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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Feb 18. 2023

지우고 싶지만 지워지지 않는

< 공감 에세이 >


거울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부터 거울 보는 횟수를 줄였다. 하루에 거울을 아침, 저녁으로 딱 두 번만 보는 나에게 이제는 한 번도 겨우 본다. 피부 좋다는 소리 종종 들었던 내가 거울을 보지 않다니···.

느닷없는 거뭇한 얼룩점은 내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처음에는 염색 얼룩인 줄 알고 때밀이로 빡빡 밀었지만 지워지지 않았고 그 자리에 붉은색이 자리 차지했다.

염색 흔적이 아니었다. '뭐지?' 하며 생각하다 그냥 지나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리 기준으로 갈색 얼룩점들이 하나둘씩 내 얼굴 자리를 차지했다.


문득 5년 전 엄마가 한 피부과에서 기미 치료받았던 기억이 났다.

"어머, 따님도 기미 치료해야겠어요. 여기저기 많아요."

간호사가 경호한 말을 무시했다. 관리하면 기미가 없어지거나 옅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고 기미는 앞을 다투어 내 자리를 차지했다.

코로나 질병이 확산되고 마스크 의무 착용으로 기미를 숨길 수 있었다.

화장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숨쉬기가 불편했지만 나름 좋았다.


기미 침입으로 내 얼굴이 점점 싫어졌다.

사진 찍을 때도 일반 사진보다는 포토 앱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내 얼굴을 가리기에 바빴다.

큰맘 먹고 집 근처 병원에 가서 기미 치료받았다.

연필로 잘 못 쓴 글자를 깨끗하게 지워주는 지우개처럼 거뭇한 기미도 지워질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아주 조금 옅어지긴 했지만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다시 해볼까 생각하다 기미 제거하고 그 자리에 붉은 반점들이 흉하게 남아있는 생각과 세수하지 못하는 상상에 관두었다.



코로나 덕분에 의무적으로 착용하게 된 마스크로 얼룩 된 기미를 잠시 가릴 수는 있었지만 마스크 위로 삐져나오는 기미가 내 신경을 건들렸다. 기미만 없으면 한층 더 밝아 보이고 기분도 좋아지겠는데 내 바람과는 달리 기미는 사라질 생각이 없다.






"진짜로 줄어드는 기미 잡티"

"2주 만에 기미, 잡티 없애드립니다."

"효과 보지 못하면 환불해 드립니다."

"기미, 잡티 완전 제거에 탁월한 제품"

"피부과 가서 많은 돈 지출하지 마세요."

얼굴에 얼룩이 생기면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광고 문구들은 늘 내 마음을 흔든다.

지금도 광고를 보면 '정말?'이라는 희망찬 생각으로 자세히 들여다본다.

광고업체들은 고객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후기도 많이 올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나 구입해서 한 통을 다 써봤다.

....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다 거짓말이다.

2주 후 효과는 무슨. 뻥이었다.

고객 후기에 아니라고 적고 싶었지만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 '또 속았지'하며 괜히 기미 화장품을 광고하는 회사 탓으로 돌린다.


사회적 거리가 완화되고 마스크 착용이 의무에서 권고로 바뀌면서 그동안 마스크 안에 숨어있던 비밀들을 감추기 위해 대부분 피부 관련 제품에 관심이 높아졌다. 나 또한 마스크 착용하는 곳이 줄어들면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실제적으로 나에게 거뭇한 얼룩을 보며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직 없지만 나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지며 어떻게 하면 가려질까 고민 또 고민한다.

그런 내 모습에 짜증 나고 화가 난다.


피부가 좋다는 소리에 관리를 하지 않은 내가 미운 건지 늙어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는 것이 미운 건지 모르겠다. 괜히 남편 얼굴을 한 버 쳐다본다.

더 우울해진다.

나보다 뽀얗고 흰 피부를 가졌던 남편 얼굴에 어느새 나보다 더 많은 거뭇 얼룩이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괜히 미안해진다. 유달리 회사일이 너무 힘들다고 말하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다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하다는 무거운 말을 한 남편 말이 떠올랐다.

그랬다. 남편도 나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소홀히 했다.

그저 베이베 로션 하나만 발라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남편과 비싼 화장품은 아니지만 스킨과 로션으로 얼굴을 보호했던 나.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간다.

그 대가가 거뭇한 얼룩이라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했기에 지금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울 속에 비친 갈색 흔적들은 여전히 나를 우울하게 한다.

남편처럼 그냥 받아들이면 괜찮을 텐데 그게 잘 안된다.


지금 휴대폰 거치대에 붙어있는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보인다.

여전히 거뭇 얼룩은 여전히 내 얼굴을 차지하고 있다.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나에게 미소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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