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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Mar 06. 2024

쇼츠가 날 울렸다

<공감 에세이> - 한밤중 수유

한 쇼츠가 날 울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고이더니 빗방울처럼 뚝! 옷 위로 떨어졌다.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보며 묻어두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뇌파에 좋지 않다는 짧은 쇼츠가 나에게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한밤중에 아내를 수유를 하기 위해 자고 있는 남편으로부터 등을 올리고 아기에게 수유하고 있다.

인기척을 느낀 남편은 살며시 일어나 담요를 덮어줬다.

'아 담요 덮어주고 자려나 보다'라는 빠른 생각과 다르게 남편이 갑자기 아내 등위도 마주 앉았다.

이때부터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듬직하고 사랑스러운 남편의 넓은 등은 그렇게 아내에게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아내가 수유하고 있는 동안 남편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수유가 끝나자 아기를 바로 건네받고 안았다. 피곤한 아내는 이불속으로 살포시 들어갔다.

남편은 아이를 트림시키고 침대에 살포시 뉘었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다시 품에 안아 재우고 있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쇼츠는 이것으로 끝났다.

아주 짧은 영상이었지만 댓글창은 난리가 났다.


난 왜 눈물이 고이고 조용히 울었을까?

영상 속 부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텔레파시가 전한 것처럼 서로서로에게 배려하며 존중해 주는 모습이 사랑스러웠고 부러웠다. 문득 잊었던 기억이 올라왔다.

유난히 모유가 적었던지라 모유 수유가 참 힘들었다.

다른 산모들은 젖이 남아돌아 버렸는데 나에게 모유는 한 방울도 아까웠다. 선명한 붉은 피가 조금 섞이더라고 분유보다 낫다는 생각에 쥐어짜서 수유했다. 모유가 차서 가슴이 아파올 때는 한밤중에 유축기를 돌려야만 했다. 아이가 빨아줄 때는 다행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넉을 놓고 웽웽 돌아가는 기계소리와 함께 유축기 깔때기에 내 젖을 맡기고 짰다. 처음엔 이게 뭐지라는 생각에, 한 방울이라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를 돌아보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짜다가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내가 뭐 하는 것인지 박탈감이 오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출근할 남편에게 피해 줄까 봐 몰래 거실에 나와 유축했다. 서러웠다. 나도 피 터지게 공부하고 대학 가서 일했는데 지금 처한 내 모습에 황당함과 좌절감이 동시에 왔다. 약간의 산후 우울증이 온 것이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가 원했던 건은 바랐던 것은 영상 속 남편처럼 아무 말 없이 나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결혼 생활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아이를 빨리 가져 둘 다 서툴렀다. 그래도 아이만큼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했다. 약 일 년 동안 모유 수유를 한 큰 아이가 며칠 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랐기에 고마움을 느낀다. 어쩌면 한밤중에 수유하는 동안 남편의 배려와 존중이 없었을지라도 사랑으로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 커서인지 무탈하게 자란 아이와 지금도 열심히 일하는 남편에게 고맙다.


쇼츠가 뇌에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한밤중의 수유하는 부부의 배려있고 존중하는 모습이 부럽고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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