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무엇인가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과 그것들의 끝에 대하여

by 알레로그

오늘은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개념에 대한 내용을 근본적으로 탐구해 보고, 그 결과로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은 어떤 게 있을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죽음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개념을 탐구함에 있어서 도움을 줄 전문가가 필요하다. 오늘 내가 도움을 받을 전문가는 본 글의 제목과 동명의 저서를 쓴 철학자 '셸리 케이건'이다.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철학자의 관점에서 논리와 이성으로 죽음의 본질에 대한 것을 고찰한다. 비록 책은 많이 두껍지만, 이 브런치 북을 통해 죽음에 관심이 생긴 독자분이 계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다양한 비유를 통해 설명하는 방식도 나랑 잘 맞아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혼에 대하여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 우리(혹은 생명체)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의 죽음이 그 구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간단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육체만"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묻는다면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의식"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의식을 단순히 육체 내 전기적 신호의 상호작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은 육체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의식을 인간의 자유의지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을 구성하는 것에는 물질적인 육체 외에 비물질적인 실체가 더 있고 일반적으로 이 비물질적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영혼'이라는 개념이 많이 사용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육체의 존재만을 인정하는 것은 ‘물리주의’,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입장은 '이원론'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러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물리주의적 관점을 유지하지만, 기존에 많은 철학자들이 죽음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이원론의 입장에서 진행한 경우가 많아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물리주의적 관점과 이원론적 관점에서의 해석들을 모두 소개한다.

모두 소개는 하고 있지만 저자의 입장은 꽤나 명확한데, 다양한 비유를 활용해서 표현하는 주장들을 보면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저자는 “용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용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본인이 근거를 제시할 의무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저자의 예시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본인이 근거를 제시하지 않을 것임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영혼이란 존재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상상의 동물처럼 실존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설명이 된다.


죽음을 이야기할 때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는 영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주의적 관점에서 죽음은 육체가 죽어서 생명활동을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 죽음을 육체 활동의 종말로 쉽게 정의할 수 있다. 죽음 이후에 우리는 모든 육체활동이 끝이 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원론적 관점에서는 육체 외에 '영혼'이라는 게 남는다. 저자는 이원론적 관점에서 죽음을 육체와 영혼이 끊어지는 사건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육체는 물리주의적 관점과 동일하게 종말을 맞이함을 알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영혼이란 존재의 행방은 우리가 알 수 없다. 육체활동의 종말과 함께 영혼이 소멸하는지, 종교적 교리에 따라 사후세계로 가서 영생을 누리는지 혹은 여러 시련을 거쳐 환생을 하게 되는지 죽음을 겪게 되면 알 수 있겠지만, 죽음을 '겪어 본' 사람은 그 사실을 살아있는 이들에게 전해줄 방법이 없다.


영혼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라면 죽음 이후의 영혼에 행방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영혼이 있든 없든 간에 죽음 이후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나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죽음 이후의 영혼의 행방에 대한 고민은 생략하고자 한다.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

