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문학 / 독일 소설 >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책인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대해 읽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독일문학은 좀 어렵게 다가오는데 이 책은 잘 알려진 책이고 고전이지만 지금까지 인기 있는 이유가 궁금해 선정한 책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 변신 >> 소설책은 출판사마다 한 번쯤은 출간한 책이라 어떤 출판사를 선택해 읽어야 할지 고민이었습니다. 원문을 얼마나 잘 해석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지에 평가가 필요한 책입니다.
그래서 원하는 출판사 책으로 선택해 읽어보길 권했습니다.
카프카는 이 책을 출판할 때 책 표지에 그림 넣는 것을 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벌레'라는 이미지를 숨기고 싶었고 원래 이미지가 좋지 않아 독자들이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프렌츠 카프카는 어떤 사람일까요?
카프카는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실존과 소외에 대해 이야기할 대 항상 등장하는 작가입니다.
카프카 작품은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상황에서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 무너져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 마음에 깊이 생각 거리는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심하고 나약하지만 그들의 내면적인 고통과 살기 위한 몸부림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럼 카프카는 어떻게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의 아이콘이 되었는지 그에 대해 알아봅니다.
카프카는 1883년 프라하 외곽에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프라하가 체코지만 당시는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이었습니다.
11개의 나라가 모인 민족 국가로 독일,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이태리, 우크라이나의 일부 또는 전부입니다.
나라만큼 종교도 다양했는데 가톨릭, 개신교, 동방정교회, 유대교, 이슬람교가 한 지붕에 모여있었습니다.
따라서 종교분쟁이 자주 일어났고 자본주의가 급진적으로 발달하던 때라 기화와 경쟁, 성공과 실패로 도시빈민 또한 급격하게 늘어나던 때였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민족주의가 일어나면서 다민족 국가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유럽의 화약고'였습니다. 누가 불씨 하나만 떨어뜨리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카프카는 자신을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 시민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습니다.
카프카를 사회 국가적으로 세 가지를 표현한다면 프라하, 유대인 그리고 독일어입니다.
그가 평생 자신이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것은 어느 곳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프라하에 살면서 체코인으로 소속되지 못했고,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으로 생활하지 못했고, 독일 교육을 받으면서도 독일 문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항상 경계선상에 머물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은 낮은 자존감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다시 불안과 집착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카프카의 아웃사이더 성향은 아버지의 일방적인 관계에서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카프카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아들 프란츠 카프카와는 매우 대조적입니다.
카프카가 예민하고 조심스럽고 소심하고 병약하고 왜소했다면 아버지는 그야말로 강하고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외골수의 가부장적인 사람입니다. 카프카 아버지는 일찍이 장사를 시작하여 성공한 자수성가입니다.
30살에 프라하의 유대인 부잣집 딸 율리에와 결혼합니다. 율리에의 넉넉한 결혼 지참금으로 액세서리 상점을 프라하에 오픈합니다. 경제적으로 신분상승에 성공한 헤르만 카프카는 결혼 후 자신감이 넘치며 독선적인 성격이 더욱 강해집니다.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자녀들에게 강조하면서 자녀들이 자신처럼 세속적으로 성공 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카프카는 이런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독단적인 성격에 반항하지 못하고 참기만 합니다. 카프카의 유일한 탈출구는 글쓰기였습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기와 편지형식의 글이 많습니다. 가정에서 아버지 말은 진리이자 법이었습니다.
언어폭력, 물리적인 폭력을 동원해 아들이 자신의 뜻대로 따라와 주길 바랐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영화 < 사도 >에서 보여준 영조와 사도세자가 떠올랐습니다.)
철학을 전공하고 싶었던 카프카는 아버지 반대로 법학을 다니게 됩니다. 대학 졸업하고 카프카는 일반 보험 회사에 취직하며 노동착취를 경험합니다.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견디지 못했고 박봉에 업무도 막중했기 때문입니다. 카프카는 선천적으로 체력적, 정신적으로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경과민 진단을 받고 직장을 그만둡니다.
그 뒤 입사한 곳이 노동자 재해 보험공사입니다.
국영기업으로 이전 직장에 비해 근무 시간은 반으로 줄고 월급은 10배로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카프카는 프라하에 고립된 소수 사회의 한 사람으로 프라하 시민이었지만 유대인이었기에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카프카는 성공한 사람이었고 모범적으로 지역사회에 동화한 유대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