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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Jan 12. 2023

미소 짓지 못한 순간

< 공감 에세이 >


어제오늘 날씨가 참 포근하였다.

겨울이 벌써 다 간 걸까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춥지 않았다.

그렇다고 얇은 옷만 입고 나오기에는 당연히 추운 겨울이었다.

추운 날에는 고개를 젖혀 위로 보기가 힘들고 귀찮다.

종종걸음으로 추위로부터 피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다.

날씨 때문인지 이상하게 하늘을 보고 싶어졌다.

조금씩 고개를 들어보니 청명한 하늘색 바탕에 뭉실뭉실 구름들이 무리 지어 있었다.

'자연은 정말 경이롭다.'

고개를 더 들어 완전히 젖히게 하도록 유인하더니 푸르른 하늘을 마음껏 보았다.

차가워진 공개와 높은 하늘 그리고 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늘색 물에 구름이 둥둥 떠나였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방해물이 나타났다.


걸을 때마다 하늘에 거슬리게 줄 쳐있는 검은 줄 정체.

실타래처럼 엉켜져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신비로운 하늘을 보던 내 미소는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도대체 저 전신줄은 어디서 나타났으며 도대체 어디까지 하늘 위에 거슬리게 있는지 궁금해졌다.

목적지를 향하는 곳까지 검은 전신줄은 숨기보다는 뽐내듯이 더 드러났다.

누가 누가 잘하나.

누가 누가 더 잘 엉켜있는가.

아무도 풀지 못할 것 같은 검은 전신줄은 끊어지지 않는 검은 실타래였다.



코로나가 일어나기 전 여동생이 일 때문에 자카르타에 머문 적이 있었다.

동생의 초청으로 아이와 함께 첫 해외여행을 갔다.

인도네시아에 도착하면서 한국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도 잠시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와 검은 전신줄이 해외여행의 기쁨을 방해했다.

어두운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머무는 동네로 갈수록 검은 전신줄은 더 많이 더 길게 더 두껍게 배배 꼬며 우리 일행을 따라왔다.

다음 날 아침, 기도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로 잠을 깼다.

창문 밖으로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정신없었다.

부릉 부르릉~

귀가 떨어져 나갈 만큼 울리는 소리를 피하기 위해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자연의 경이로움보다 그것을 방해하는 전신줄로 미소 짓기 못했다.

늦은 오후 해 질 무렵도 마찬가지였다. 신비롭다고 생각한 색감을 뽐내며 하늘을 수놓은 노을 진 모습에 여전히 검은 전신줄은 방해물이었다. 마치 절대 너를 놓치기 싫다는 심보로 따라붙는 파파라치처럼 느꼈다.


전신줄은 전봇대를 통해 나온다.

전기, 통신, 방송 등을 유선으로 공급하기 위해 설치되는 기둥 전봇대에 연결된 선이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만들어 놓은 인위적으로 만든 도구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만든 것들은 어느새 자연이 누리고 있는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어쩌면 엉켜있는 전선줄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끊지 못하는 욕심과 욕망이 아닐까.

언제쯤 자연을 해치지 않고 공존하며 살 수 있을까.


맑은 하늘을 보려 고개를 든 나에게 미소 짓지 못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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