앞서 죽음을 영혼이 존재하든 아니든 육체 활동의 종말로 설명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육체 활동의 종말 이후에 나는 더 이상 살아있는 이들의 세계(지금의 나의 현실)에 개입할 수 없다. 이는 나를 구성하고 있던 것들과 내가 소유한 것들이 주인을 잃는 것이므로, “가장 확실한 미래 준비하기”에 맞게 이런 것들에 대한 정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어떤 것들을 정리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원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물질적인 것이다. 육체를 포함하여 내가 물질적으로 소유한 모든 것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금전적인 가치가 있는 귀중품부터 취미생활로 모은 각종 물질적인 것들, 디지털 기기를 포함한 각종 가전제품 등이 있을 것 같다. 이 중 당장 내 삶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라면 주기적으로 정리를 하는 게 이상적일 것 같다. 하지만 정리를 하다 보면 이건 나중에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 정리를 망설이게 된다. (정리를 잘 못하는 나의 핑계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하지만 모아둔다고 해서 남겨봤자 결국 정리해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이의 몫이 되어버리므로 불필요한 것들은 주기적으로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음으로는 당장 내 삶에 필요한 물질적인 것들이다. 금전적 가치가 없는 것들이라면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불필요한 것들과 함께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사용 또는 금전적 가치가 있는 것들은 남아있는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소유권을 넘겨주어야 한다. 죽은 사람이 쓰던 물건이라 찝찝하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ㅎㅎ 개인적으로는 내가 잘 사용하던 물건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쓸모가 있고 사용할 수 있다면 사용해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는 죽어서 더 이상 신체활동을 할 수 없는 내 육체다. 죽어버린 내 시체는 일전에 "4. 죽음에 대한 편견을 깨다." 에서 잠깐 언급한 것과 같이 영화에서 처럼 변기에 넣든 어떤 형태로 처리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우리나라의 법 규정과 문화에 맞게 처리를 해주면 그만이긴 하지만,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에서 언급되었던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와리족의 식인 풍습 또는 티베트의 천장 짐승들이 먹도록 놔두는 방식은 우리가 적용하기에는 매우 과격하고 급진적인 방식이겠지만, 녹색매장이나 자연매장에 그치지 말고 탁 트인 공터에서 시신을 처리할 수 있도록 개선되었으면 한다는 저자의 바람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아마 법적, 문화적인 부분을 고려했을 때 내가 바라는 점까지 반영한다면 수목장이 내게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다음은 비물질적인 것이다. 내가 소유한 비물질적인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크게 떠오르는 건 인간관계와 데이터 이렇게 두 가지다. 먼저 인간관계를 생각해 보면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시작해서 친구(선/후배), 직장 동료 정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최대 50명 정도라고 했던가? 카카오톡에 수많은 연락처가 등록되어 있지만 일상이 바빠 연락이 소홀해진 친구들, 조별과제를 하기 위해 연락처를 교환했던 팀원들, 업무로 인해 연락처를 교환했던 사람들처럼 실질적으로 연락하지 않는 연락처가 많다.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이런 관계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굳이 정리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정리가 필요한 인간관계는 내가 지금도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관계를 맺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관계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갑작스럽게 연락해서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미리 하는 말인데 그동안 나랑 잘 지내줘서 고맙다는 둥 앞으로 잘 지내라는 식으로 인사를 하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울 것 같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 현재의 삶 속에서 지속 가능한 형태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셸리 케이건은 저서에서 죽음을 떠올릴 때 가장 바람직한 삶의 태도는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나는 관계를 정리하는 데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현재의 이상적인 관계에 충실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비물질적인 것들 중 다른 하나는 바로 데이터다. 이 데이터를 IT 전공자로서 표현해 보면 ‘로그(log)’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살아오면서 내 육체가 행한 모든 행위의 기록들. 넓게 보면 인간관계도 내가 만들어 둔 하나의 데이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귀속되어 있는지를 관점으로 보면 인터넷 세상에서 내가 사용하는 계정들이 작성한 글, 댓글, 채팅, 리뷰 같은 것들과 디지털 기기 안에 보관되어 있는 데이터들을 주 대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외에도 어느 학교에 나왔고, 어떤 일들을 했고, 어디서 어떤 소비를 했는지와 같은 모든 삶이 이력들이 포함된다. 이것들은 어떻게 정리를 하면 좋을까?


사실 이를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굳이 정리가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이를 테면 내가 살아온 삶의 이력들은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면 바꿀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굳이 정리할 필요도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정리’는 앞으로 어떤 데이터를 쌓아나가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데이터 중 하나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앞의 내용이 일맥상통하는 것 같은데, 현재와 앞으로의 내가 하는 행동들이 결과적으로 나의 인생의 로그가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행동함에 있어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행동하는 게 정리된 데이터를 쌓아나가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이 브런치 북을 쓰는 걸 내가 죽기 전에 후회할 것 같다면 이 글을 쓰지 않는 게 나를 위한 선택이 될 것이다.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험한 말을 했던 것이 후회될 것 같다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 전 삼키는 게 정리된 데이터를 쌓아가는 과정이 될 거다. 어떻게 보면 종교적인 심판에 의지하지 않고도 인간 스스로 선하고 올바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동기를 죽음이 제공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많아 글이 길어졌는데,

요약하면 “죽음은 육체활동의 종말이며, 우리는 이것을 살아있는 동안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정도가 될 것 같다.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싶다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육체가 움직이는 동안 좋은 행동들로 삶을 채워가야 한다.


좋은 행동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각자가 다른 기준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 안에서 선하고 올바른 기준을 갖고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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