다.



유언노트_v2025


안녕하세요. 알레로그(본명:XXX)입니다.


이렇게 인사드리는 건 4년 만인데, 안타깝게도 제가 2025년에도 건강하게 살아있는 바람에 2021년도에 했던 인사는 공허하게 사라져 버렸고, 이렇게 2025년 버전으로 다시 인사드립니다.

아마 몇 년 내에 다시 이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2025년에 쓴 이 글이 제 마지막 인사가 될 것 같아요. 부디 이 글이 마지막 인사가 아니길 바라봅니다.


처음 유서를 쓰고 4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이른 나이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서를 적는 이유는 2021년도와 마찬가지로 제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최근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죽음의 네 가지 속성이 나와있었는데, 필연성/가변성/예측불가능성/편재성 이렇게 네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각각 피할 수 없고, 수명을 정확히 알지 못하며, 예측할 수 없고, 어디서든 죽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요약하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언제/어디서 올지 모른다는 건데, 다행히도(?) 이런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길 수 있었네요.


To. 모두에게

2021년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러운 죽음에 여한이 없는 건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2021년~2025년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여전히 좋은 사람들만 주변에 계시는 걸 보면 제가 인복 하나는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인복에 운을 다 써버려서 짧은 생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저는 그동안의 함께했던 시간들로 만족하고 떠나보겠습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부족한 저와 함께 해주셨던 시간들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을 거예요. 그러니 남아계신 분들께서도 너무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마시고 남은 삶을 제 몫까지 행복하게 지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o. 부모님과 형들/형수님들께

먼저 이렇게 세상을 떠나게 되어 죄송하단 말을 먼저 하고 싶어요. 공교롭게도 이전 유언노트를 적고 이번 유언노트를 적기까지의 지난 4년간 우리 가족들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왔는데, 함께 버팀목이 되지 못하고 짐을 더 얹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네요. 부디 이 글을 보실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너무 긴 시간 마음 쓰지 않으시고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있을 때 직접 말씀드렸어야 하는 말이었지만, 이렇게 글로 남기지 않으면 막상 쑥스러워하지 못할 말을 남겨봅니다. 사랑하고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짧지만 행복했던 소중한 삶을 살다가 간다는 걸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To. 친구들에게

내가 이런 유서를 쓴다는 걸 종종 이야기하곤 했는데, 정말로 이걸 보게 될 줄 몰랐겠지? 혹시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이 유서를 먼저 보게 된다면 너무 빠르게 죽음이 찾아와서 전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길 바라. 나이를 먹을수록 각자의 삶이 바빠지면서 만나는 시간과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형들, 누나들 그리고 너희와 함께했던 순간들로 인해 내 삶은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했단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부디 내 몫까지 행복한 삶을 살다가 먼 훗날 다시 만나는 그때를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적어봅니다. 어떤 형태의 죽음이 저를 찾아올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나이에 죽는다는 걸 생각했을 땐 사고로 인한 죽음이 가장 확률이 높은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직/간접적으로 제 죽음과 관련이 있는 사람은 저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했을 때, 당신이 어떤 형태로 제 죽음에 관여했든 간에 저도 동의한 일이고 그에 대한 결과임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사족을 붙이는 이유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당신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상황이라 해도 제 죽음의 이유로 당신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을 거니까 느낄 필요 없는 죄책감으로 괴롭지 않길 바랍니다.


마치면서, 아래의 글은 제가 살면서 죽음에 관해서 적어본 글의 주소입니다.

https://brunch.co.kr/@allelog/24

위 링크는 죽음에 관한 편견을 깨어준 영화에 대한 글인데, 제가 바라는 뒤처리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어 참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남깁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했듯 저는 전통적인 장례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혹여나 진행과정 중 부담이 되는 과정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생략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이미 죽은 저보다는 남아계신 부모님과 가족들이 편한 방향으로 저를 보내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부디 부담스럽지 않고, 슬픔보다는 저와의 즐거웠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밝은 시간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더불어 저는 언제일지 모르는 제가 죽은 기일보다는 살면서 제 주변 사람들과 챙겼던 제 생일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일을 챙기는 건, 살아있는 분들께 부담을 드리게 되는 것 같아 제가 제일 바라지 않는 것 중 한 가지입니다. 그보다는 살아가다가 문득 제 생일날이 떠오르신다면, 살아 있었다면 같이 챙길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맛있는 걸 사드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다이어트 중 마주친 치팅 데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는 한 끼를 드시는 하루를 보낼 기회를 마련해 드릴 수 있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짧은 인생 안에서 소중한 인연이 되어 행복한 시간들을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하늘나라에서 먼 훗날 제 죽음 이후 보낸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025년 11월 4일 알레로그(본명:XXX) 올림



이렇게 본격적으로 유언노트를 적을 때마다 괜히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 없음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밝혀두고자 한다. 이 유언노트는 내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 갑작스럽게 죽음을 마주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적은 것이며, 절대 빠른 시일 내에 스스로 죽기를 원해서 적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난 2021년도에 적으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내 죽음을 생각하고 미리 하고 싶은 말들을 적는 게 쉽지만은 않다. 적다 보면 문득문득 오글거리고, 낯부끄럽기도 하고 멈추고 싶은 순간들을 중간중간 마주하게 된다. 꾸역꾸역 그런 순간들을 이겨내고 글을 마치고 나면, 준비했던 말이나 생각들을 모두 담아내지 못한 것 같고 아쉬운 마음도 든다. 그럼에도 한 번 적어본 경험 덕분인지 이번 유언노트를 적을 땐 비교적 그런 순간들을 담담하게 물리쳐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여전히 내가 생각한 것들을 온전히 다 담지 못한 것 같고 부족하지만, 또 몇 년 내에 미래의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새로운 버전을 적으리라고 믿는다. (부디 그때까지 살아있기를..!)


부족하지만 이 브런치북이 독자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아 각자의 유언 노트를 만들어 '가장 확실한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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