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미인 앨리 Sep 17. 2023

새치와 흰머리

< 공감 에세이 >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앳된 얼굴 덕분에 내 나이보다 젊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래서인지 스스로가 나이 들었다는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착각에서 가끔 벗어나게 해주는 한 마디에 정신을 차리며 스스로 초라해짐을 느낀다.

"앗! 선생님! 흰머리가 보여요. 할머니세요?"

"그래. 선생님 할머니야."

대수롭지 않게 맞장구쳤지만 마음 한 구석은 쓰러짐을 부인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그림책을 읽을 때면 아이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난다. 그림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앞으로 나오는 아이도 있고 친구와 장난치고 싶어 나오는 아이 그리고 혼자 읽기는 싫고 함께 읽을 때 내가 가장 많이 그림책을 자세히 보기 위해 나오는 아이가 대부분이다. 코로나 때는 사회적 거리 때문에 그림책 속 그림을 잘 보지 못했지만 사회적 거리가 해지되고 난 후 아이들은 서로 앞다투어 앞자리에 앉는다. 이때 앳된 모습 속에 숨겨진 내 노화가 들통나지 않게 나름 신경 쓰며 책을 읽는다. 


난 일찍이 새치가 나기 시작하더니 잔잔한 흰머리가 빨리 나타났다.

새치와 흰머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30대 이전에 나는 흰머리를 새치라고 하며, 그 이후에 나는 흰색 머리를 흰머리라고 한다.

어릴 적 유난히 머리카락이 곱슬에다 뻣뻣했는데 30대가 가까워지자 새치가 하나둘씩 눈에 띄었다. 주변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놀리곤 했는데, 한참 외모에 신경을 썼던 때라 그 말이 늘 고민이었다.

염색을 하자니 너무 이른 것 같고 그렇다고 순진하게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무시하는 게 해결책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새치가 빨리 자라났다는 엄마의 유전이 나에게 온 것 같아 괜히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대로 이때는 그렇게 새치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아주 긴 흰색 머리카락 한 가닥이 나를 괴롭히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결혼하며 아이를 낳고 나이를 하나둘씩 먹어가면서 내 새치는 흰머리로 바뀌었다.

눈에 거슬릴 정도로 흰머리가 자라다 보니 한 달에 한 번씩 염색을 해야 했다. 내 흰머리는 독특하게 잡초처럼 짧게 자라나는데 얼굴 테두리 중심으로 나타난다. 올백 얼굴의 가르마 중심으로 편 나누듯이 스포츠머리처럼 자라나기 시작했다. 염색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뿌리 염색을 미용실에서 시작하면서 한 달에 한 번 미용실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러다 이 뿌리염색 비용도 만만치 않아 염색이라는 것을 집에서 스스로 해보았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한다는 건 욕심이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부분만 해보았는데 염색 약도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성능이 달라짐을 느꼈다. 일단 냄새부터가 처음보다 지금이 훨씬 덜 고약하며 색 유지 또한 과거보다 길어졌다. 요즘은 염색 샴푸까지 등장했으니 세상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에게는 백 프로 만족할 수 없는 기술이라는 평이 많아 난 여전히 셀프 염색을 한다. 


한 달에 한 번 하던 염색의 횟수가 어느 날부터 보름에 한 번 하는 순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이유가 뭔지 궁금해서 폭풍 검색해 보았더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흰머리가 유달리 빨리 자란다는 소식에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지나온 일을 회상하며 달력에 체크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과 사이다 틀어지거나 친정 엄마 일로 신경이 날카로워 시작하면 흰머리 생기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짐을 확인했다. 지금은 어떨까. 한 달에 한 번 염색하던 내 흰머리카락은 보름에 한 번으로 앞당겨왔으며 자주 하는 염색으로 내 머리카락은 돼지털같이 뻣뻣해지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 나름 건강한 모발을 제외하고 염색을 한다고 했는데도 미용사 눈에는 내가 염색을 잘못하고 있다고 따끔하게 충고하며 두려움까지 안겨주었다. 더 이상 머리카락이 복구되기는 힘들다며 조심하는 수밖에 없음을 강조 또 강조했다.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냥 눈 딱 감고 짧은 흰머리카락도 한 번 길러보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더구나 난 괜찮은데 나를 보는 아이들의 눈동자나 짧은 흰머리카락을 보면 염색하라며 재촉하는 친정엄마 말에 난 또다시 염색약을 들고 세면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보이는 곳만 염색하다 보니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밖에 나갈 때는 신경이 쓰인다. 바람으로 인해 내 뒷머리 속에 숨겨진 흰색 머리카락이 훤히 밖을 향해 알몸으로 드러낼까 봐 노심초사한다. 아무리 앳된 얼굴일지라도 세월이 지나감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을 흰머리카락이 증명하고 있다. 글 쓰기를 멈추고 잠시 거울 앞에 섰다. '설마'라는 생각으로 양손으로 머리카락 사이를 휘젓는 동안 내 심장은 시험 치는 아이처럼 긴장되어 심장 뛰는 소리가 빨라짐을 느낀다. 오른손, 왼손을 모두 이용하며 머리카락을 책장처럼 넘기며 흰색이 보이는지 아닌지 체크해 본다.


지금 이 순간 동안이라 불리던 내 얼굴이 더 이상 젊지 않음을 명심해라는 충고로 다가온다.

작가의 이전글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