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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Apr 06. 2023

부러운 어린이날

< 공감 에세이 >


5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어린이날이 되기 전에 그날 어디 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지 알려준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함박웃음 짓는 아이들 표정에 물끄러미 아빠, 엄마 쪽으로 시선이 간다. 무표정으로 열심히 손을 바삐 움직이는 부모님.


우리 집은 가게를 하였다.

고소한 냄새가 하루 종일 풍기는 빵집이었다. 남들처럼 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가게에 딸린 방이 우리 집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전셋집이었지만 음식만큼은 풍족하게 먹고살았던 든든한 쌀 창고였다.


5월 5일 어린이날.

이날이 다가오면 우리 집 빵 공장은 쉴 새 없이 기계가 돌아간다.

크지도 않은 가겠였지만 가게가 번창할 때는 아빠처럼 빵을 만들 때 두 분 정도 계셔서 일을 도왔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을 데리고 운영하기에는 버거웠다.


새벽 6시가 되면 어김없이 아빠는 일어나 화장실로 직행한다. 방 밖에 있었던 화장실은 아빠의 유일한 휴식공간처럼 보였다. 담배도 한 대 피우시고 숨도 크게 내시고 기운찬 함성 소리도 한 번 지르고 하면 빵 만들기 위해 밀가루 포대자루로 향한다.

철판에 밀가루를 뿌리고 나면 첫 빵이 이제 만들어짐을 알게 된다.


5월이 되면 무척 예민해지는 아빠다. 빨간 공휴일도 많고 그만큼 바삐 움직여야 하고 주문도 쉴 새 없이 들어오기 때문에 민감해진다.

혼자 일을 다 해야 하니 그럴 만도 하지만 어린이날을 무엇보다 기다리는 우리 삼 남매는 그저 아빠 눈치만 본다.

지금은 청탁금지법으로 학교에 음식을 넣지 못하지만 이때만 해도 행사가 있는 날에는 학교 부모님들이 너도 나도 반별로 빵 주문을 한다. 어느 학교 어떤 반에 무슨 빵이 배달되는지 적어야 했고 엄마는 가능하면 주문을 많이 받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며칠 전부터 주문 들어온 제시간에 맞게 만들기 위해 평소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는 아빠 모습에 차마 어린이날 어디 가자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타임 못 맞춰 이야기했다가 빨간 어린이날이 공포의 어린이날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언제 이야기해야 할지 이리저리 눈동자만 계속 돌리고 있었다. 아빠 혼자 다 할 수 없기에 엄마와 더불어 우리 삼 남매가 각자 일을 맡는다.

개별 빵 포장, 철판 닦기, 설거지, 아빠 보조 등 역할을 나누어 묵묵히 일한다.

아빠 기분을 맞춰야 맛있는 음식, 아니 용돈이라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빵집에 가면 개별로 담겨있는 포장은 단순해서 쉬워 보이지만 집중과 인내심을 요한다.


하기 싫은 작업 중 하나가 빵 포장이다. 단순노동이다 보니 재미가 없다. 빵 넣다 배고파 먹다가 머리를 쥐어박기도 하고 잠시 집중하지 않아 빵 하나를 포장하지 않은 적도 있다. 처음에는 삼 남매가 모두 빵 포장을 했다. 철판 개수를 공평하게 나눠 포장했다. 은근히 이게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지만 빨리하면 도와줘야 하고 느리게 하면 폭풍 잔소리와 꿀밤이 날아오니 그야말로 적당한 속도로 마무리해야 한다.

빵포장이 끝나면 철판 닦기와 설거지가 기다린다.


난 힘이 없다는 이유로 설거지를 자진해서 한다. 그런데 이것도 만만치 않다. 빵을 만드는 도구들이 나보다 덩치가 큰 것도 있었고 쪼그리고 앉아 그 많은 도구들과 식기들을 씻기에는 힘에 부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그래도 5월 5일 어린이날인데.


우리 삼 남매는 군소리하지 않고 맡은 일을 부지런히 했다.

통유리 사이로 엄마, 아빠 손잡고 웃으며 지나가는 아이들이 마냥 부러웠다.

텔레비전 속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부러움에 울어버리고 싶었다. 우리들 세상이라는데 우리는 지금 여기서 뭘 하는지 울컥했다.


드디어 아빠의 마지막 손길이 끝나고 우리도 맡은 역할을 다했다.


드 디 어


울 것 같은 눈동자로 아빠와 엄마를 바라봤다.


"어이구~ 내 새끼들."


갑자기 아빠가 커다란 두 손으로 우리 삼 남매를 안아주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빵 냄새가 우리 몸속으로 들어왔다.

거칠고 두꺼운 손과 까칠해진 수염으로 쓰다듬으시고는 기다렸던 말을 하셨다.



"자, 우리도 나가볼까? 밤이면 어떤 노. 그자. 
우리 이제 맛있는 밥 먹으러 가자. 곰장어 먹으러 갈까?


고된 일로 민감했던 엄마 표정도 풀어지면서 모두 외출복으로 갈아입기 위해 좁은 공간을 서둘러 뛰었다.

외출복이라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많이 먹기 위해 우리 삼 남매는 그저 편한 트레이닝 복을 입으며 그저 싱글벙글이었다.

남들처럼 한낮에 놀 수 없어 우울했고 다른 친구들처럼 웃고 놀지 못하는 신세가 싫다며 징징 걸렸지만 그래도 기뻤다. 밤이지만 아빠와 엄마 그리고 삼 남매 모두 맛있는 곰장어 먹으러 가니깐.

나름 부러운 어린이날을 보냈다.


빵 냄새와 곰장어 냄새가 섞여 이상한 맛이 느껴졌지만 피곤해하던 엄마, 아빠 모습에서 미소도 찾고 여유를 가질 수 있어 마냥 좋았다. 그리고 수고했다며, 사랑한다면 용돈도 주셨다.


5월 5일 어린이날이 되면 기쁨보다는 늘 짜증이 먼저 다가왔다.

즐거움보다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가족이 생기면서 어린이날을 챙겼다. 어릴 적에는 아이들 데리고 어딜 갈지 고민하며 밖에서 신나게 함께 뛰어놀았다면 이젠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어린이'라며 논리적으로 이론 펼치며 설득하는 아이에게 용돈 주며 내 어릴 적 어린이날을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들처럼 기대 차고 신나는 날은 아니었지만 아빠, 엄마와 추억을 쌓은 부러운 어린이날이 문득 생각난다. 어디선가 아빠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린이날인데 곰장어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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