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백

'게임수저'를 물고 태어난 나

RPG를 통한 동료애부터 역사까지,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 장치

by 유앨런

1. 게임과 함께한 어린 시절

저는 '게임수저(겜수저)'를 물고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장기출장을 자주 가시던 아버지께서 형과 제가 외롭지 않도록 사준 게임기에서부터 시작됐죠. 단순 오락으로만 비춰질 수 있지만 어머니와 형, 저는 게임기를 통해 대화를 나누고 TV앞에 오손도손 모여 다정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저의 어린 시절은 늘 게임과 함께 흘러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작은 CRT TV 앞에 앉아 손에 땀을 쥔 채 패드를 잡고 있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학원에 가는 시간을 보낸 이후 게임 속 모험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탐험했습니다. 단순히 즐긴다는 차원을 넘어 게임은 저를 키워낸 문화였고 하나의 언어였습니다. 매번 새로운 스테이지를 만나고, 낯선 규칙을 배워가는 과정 속에서 저 스스로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게임은 이미 그때부터 제 삶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2. 수저계급론 속에서 '겜수저'로 태어나

흔히 사람들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같은 표현을 씁니다. 저는 농담처럼 제 자신을 ‘게임수저’라 부르곤 합니다. 어릴 때부터 게임이라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라온 덕분에, 저는 게임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기본 역량을 갖춘 셈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게임을 접하는 거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과 달리 저는 어떤 장르가 나와도 거부감보다는 호기심이 먼저였고, 복잡한 시스템을 만나도 “이건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즐거운 도전의식이 먼저 생겼습니다. 이를 통해 종합문화예술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됐고 결국 게임수저라는 표현은 단순한 농담을 넘어, 제 정체성과 성장 과정의 중요한 은유가 되어 있습니다.


3.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볼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

게임 수저 덕분에 저는 특정 장르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게임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RPG에서 모험과 동료애를 배우고, 액션 게임에서는 순간의 집중과 리듬감을 익혔습니다. 퍼즐 게임은 끈기와 발상을, 시뮬레이션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알려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가상의 세계에서 수많은 삶을 간접 체험했습니다. 중세 판타지의 왕국을 지켜내기도 했고, 근미래 도시의 범죄를 파헤치기도 했습니다. 또 역사물 게임을 하고 나면 책이나 영화로는 체득할 수 없는 깊이있는 지식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쌓인 경험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저에게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준 또 하나의 통로였습니다.


4. 게임을 통해 체득한 수용성의 힘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게임을 경험하며 길러진 큰 힘 중 하나는 바로 ‘수용성’이었습니다. 낯선 규칙을 배워야 하는 상황, 전혀 새로운 시스템을 이해해야 하는 순간이 게임 속에는 끊임없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즐길 줄 알게 되었습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 접하는 환경에서도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앞섰고, “익숙해지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공감하듯, 게임은 단순히 즐거움만 주는 게 아니라 현실 속 문제를 대하는 태도에도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경영학에서 중요한 이론으로 불리는 '게임이론'이 제게는 어렸을 때부터 실전을 통해 조기학습을 한 셈이죠. 저에게 게임 수저는 바로 그 수용성과 적응력을 심어준 토대였습니다.


5. 선택의 중요성을 알려준 선생님

게임을 통해 다양한 선택지를 미리 경험해보며 '인생의 연습장'처럼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에는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멀티엔딩 시스템이 있는데요. 이는 간접적으로 인생에서 선택의 중요성을 경험해볼 수 있게 해줍니다. 대표적으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같은 작품을 통해 나의 선택으로 어떻게 스토리가 달라지는지 알 수 있죠. 내 가족을 구하거나 아니면 가족을 버렸을 때의 처절한 결과, 그리고 대의를 위해 싸웠을 때, 아니면 비겁하게 도망갔을 때 등 머리로만 그려볼 수 있는 미지의 세계를 게임으로 경험해보면서 실제 현생에서는 최고의 선택을 해볼 수 있도록 경험을 제공해줍니다.


6. 선택이 남긴 또 다른 깨달음

게임 속에서의 선택은 단순히 스토리를 바꾸는 장치가 아니라, 제 사고방식을 넓혀주기도 합니다. 현실에서는 한 번의 선택이 되돌릴 수 없는 무게를 지니지만, 게임 속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여러 가능성을 탐험할 수 있습니다.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이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됩니다. 덕분에 실제 삶에서도 어떤 결정 앞에서 주저하기보다는, 더 넓은 시야로 접근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게임은 결국, 선택의 결과를 안전하게 체험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삶이자, 제 일상의 리허설 무대였던 셈입니다.


7. 여전히 계속되는 모험

지금도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면, 어린 시절 느꼈던 두근거림이 다시 찾아옵니다. 첫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낯선 세계를 처음 걸어 나가는 순간의 긴장감은 여전히 설레게 합니다. 때로는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할 감정을 게임 속에서 배웠습니다. 어떤 게임에서는 눈물겹도록 따뜻한 동료애를, 또 다른 게임에서는 차가운 현실의 잔혹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런 다양한 체험이 모여 제 삶의 한 조각을 이루었고, 저를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결국 저에게 게임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모험이자,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가게 해주는 문이었습니다.


fin. 게임수저가 가져다 준 경험들

저는 게임 수저를 물고 태어났습니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고, 그 경험은 제 삶을 더 풍성하게 채워주었습니다. 게임 속에서 익혔던 수용성과 호기심은 현실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낯선 상황을 두려워하기보다 새로운 모험으로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게임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제가 세상을 배우고 이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또 다른 삶을 살아가며,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합니다. 아마 이 게임수저는 앞으로도 제 삶에서 든든한 동반자이자 길잡이가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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