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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Mar 16. 2023

펴지도 못한 날개를 바라보며

< 공감 에세이 >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인 < 재벌집 막내아들 >을 열혈 시청하였다.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드라마이다.

대사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적신다.


날갯짓할 준비가 충분한데 날개 펴보지 못하는 자식을 바라볼 때 어떤 마음일까?

드라마 속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불행한 형편을 부모에게 직접적으로 원망을 표하지 않는다.

차라리 원망하는 소리라도 지르면 본인 속이라도 조금 풀릴 건데 그냥 마음속에 꾹꾹 담는다.

어릴 적 내 부모는 자식에게 풍요로운 환경을 주진 못해도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입히는 거에 신경 많이 썼다.

부모님의 부지런함 덕분에 먹는 거 하나만은 큰 불편함이 없었다.

음식으로 장사 한 이유도 있겠지만 부모님 어릴 때 못 먹고 자란 것이 서러워 자식에게만은 이것을 물려주기 싫은 것 같았다. 다만 그 양이 너무 지나쳐 불편할 때가 가끔 있었지만 음식 걱정 없이 먹는 아이 모습에 미소 짓는 모습에 그 불편함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지금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상급식으로 식사를 해결했지만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야간자율학습시간까지 학교에 있어야 해서 도시락을 두 개씩 준비해야 했다. 매일 아침 정신없이 삼 남매 도시락을 준비한다고 엄마는 전쟁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도시락은 때론 부담으로 다가왔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에 늘 마음 한 구석 돌덩이가 들어있었다. 소화가 잘 되지 않거나 배에 가스가 많이 찬 날은 꾹꾹 눌러 담은 밥 양을 조금 헐렁하게 하거나 줄였으면 좋으련만 항상 가득이다. 따뜻한 밥과 반찬으로 자식이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은 이해했지만 가끔 조금만 달라고 했을 때는 들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늘 가득 찼던 밥은 엄마의 사랑을 알지만 배가 불편할 땐 먹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밥을 남기고 간 날은 일주일 동안 엄마의 불평소리를 계속 들어야만 했다.

'아~ 밥 먹기 싫은데, 밥 버리고 갈까?'

차마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 준비하는 모습과 밤늦도록 일하는 모습이 떠올라 그러지 못했다.

더구나 음식을 버리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는 생각 때문에 늘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친구들은 도시락이 맘에 들지 않거나 먹기 싫을 때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갔다.

어쨌든 엄마의 사랑이 담긴 도시락 덕분인지 우리 삼 남매는 크게 아프지 않고 성장했다.

엄마의 부지런함 도시락은 아마 자식한테 미안하기 싫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rbvBMhYzut4

- 드라마 < 재벌집 막내아들 > 내용 중에서 -



그래, 현우, 너는 돈 많이 벌어서
자식한테 미안해하지 말고 살아.



세월이 흘러 나도 부모가 되었다.

아이를 가지면서 우리 아이한테 만큼은 내가 누리지 못한 것을 누리게 히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부모들이 다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냥 즐겁게 시작한 공부에 이제는 흥미가 생기고 욕심이 나는지 고맙게도 스스로 알아서 한다.

기특하다. 오죽했으면 공부 좀 그만하고 자라고 할까.

그렇다고 새벽까지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가 정해놓은 분량까지 다 해야 자는 아이라 12시가 넘는 시간이 잦아졌다.


"엄마, 학원 선생들이 고등학교 어디 갈 건지 물어봐요."

" ooo 간다고 하니 넌 충분히 더 좋은 곳을 갈 수 있는데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래?

라고 하셨지만 그냥 마음 접었어요."

중1 때 ooo고등학교 다닐 거라며 말하던 아이는 점점 그 학교에서 멀어져 갔다.

성적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직접적인 가정형편을 이야기한 후부터였다.

그 뒤로는 일체 그 학교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드라마 < 재벌집 막내아들 > 현우엄마처럼 난 자식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못했다.

울컥했다. 눈물이 났다. 내가 못해주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

'왜 이렇게 사는 거지?'라는 자책도 해보았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학비 감당이 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이 학원 저 학원 기본적으로 3개 이상은 다닌다는데 내 아이는 한 곳에 다닌다.

그것도 자기가 공부해 보고 부족함을 느껴 다니고 싶다고 해서 선택한 곳이다.

아직은 그곳만 다니고 나머지는 스스로 학습하며 해내고 있다.


작은 아이는 피아노를 잘 친다. 처음 음악을 들으면 청음으로 악보 없이 스스로 연주한다.

"엄마, 나 천재인가 봐요. 피아노니시트 하면 안 될까요?"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꼭 하고 싶다는 간절함을 담아.

마음을 애써 누르며 "안 돼!"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술 부분은 일등이 아니면 유독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허락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건 핑계일지도 모른다. 뒷바라지할 자신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

스스로 자신 진로를 찾아가는 내 자식이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졌다.


수많은 성공가들처럼 경제적인 자유를 갖고 싶다.

며칠 전 텔레비전 영상에서 한 경제전공자가

"돈 때문에 아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할 때 제일 괴롭다."

라는 말이 와닿았다. 울컥하고 눈물만 옷줄기를 타고 내렸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더 슬프고 자책하고 있다.

앞으로 더 잘하자라는 그런 마음가짐은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이 말을 듣고 공감해 주는 게 다다.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아이들.

펴지도 못한 아이들 날개를 바라보며 한숨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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