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미인 앨리 Apr 07. 2023

굴비 한 번 쳐다보고

< 박완서 그림책 >


평소에 움직임이 적어 조금이라도 땀 흘리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체육센터에 간다.

우리 동네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체육센터라 여기서 동네 사람들을 다 만난다.

내가 가는 시간대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온다.

아침 일찍 수업이 있어 운동하지 못하고 씻고만 가려고 주섬주섬 물건을 챙기며 총총 걸어갔다.

입구에 들어가 회원증으로 표를 끊은 후 2층으로 올라간다. 

헬스장 출입문을 열기 위해 바코드 스캔하고 후다닥 탈의실로 향한다.

다행히 많이 붐비지 않아 빨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일분일초 다투며 뜨거운 물로 몸을 깨운다.

몸을 말리는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인생을 많이 살아온 분들이라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머, 언니. 머리숱이 왜 이렇게 많아?"
"oo 바르잖아."
"그거 어디 거야? 믿을만해? 머리카락이 정말 생겨?"
"아따 가스나야, 한 개씩 물어봐라."




절대 기분 나빠 말하는 게 아니다. 원래 말이 이렇게 좀 세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들으면 싸운 지 안다.

뭐 어쨌든, 집중은 그 제품이 정말 좋은지 안 좋은지 확인하는 부분이다.

어떤 말을 내릴지 궁금한지 탈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 짧은 순간 조용해지면서 저마다 그 사람에게 눈길

"그런 거 같더라. 머리카락이 좀 나더마."
"진짜야? 나도 하나 살까? 정말 괜찮아?"
"야야, 이게 좋은지 저게 좋은지 일단 써봐라. 몸에 좋다 카는 건 다 발라봐라.
써 봐야 한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노?
돈 애끼지 말고 몸에 좋은 건 몸에 양보해라.
애끼면 똥 된다."


여기저기 "맞다" 하면서 맞장구치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만 돈 주지 말고 한평생 일한 내 몸뚱이에도 돈 좀 써라는 말이 참 좋게 들렸다.


어릴 적 부모님은 늘 아꼈다.

가고 싶은 여행도, 입고 싶던 옷도, 먹고 싶은 것도 참 아꼈다.

그 덕에 우리는 큰 불편 없이 생활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고 슬펐다.


어르신들은 이야기한다.

뼈 빠지게 일하고 나니 이제는 병원에다 돈을 갖다 바친다면 인생이 허무하다며 한탄하신다.

'아끼면 똥 된다."

정말 뼈 있는 말이다.


먹고 싶은 음식에 있어 저마다 다르게 반응이 나타난다.

나처럼 미련 없이 입 속으로 그 자리에서 꿀꺽하는 사람이 있는 거 하면 아끼고 아껴 두었다가 오래된 곰팡이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다. 무엇이 옳다고는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경험을 했기에 그 음식 맛을 아는 것이고 또 각자 다르게 반응을 했기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몸에 좋은 것은 다 해봐야 안다고 말하는 어르신의 현실적인 말처럼.




어르신 말을 듣고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니 아끼고 모으는 것만이 최선일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무조건 아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자린고비'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자린고비'이야기를 새로운 버전으로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그림책 한 권이 생각났다.


- 출처: 알라딘 서점 -



박완서 작가가 쓰고 이종균 작가가 그린 << 굴비 한 번 쳐다보고 >> 그림책이다.

이 책은 자린고비의 새 버전으로 고린재비 아들 삼 형제 이야기다.

반찬값도 아까워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술 뜰 때마다 굴비를 쳐다보게 했다는 자린고비.

그런데 굴비 맛을 상상하며 밥을 먹어야 했던 자식들은 커서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증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웃에 소문이 자잘할 만큼 지독한 구두쇠는 사람들에게 '고린재비'로 불린다.

이 고린재비에게는 아들 삼 형제가 있다. 삼 형제는 한참 성장할 시기라 돌아서면 허기가 지자 고린재비는 어떻게 하면 반찬비를 줄일까 고민하다 '굴비' 한 마리로 묘책을 생각했다.

천장에 굴비 한 마리를 달아놓고 삼 형제에게 밥 먹기 전 구호를 외치게 한다.

"밥 한 숟갈 먹고, 굴비 한 버 쳐다보고, 
또 밥 한 숟갈 먹고, 굴비 한 번 또 쳐다보고.....



울고 보채던 아이들은 차츰 길들여져 나중엔 굴비 없이도 고린재비 구호만 듣고도 저절로 밥이 꿀떡꿀떡 넘아가게 되었다. 고린재비가 죽고 재산도 풍족해진 삼 형제는 농사를 지어 잡곡물과 과일을 팔아보지만 팔지 못하게 된다. 둘째는 소리꾼이 되기 위해 집 나가지만 실패하고, 막내 또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집을 떠나지만 실패해서 돌아온다. 삼 형제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동네 지혜로운 노인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과연 노인은 삼 형제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자린고비 이야기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이 책은 ‘돈’보다 다양한 경험 하면서 ‘살맛’을 느끼며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야말로 '아끼면 똥 된다'라는 말과 같다.


반찬 없이 구호를 외치며 밥만 먹고 자란 삼 형제는 남들이 아는 맛을 모른다.

뭐가 좋고 나쁜지 알기 위해서는 체육센터에서 말한 어르신처럼 이것저것 써보며 알아가듯이 다양한 경험으로 인생을 살아가라는 박완서 작가의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운동장이 부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