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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앨런 Feb 18. 2022

과거의 내가 부담스럽다

과잉친절은 언제나 별로

안 쓰던 노트북을 꺼내 PC카톡을 켜면 옛날의 나와 마주친다. 슥슥 내리며 대화창을 보면 이런 사람과 잘 지냈었지, 연락했었지 하면서도 부담스러운 내 말투가 계속 눈에 밟힌다. 왜 이리 친절한거야? 쓸데없을 정도로 착한 말투가 나도 부담스러운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싫었을까 싶다.


사람을 좋아했었던 만큼 무조건 많은 사람을 아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었다. 인맥이 최고고, 그게 곧 능력이라고 믿었었다. 그래서 나만의 시간까지 포기하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려 노력했었다. 싫어하던 술이 그때부터 늘었고, 지도앱에는 맛집 리스트가 수두룩해졌다(그때의 리스트로 지금까지 연명하고 있는 점 하나는 좋다). 하지만 인간관계에는 유통기한이 있더라. 직업을 바꾸고, 시간이 지나며 거기다 코로나까지 겹치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랑 연락 자체가 이상한 시간이 됐다. 자연스레 카톡 목록에서 사람들을 숨김친구 목록에 구겨 넣었고, 리스트는 이제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였다.


처음에는 적응을 못했다. 사람이 전부라 생각했던 지라 장점을 잃어버린 기분이었고, 자존감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가끔 방에 앉아 핸드폰만 뚫어져라 봤었는데, 꽤나 힘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에게 의지하며 지냈었던 시간이 많았던 만큼, 홀로 서는 거 자체가 고통이었다. 힘들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해도 그저 관심없는 주제일 뿐이고, 자기 일이 아니니 보통 흘려들었다. 어렵게 꺼낸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으니 나는 거기서 또 상처받고, 악순환이 이어졌다.


사람으로 채워졌던 세월을 그렇게 비워내니 어느새 홀로 서는 법을 터득했다. 이제는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보다 홀로 있는 게 좋고, 나와의 약속이 중요해졌고, 다른 사람에게서 오는 연락 자체가 귀찮아졌다. 정확히는 싫다.


혼자서 시간을 많이 보내니, 노을지는 순간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핑크색 같기도 하고 보라색 같기도 하고. 오묘해.


지지난해부터 시작한 독립과 맞물려, 이제는 오롯이 나 혼자가 돼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에 더 집중하게 됐고 거기에 시간을 더 쏟아붓고 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할 이유도 없으니, 눈치 보느라 못 했던 것들을 마음껏 하고 있다. 평소에 즐겼던 것들은 어느새 취미가 됐고 그 취미는 더 확고해져, 취향이 됐다. 취향을 갖게 되니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더 깊게 이해하게 됐고, 자연스레 그들을 존중하게 됐다. 내가 나 자체로 온전히 거듭나니,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며 위태위태하게 서있었는데, 이제는 단단해진 내 마음에 서서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있게 됐다. 내가 내가 되니,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더라.


이만큼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다 보니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평생 혼자 살 거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부남인 친구들의 결혼생활 이야기를, 운동도 눈치보면서 한다는 한풀이를 들어보면, 독신인 지금이 백배 낫다며  합리화에 합리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마포구 독거노인이 될 거라고 친구들에게 장난스레 말하지만, 말의 힘을 아는 만큼 집에 와서는 그 말이 섬뜩하다.


유쾌하게 말하는 이 말의 반면에는 엄청나게 외로운 감정이 숨어있다 생각한다. 혼자가 좋다 말하고 다니는 건, 정말 외롭다는 마음과 같은 감정선에서 나온 거라. 혼자가 괜찮다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되뇌고 있는 건, 외롭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외우는 주문 같은 게 아닐까. 혼자가 편한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인생에서 제일 외로운 순간인 거 같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던 만큼, 가끔 다른 사람들이 그립기도 하다.


노을지는 순간을 찍어두는 게 버릇처럼 됐다. 해가 지는 걸 보고있으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거리두기가 끝났을 때 나는 뭘 하고 있을까. 그동안 못 본 친구들을 과연 만나고 있을까. 아니면 코로나 대신 다른 핑계를 대며 은근슬쩍 피하고 있을까.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아버린 이 시기 이후에는 아마도 크게 변하지 않을 거 같다. 팬데믹을 거치며 홀로서기를 모두가 학습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한 달에 한 번씩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었다. 친구가 많지도 않으니, 10명만 하면 된다. 예전에는 반가워하던 목소리도 어느새 미묘하게 변했다는 걸 깨닫고 더이상 먼저 전화를 걸지 않는다. 나만 감정을 쏟는 관계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피해야하는 유형이다. 가뜩이나 퍼주며 살았던 내 인생을 되돌이켜보면,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나만 챙겨도 모자랄 판이기 때문이다. 나부터 바로 서자. 내가 바로서야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인간관계에 다양한 말들 중 '남을 사람은 어떻게 해도 남고, 떠날 사람은 아무리 잘해줘도 떠난다'는 건 모든 진리를 담은 거 같다. 휘발유 같은 사람은 나랑 섞이기도 힘들고, 내버려두면 날아가기도 잘 날아간다. 인간관계 뭐 있나. 애쓰지 말자. 집 가는 길에 가족에게 전화해야겠다. 내 사람만 챙기기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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