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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Oct 31. 2023

송송이와 흰 송송이

< 동명이인 > 비교, 경쟁 그리고 함께 하는 순간의 기쁨

내 이름을 검색하면 나쁜 이미지로 각인된 사회인들이 화면에 노출되어 있다.

기분이 묘하게 나쁘다. 마주친 적도 없고 서로 전혀 알지 못하지만 같은 이름이라는 이유로 내 이미지가 떨어지는 것 같아 불쾌하다. 세상에는 많은 이름이 있다. 이 중에서 같은 이름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에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만 하더라도 같은 물건을 몇 백개씩 아니 몇 천 개씩 찍어내는데 희한하게도 같은 물건을 가져있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한다. 다만, 유명한 물건일 경우에는 서로 가져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을 다른 사람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명품일수록 그렇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종종 그런 장면은 아무렇지 않게 드러난다. 가진 자일수록 같은 물건(특히 한정판 물건) 일 경우 서로를 불쾌하게 바라본다.


학기 초 학교에 가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

이름에도 유행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매년 그 특징이 다른데 요즘은 한글 이름이 무척 많아졌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한글 이름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문제는 같은 이름이 많다거나 비슷한 발음이 되는 이름이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해 태어난 아이에게 지어준 이름의 특징에 맞는 이름을 짓다 보니 흔히 일어나는 현상인 것 같다. 성이 다르고 이름이 같거나 이름이 정말 똑같은 아이들도 있다. 이럴 때 아이들은 헷갈려한다. 그 아이의 특징을 바로 잡아 구분을 해야 하는 학기 초일 경우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판단해 분별해서 부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큰 유진, 작은 유진처럼 부르거나 이유진, 김유진처럼 성을 다붙여 부른다.


학창 시절 내 이름을 부를 때 늘 헷갈렸다. '명희'라는 발음과 '영희'라는 발음이 구분되지 않아 출석을 부를 때 '영희'라고 부르면 대답하고 또 '명희'라고 하면 대답을 했으니 잘못 대답했을 때는 혼자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한 반에 같은 이름이 존재할 경우 알게 모르는 긴장감이 흐른다. 중학교 시절 '유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두 명 있었다. 이금이 작가가 쓴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처럼 큰 유진, 작은 유진으로 불렸다.

처음에 둘은 이름이 같다며 좋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 기류로 인해 반 친구들이 곤란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 원인은 바로 선생님의 태도였다. 지금이야 교육관이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 주자는 인식이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선생님이 경쟁심을 부추기는 경우가 있었다. 가령, 그림을 잘 그리는 작은 유진이를 칭찬할 경우에는 "작은 유진이는 정말 잘 그리는구나. 그런데 큰 유진은...... 분발해야겠어."라고 하면 반 아이들 시선은 자동적으로 큰 유진에게 집중된다. 집중을 한 몸에 받게 된 큰 유진은 얼굴이 붉혀지면서 어떻게 이 난관을 벗어나야 할지 갈등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초등학생이 아닌 사춘기에 접어든 청소년시기 었기 때문에 그냥 웃어 넘기기에는 마음의 상처가 컸다. 한 번은 이와 반대로 성적으로 판단할 경우였다. "큰 유진은 점수가 참 좋구나. 그럼, 작은 유진은......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노력하자." 이름이 불린 동시, 작은 유진 얼굴 역시 붉어졌다. 선생님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서로 비교하며 경쟁하는 게 보였는데 기름을 부어 반 분위기만 썰렁해지곤 했다.





마쓰오카 코우가 쓰고 그린 << 송송이와 흰 송송이 >> 일본 그림책이 있다.

제목에서도 할 수 있듯이 이 두 친구는 이름이 같다. 새로 전학 온 흰 송송이가 송송이와 이름이 같기에 궁금한 눈으로 흰 송송이를 지켜본다.

- 출처: 알라딘 서점 -
안녕! 나는 흰 송송이라고 해.
송송이? 나랑 똑같은 이름이잖아.

송송이네 반에 새 친구가 전학을 왔다. 흰 송송이라고 소개한 친구는 송송이와 이름이 같았다.

송송이는 이름이 똑같은 흰 송송이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 출처: 알라딘 서점 -

흰 송송이가 가진 물건은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났고 뭐든지 송송이보다 훨씬 잘하고 앞서 나갔다.

친구로 지내고 싶었던 송송이는 어느새 흰 송송이를 질투하며 비교하고 자신도 모르게 경쟁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흰 송송이보다 잘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림책은 어린아이 시선만큼 어린아이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인 놀이로 송송이와 흰 송송이 사이를 사이좋게 만들어놓는다.

그러면 청소년이나 어른들 세계는 어떠할까?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대학에 가기 위한 입시 경쟁자로 볼 것이고 어른들은 나 보다 먼저 앞서가는 꼴을 못 보며 노력하거나 험담하거나 내가 더 유리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앞지르고 나면 성공한 것 같은 생각도 잠시, 뭔가 허전함이 몰려온다. 남과 비교하며 경쟁으로 달려온 만큼 난 무엇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허탈함이 몰려올 때도 있다. 그럴 때 잘 넘어가지 못하면 번아웃까지 오게 된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며 세상과 등을 돌리고 만다. 

우리는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같은 나이, 같은 학교, 같은 위치에 있다 보면 그 경쟁심이 더 불탄다. 더구나 이름까지 같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앞다투어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누가 더 빨리 가 웃는지 보여주기식 경쟁에 참여한다. <<송송이와 흰 송송이>> 그림책 이야기처럼 놀이로 함께라는 것이 더 기쁜 순간이라고 말하듯이 우리 또한 혼자 잘난 것이 아니라 함께 하기에 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함께라 더 좋은 세상.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필요한 따뜻한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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